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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아이슬란드가 있었다면 작가에게 아이슬란드가 있었다면 한 달 전쯤이었을까. 한길문고에서 강연이 하나 열렸다. 출판사 '어떤책'의 김정옥 편집자가 '예비 에세이스트가 알아둬야 할 기획, 편집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편집 초보자인 나는 '편집'이라는 두 글자에 끌려 그 자리에 앉았다. 강연을 들으며 몇 번이나 속으로 놀랐다. 출간 편집자의 일이 이렇게나 방대하구나. 편집자의 손이 거기까지 닿는구나.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그런데 더 오래 남은 건 강연이 끝난 뒤의 일이었다. 질문 시간이 이어졌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도 손을 들었다. 책 일곱 권을 스스로 편집하고 출간했다고 짧게 나를 소개한 뒤 물었다. 편집자가 작가의 글에 그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느냐고. 강연 내내 머.. 2026. 9. 25.
책을 떠나보내는 일 ‘책을 떠나보내는 일’ 한가로운 연휴다. 리치 바이락의 피아노를 틀어놓고, 그동안 묵혀두었던 책을 눈을 비벼가며 읽는다.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다. 그래도 아무도 오지 않는 서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싫지는 않다. 처음 월명서가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 서가에 꽂힌 책들이 조금 안타까웠다. 오랫동안 곁에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펼쳐보지 않을 책들. 그렇다면 차라리 누군가의 손에 닿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까지 닿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중고 가격으로 책을 팔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놓으려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손때 묻은 책들이 내 손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한 권 한 권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 2026. 9. 25.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살펴본 인물들(스포일러 있음)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살펴본 인물들(스포일러 있음)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빵충이라는 기묘한 생물보다 그 빵충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이끄는 김정한이라는 인물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트럼펫을 불던 사람이 음악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농사를 짓고, 농사마저 잘되지 않자 다시 빵충을 기른다. 하나가 잘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모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그런 모습이 젊은 사람의 좌절과 자기연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김정한이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 소설의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음악을 버리고 농사를 선택하고, 다시 농사를 .. 2026. 9. 22.
당신의 일상은 반복인가, 변주인가? 당신의 일상은 반복인가, 변주인가? 어제는 오랜만에 쉬엄쉬엄 월명산을 산책했다. 산책로에 핀 꽃무릇 무리를 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같은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로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좀처럼 며칠간 읽은 책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으면서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쓴 책들과 자꾸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책들은 대체로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인물의 마음이나 관계, 분위기를 따라가며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초반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가 엄청나게 붙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걸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불.. 2026. 9. 21.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어떤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이었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이었고, 처음부터 흥미가 생겼던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오히려 조금 지루했다. 주인공 김정한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다른 것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트럼펫을 연주하던 정한은 음악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선택하고, 그것도 실패하자 새로운 기회로 '빵충'을 만난다. 처음에는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였던 이 사업은 곧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생산이 늘어나고 상황이 꼬이면서 빵충은 단순한 사육 대상을 넘어 사람들의.. 2026. 9. 20.
우주와 바퀴벌레 사이 우주와 바퀴벌레 사이 나는 핵심교양으로 '생명과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수업은 나에게 꽤 힘겹다. 원자, 엔트로피, 세포호흡, ATP 같은 낯선 용어들이 매주 쏟아지고, 문과적 사고에 오래 길들여진 나에게, 그것도 철학과에 다니는 나에게는 어떤 강의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은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 물과 생체 분자, 세포의 구조와 물질 수송, 그리고 효소와 물질대사에 이르렀는데, 솔직히 개념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했다기보다는 겨우 따라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우리의 몸은 우주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 뜨였다. 낯설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용어들.. 2026.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