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5 밤을 채우는 감각들/세계시인선 필사책/민음사 세계시인선 필사책 “밤을 채우는 감각들” 1. 양 떼를 지키는 사람 1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은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2. 양 떼를 지키는 사람 2 나의 시선은 해바라기처럼 맑다. 내겐 그런 습관이 있지, 거리를 거닐며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때로는 뒤를 돌아보는...... 그리고 매 순간 내가 보는 것은 전에 본 적 없는 것, 나는 이것을 아주 잘 알아볼 줄 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진짜로 태어났음을 자각한다면 느낄 법한 그 경이를 나는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의 영원한 새로움으로 매 순간 태어남을 나는 느낀다...... 3. 양 떼를.. 2023. 1. 13. 유디트 헤르만작 <여름 별장, 그 후> 민음사 햇살을 등에 업은 눈발이 하나 둘 흩날리다 사라진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눈발은 스스로 춤을 추는가, 내 시선은 그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어디선가 아침 고요를 뚫고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배가 고프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추운 날에 배경음악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입가에 저절로 핀 미소를 머금고 길냥이의 다음 울음을 기다린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맴돈다. 절대 길냥이의 울음이 들려오지 않는 것 때문이 아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기다렸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눈물을 머금는 그런 시시콜콜한 어떤 것들의 짜깁기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게 되었다. 여기 특별한 것도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아름.. 2022. 1. 1.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언제나 혼자이면서, 우리가 되기를 갈구하는 존재, 나이가 들수록 이 “우리”라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그러면 우리 이전의 나는 어때야 될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그 해답의 하나를 제시해준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248쪽) 어떤 고난 앞에서도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근본, 그러나 결코 반항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결국 콜필드의 청춘의 반항은 끊임없이 시시포스의 바위를 들어 올려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20여년 만에 다시 들춰본 소설은 콜필드의 방황이 애틋하면서도, 때론 은근 미.. 2021. 11. 5.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늦가을 아침 스며드는 햇살에 마음이 부시다. 부스러기처럼 떠도는 햇살을 가만 들여다보면 이름을 읊조리게 하는 이가 있다.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러나 그의 꿈은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의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의 서사 속 캐릭터이다. ‘삶의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던, 비록 그의 이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일는지 모르지만 그 꿈을 성취시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다른 인물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과 비교해 볼 때 차라리 숭고했던, 비록 금방이라도 깨어질 환상일망정 그 .. 2021. 11. 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 일본 문학을 대할 때 1순위는 아쿠타가와 수상작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어 선택한 민음사판 “라쇼몬”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좋아하는 영화 “라쇼몽”이 실제로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원작 소설 “라쇼몬”과 “덤불 속”을 함께 섞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특히 “엄마” “지옥변” 과 같은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 내면의 묘사에 아득해졌고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 “갓파”는 인간사의 은유로 펼쳐지는 상상계, 일종의 환타지로 종횡무진 펼쳐지는 그의 상상 세계가 감탄스러웠다. 출판사 책소개 예술의 이상향을 꿈꾼 불세출의 천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 근대 문학을 견인하며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친 작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문.. 2021. 6.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