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들6 (6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6화)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아직 반쯤밖에 채워지지 않은 교실은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재미로 학교로 온다는, 코를 벌렁거리는 버릇을 가진 해룡이도 웬일인지 짝꿍하고 조용히 키득거리고만 있었다. 깜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재수도 앞에 앉아있는 만호의 등을 연필로 콕콕 찌르며 끽끽댈 뿐, 참으로 수상한 분위기였다. 이때쯤이면 온 교실의 의자가 뒤집어지고 책상은 삐뚤빼뚤, 술래잡기하랴, 모가지를 잡고 조르랴, 야단법석이어야 할 교실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찧고 까불뿐,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야,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가셨어? 아니면 담임?" 아직 끝내지 못한 일기 숙제를 베껴 쓰던 정임은 턱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고개를 숙이고 책.. 2025. 2. 11. (5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5화)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그렇게 여름이 가고 있었다. 소년의 "두우부 두우부" 외치는 소리는 더 다급하게 들렸다. 소녀는 꼬리가 짧아진 소년의 목소리와 발걸음이 늘 아쉽기만 했다. 소녀는 여름이 빨리 가서 두부도 쉽게 상하지 않고 소년의 ‘두우부’ 외치는 소리와 발자국이 좀 더 머무르길 바랐다. 엄마의 삼베 저고리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선들선들 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소년의 목소리도 하루가 다르게 1cm, 2cm 더 길어졌다. 소년의 목소리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으로 늘어났다. 개학 숙제를 채 끝내지 못하고 잠들었던 다음 날 소녀는 잠결에 어렴풋이 소년의 ‘두우부두우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의 ‘두우부’ 소리가 끝나자마자 소녀도 ‘두우부 두우부’ 오물거렸다. .. 2025. 2. 10. <4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야야, 가만 있어봐라. 자 목소리가 왜케 힘이 없을까나. 자를 좀 불러와 봐라." 동생들이 쏜살같이 내달렸다. "아줌니, 두부 사시게요. 몇 모나 드릴까요?" 쭈뼛거리며 들어서는 소년의 하얀 얼굴이 보름달처럼 빛났다. “야야. 이 삼복더위에 어린것이. 아이고, 요 뽀얀 얼굴이 땀에” 엄마는 소년의 얼굴을 대신 훔치며 소년의 등을 토닥거렸다. “두부가 쉬면 손행게요.” 소년의 코가 벌룽거렸다. 소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아직 저녁 전 이제? 배 쫄쫄하지 않겄냐? 밥 한술 뜨고 가거라. 후딱 이 닭 국물에 한 대접 말아먹고 가서 얼릉 나머지 두부 팔아야제" 소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엄마는 닭 뼈와 미역 줄기만 남은 국물에 숭덩숭덩 밥을 말았.. 2025. 2. 9. <3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 3번째 이야기 유난히 더운 여름날이었다. 엄마의 치댐을 견딘 동생들의 얼굴이 말갛게 되었을 때 솔솔 구수한 고기 냄새가 풍겨왔다. "어어, 아버지도 안 계신 날, 웬 고기 냄새람? 누구의 생일일까?” 소녀는 꼴깍 침을 삼키며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였다. "야들아, 어여 와. 아버지는 오곡리 고모 집에 가셨는디. 아프시디야. 이자 판소리도 못한다드만. 모처럼 만에 엄니가 인심 쓴다야. 어여 와, 한바탕 뜯어 봐라잉."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생들은 상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소녀는 체면이 있었던지라 읽고 있던 동화책에 눈을 두고 코로는 고기 냄새를 들이켰다. "야, 큰딸. 뭐 하는겨? 빨리 와야지. 동상들이 다 먹기 전에. 야들 봐라. 몇 끼 굶은.. 2025. 2. 7. <2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땡그랑 땡그랑" 두부 파는 소년의 종소리가 땅거미를 타고 메아리쳤다. 오두막 지붕 위, 굴뚝을 타고 밥 냄새를 품은 뽀얀 연기가 나붓댔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담장너머 골목마다 똬리를 틀었다. 아이들이 종종거리며 내달렸다. "두우부, 두우부" 종소리 뒤로 소년의 두부라는 외침이 날개짓을 하며 저녁 하늘로 퍼져나갔다. 소년의 목소리는 힘차고 당당했다. 소년의 목소리가 붓질이라도 했을까? 소녀의 양 볼이 저녁노을처럼 붉어갔다. 소녀는 코스모스 꽃잎을 먹고 있는 창호지 문을 배깃이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열린 문틈으로 소년의 목소리가 방안으로 스며들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녀는 나지막이 ‘두우.. 2025. 2. 6. <1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10년도 훨씬 전에 작가의 꿈을 꾸며, 뭐든 마구잡이로 휘갈겨 쓰던 시절이 있었다. 어지럽게도 열심히 써 내려갔지만, 소설 같지 않은 소설들, 이제 너무 낡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세상 빛이라도, 바람이라도 맛보게 하고 싶다는 생각, 내가 낳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하루에 1,000자 정도의 시리즈물로 리본도 꽂고, 입술도 바르고 나들이 나올 이야기들에 박수를 좀 보내주시길. 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데어 워즈 어 보이 어 베리 스트레인지 언챈티드 보이” 베이스의 현을 당기는 묵직한 음이 가수의 목소리에 무게를 주며 공간을 떠돌다 가라앉다를 반복했다. 반백의 여자가 곡의 가사를 따라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선생님, 그만 주무시고요. 여하튼 내일 공연은 차질……” .. 2025. 2.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