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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의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 『리틀 프라이드』에 나타난 몸의 정치학과 진정성의 허구성― 젠더 정치, 신체 정치, 자본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서장원의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는 2024년 『자음과모음』 봄호에 발표된 이후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르며 강렬한 비평적 주목을 받았다. 나는 2025년 제1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된 이 소설을 읽었다. 『리틀 프라이드』는 트랜스젠더 남성 토미와 작은 키 콤플렉스를 가진 오스틴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외모와 젠더 정체성, 그리고 인정 욕망이 교차하는 복합적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토미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지만, 법적 성별의 장벽과 편견의 벽에 부딪히고, 오스틴은 신장이 작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사지.. 2025. 4. 27.
뜻밖의 여행 부산 물빛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마음에 스며든다. 장장 다섯 시간의 운전 끝에 나는 마침내 이곳, 부산 영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은 아직 실감나지 않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 푸른 정적 앞에서 모든 피로가 잠시 멎는다. 숙소는 고요했다. 푸른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오션뷰 창가에 앉아, 나는 조용히 컵라면 하나를 준비했다. 하얀 머그컵에 담긴 커피는 선명한 쓴맛보다, 그 순간을 진하게 물들이는 잉크 같았다. 눈 아래, 항구엔 색색의 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사이를 물빛이 조용히 흐른다. 시간도 잠시 정박한 듯, 햇살은 미동 없이 수면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권의 책과 하나의 컵라면, 그리고 작은 설렘을 벗 삼아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늘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할 남.. 2025. 4. 25.
강보라의 단편 「바우어의 정원」 독후 에세이: 침묵과 감정, 그리고 나의 문장 강보라의 단편 「바우어의 정원」 독후 에세이: 침묵과 감정, 그리고 나의 문장 강보라의 단편 「바우어의 정원」은 2025년 발표되어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 하나로 선정된 작품이다. 『소설 보다: 봄 2025』의 첫 번째 수록작으로 소개되었으며,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상징적 장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은화는 세 번의 유산을 겪은 배우로, 번아웃 상태에서 연극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에 바우어 새에 관한 라디오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디션 현장에서 옛 동료 정림과 우연히 재회하며,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조심스레 공유하게 된다. 실제 바우어 새가 파란 물건을 모아 정원을 꾸미는 습성에서 비롯된 상징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고통과 상처의 수집, 기억의 산화, 삶의 구성이라는 주제를 이끌어낸다... 2025. 4. 24.
국밥 예찬론 ― 혼밥의 위로 국밥 예찬론 ― 혼밥의 위로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시험지를 마지막으로 제출하고 교정을 빠져나오는 길, 나는 문득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다. 특별한 기념은커녕,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차를 끌고 나와,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결국 선택한 건 국밥 한 그릇. 그것도 소고기 국밥.혼자였다. 소박한 식당 안,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주문을 마치고는, 창문 너머로 봄의 끝자락을 걷는 젊은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시험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그들은 웃고 떠들며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그 모습은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졌고, 나는 마치 다른 계절 속에 있는 사람처럼 고요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내게도 특별한 날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어떤.. 2025. 4. 24.
「쓰는 자의 불안, 그리고 다시 쓰기」 「쓰는 자의 불안, 그리고 다시 쓰기」 어떤 밤들은 문장을 다 써놓고도, 글이 나를 배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죽을 힘을 다해 썼지만, 내가 정말 전하고자 한 것이 고스란히 문장에 실렸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끝없는 자기 검열에 빠진다. 이건 과연 '작품'이라 부를 만한가? 나는 쓰는 자로서 윤리를 지키고 있는가? 그저 ‘글을 쓴 사람’이지 ‘작가’라 말할 자격은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잔혹한 질문—나는 글을 쓸 재능이 있는가?이 물음들은 답을 요구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며 나를 밀어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 글을 선뜻 건네는 일은 더 어렵다. 뻔뻔할 수 없다. 내 글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자리에 누군가의 시선을 들이는 일이, 나는 아직도 조심스럽다. 결국 나.. 2025. 4. 24.
침묵을 넘어 머무름으로― 『빛과 멜로디』가 가장 깊었던 이유 침묵을 넘어 머무름으로― 『빛과 멜로디』가 가장 깊었던 이유 나는 이번 학기 복수 전공으로 국문과 수업을 듣고 있다. 현대소설강독이라는 과목을 유 교수님께 수강하고 있는데, 수업의 흐름은 먼저 현대소설에 대한 이론 강의를 진행한 뒤, 조경란의 『그들』,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 김멜라의 「이응이응」,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이 네 작품을 차례로 읽는 방식이었다. 강의 후반부, 교수님께서는 이들 중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 하나를 골라 그 이유를 중심으로 에세이를 써보라고 하셨고, 나는 그 요청에 조응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게 되었다.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책 10쪽) 나는 바로 이 한 문장의 매혹으로부터 『빛과 멜로디』를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 2025.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