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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박스」: 부재 속에서 발견하는 현존의 철학 「런치박스」: 부재 속에서 발견하는 현존의 철학 1. 영화 개요리테시 바트라 감독의 2013년 작품 「런치박스」(The Lunchbox)는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조용하고 섬세한 드라마이다. 영화는 뭄바이의 유명한 다바왈라(도시락 배달) 시스템의 실수로 시작된다. 젊은 주부 일라(니므랏 카우르)가 남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어 은퇴를 앞둔 중년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에게 전달된다. 사잔은 오랜만에 맛본 정성 어린 음식에 감동하고, 일라는 남편의 무반응에 의아해하다가 배달 실수를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도시락 안에 편지를 넣어 주고받기 시작하고,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로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일라는 무관심한 남편과의 공허한 결혼 생활에서, 사잔은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 2025. 10. 27.
『질문하는 예술가, 박찬욱을 다시 만나다』 『질문하는 예술가, 박찬욱을 다시 만나다』 지난 학기 영상 문학론 수업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작은 전환점 같은 감정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한국 영화보다는 외국 영화에 더 익숙했고, 자연스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건 아마도 시대적 취향이자, 은연중 내면화된 문화적 편견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업을 통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나의 그 익숙함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국 영화는 낯설지 않지만, 그 깊이를 성찰한 적은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은 나에게 하나의 성과이자 기회였다. 한국 영화의 감수성, 연출의 밀도, 감정의 결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것을 나의 사유와 언어로 정리해.. 2025. 10. 20.
어나더 라운드: 취기 속에서 깨어나는 존재 어나더 라운드: 취기 속에서 깨어나는 존재 며칠 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사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이 묻어나는 얼굴들이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가고, 취기가 오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을 되짚었다. 기껏해야 40대, 50대였던 젊은 시절의 선택과 감정, 놓친 기회들에 대한 회한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결국 대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아직도 관계가 중요해. 그래서 그런지 가족과의 작은 결들이 크게 느껴져.”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이젠 원이 없는 것 같아. 이대로 소풍을 끝내도 괜찮을 듯.” 그런 말들이 오갔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잠시 .. 2025. 10. 17.
《은중과 상연》 감상문: 사랑과 질투, 그리고 존엄한 이별 앞에서 주위의 몇몇이 추천한 드라마였다. 처음엔 그저 그런 감정극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은중과 상연》을 보기 시작하자, 나는 어느새 그들의 시선 속에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 작품은 1982년생, 현재 40대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얽힌 관계, 질투와 동경, 그리고 뒤늦은 화해까지—그들의 감정선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내면을 정교하게 건드린다. 물론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60대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나왔고, 지금도 그 감정의 흔적을 안고 살아간다. 《은중과 상연》은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이야기였다. 《은중과 상연》 감상문: 사랑과 질투, 그리고 존엄한 이별 앞에서 어.. 2025. 10. 11.
장항 송림 숲에서 장항 송림 숲에서 친구 덕분에 강남은 가지 못했지만오늘은 오랜만에맛난 점심, 멋진 커피숍그리고 저녁 노을이 물드는장항 송림 숲을 걸었다 숲 너머갯벌이 펼쳐졌다역시 예술이었다발걸음을 멈추고한참을 바라보았다 썰물이 드러낸 갯벌 위로갯골에 비친 빛이 물결치고어디선가 날아온 새 몇 마리연신 고개 숙여먹이를 찾는다 산책 나온 이들의 발걸음도한없이 여유롭다 계획했던 강남이 아니어도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누군가 함께여서밥 한 끼가 더 빛났고커피 한 잔이이토록 깊어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땅거미 물든도시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작업실에 갇혀 진을 빼다가가끔 이런 시간을 가진다면더할 나위 없겠다고오늘은 이 시간이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장항송림숲 #갯벌 #저녁노을 #산책 #일상의여유 #자연 #힐링 #감성.. 2025. 10. 2.
평등한 기회의 역설: 고용 기회의 평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 평등한 기회의 역설: 고용 기회의 평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 1. 들어가며2. 형식적 평등의 탄생과 한계3. 출발선의 문제와 역량 접근법4. 역사적 불평등의 유산5. 평등의 다층적 의미들6. 역차별 논쟁의 딜레마7. AI 시대의 새로운 도전 8. 복지 정책과 기초생활 보장: 평등의 토대 9. 결론: 평등은 단순한 산술이 아니다 평등한 기회의 역설: 고용 기회의 평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 들어가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준다”는 말은 언뜻 듣기에 매우 공정하게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키가 120cm인 사람과 190cm인 사람에게 똑같은 높이의 사다리를 주고 “자, 이제 공평하게 사과를 따보세요”라고 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평등일까? 고용 기회의 평등이라는 주제는 이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깊.. 2025.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