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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민 교수의 '이상한 유물론 강의'를 듣고 물질이 '다 했네'― 문규민 교수의 '이상한 유물론 강의'를 듣고 어제 마리서사에서 문규민 교수의 '이상한 유물론 강의'를 들었다. 요즘 나는 영화 〈아바타〉 속 세계관을 브뤼노 라투르와 연결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신유물론 입문』을 쓴 연구자가 군산까지 와서 강연을 한다기에 적잖은 기대를 품고 자리에 앉았다. 라투르의 이름이 한 번이라도 나와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걸음한 보람이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강의는 뜻밖에도 인스타그램 댓글 두 개로 문을 열었다. 강연 홍보 게시물에 누군가 유물론은 결코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적었고, 또 누군가는 유물론이 지옥행 세계관이라고 적어 놓았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그 웃음 뒤에 남는 질문은 꽤 무거웠다. 우리는 물질을 정말 물질로서 생각하고 있는가, 물.. 2026. 10. 25.
남들맹키 사는 거이 젤이드라, 정지아 『찌니주의보』를 읽고 남들맹키 사는 거이 젤이드라― 정지아 『찌니주의보』를 읽고 11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부리나케 학교로 향했다. 마침 알라딘에서 주문이 들어와 있어서 학교 안 우체국부터 들렀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옆 칸의 전북은행 쪽을 보니 거기도 셔터가 내려져 있어 한참을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제야 전화기를 꺼내 날짜를 확인했더니 25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오늘을 월요일로 철석같이 믿고 가방까지 챙겨 학교에 간 것이다. 치매기가 분명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하소연을 늘어놓고는 머쓱한 마음으로 월명서가에 돌아왔고, 덕분에 생긴 일요일 하루를 통째로 정지아 작가의 『찌니주의보』에 내주었다. 『찌니주의보』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많은 독자를 만난 정지아 작가가 창비에서 펴.. 2026. 10. 25.
사랑이 들어와 사는 자리, 이승우 『사랑의 생애』를 읽고 사랑이 들어와 사는 자리이승우 『사랑의 생애』를 읽고 스산한 가을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저녁이다. 하루 종일 월명서가의 한적한 틈에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붙들고 있었다. 손님이 뜸한 비 오는 날의 서점은 책 한 권과 오래 마주 앉기에 더없이 좋은 곳인데, 이 책은 그 시간 내내 나에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 던졌다. 우리는 정말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 말라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너무 익숙한 표현이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승우는 첫 장에서 바로 이 말을 붙들고 늘어진다. 사랑을 물이나 수렁, 혹은 누군가 파 놓은 함정처럼 여기는 이 수사에는 사랑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라는 인식과 그 힘에 저항하고 싶은 무의식이 함께 숨어 있다는 것이다. .. 2026. 10. 24.
2회 월명서가, 영화의 밤 🌊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저녁 — 〈아바타: 물의 길〉 선선해진 가을밤, 월명서가에서 영화 한 편을 함께 보려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은 숲을 떠나 바다로 향한 설리 가족이 낯선 부족과 새로운 자연 속에서 다시 삶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화려한 영상 너머로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이 잔잔하게 흐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혼자 보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도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보고 나면 다르게 다가오곤 하지요. 상영이 끝난 뒤에는 각자 마음에 남은 장면과 생각을 편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영화를 이미 보신 분도, 처음 보시는 분도 모두 반갑게 맞이할게요. 📅 일시 | 10월 23일(금) 저.. 2026. 10. 20.
한낮의 수다 - Woulda, shoulda, coulda don’t make you feel better. woulda, shoulda, coulda 오늘로써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트레버 노아의 『태어난 게 범죄』를 바탕으로 한 수업이 끝났다. 오전의 가을 햇살이 월명서가 창을 넘나드는데, 마지막 수업을 마친 마음이 문득 쓸쓸해지면서 그 안에 살짝 물기가 어리는 것을 느낀다.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문장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Woulda, shoulda, coulda don’t make you feel better. 그랬더라면, 그랬어야 했는데, 그럴 수도 있었는데. 문법책에서는 would have, should have, could have 뒤에 과거분사를 붙인 이 세 구문을 "후회의 3종세트"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묶는데, 미국 사람들은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줄여 woulda, shoulda,.. 2026. 10. 16.
이승우 연작소설 『사랑이 한 일』을 덮으며 사랑이 한 일, 사랑이 하지 못한 일이승우 연작소설 『사랑이 한 일』을 덮으며 연휴 내내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을 붙들고 있었다. 다섯 편의 연작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이야기인 표제작을 한가운데 두고 앞에 「소돔의 하룻밤」과 「하갈의 노래」를, 뒤에 「허기와 탐식」과 「야곱의 사다리」를 시간 순서대로 놓았다. 작년에 첫 작품을 읽고 짧은 글을 남긴 뒤 이번 연휴에 나머지 네 편을 한 편씩 읽고 적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다섯 편이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아버지들이 자식을 내놓는 이야기였고 또한 그 일을 무엇이 가능하게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였다. 작년에 「소돔의 하룻밤」을 읽으며 내가 오래 붙들었던 것은 롯의 집 대문 앞에 몰려든 소돔 .. 2026.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