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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재즈 듀오, 유월의 인사, 2집 '여행' 발매 기념 연주회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6. 13.

지난 목요일 저녁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베이시스트 송미호님과

보컬·피아노의 강윤미님이

영화동 파라디소 90의 중정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해 질 무렵부터

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자갈을 깐 마당 한가운데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곁에 업라이트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놓였다.

 

구형 전구 모양의

스탠드 조명이 낮게 켜졌고,

악기들의 그림자가

자갈 위로 길게 누웠다.

아직 하늘이 푸르던 시각,

악기들은 연주자를 기다리듯 고요했다.

 

두 사람은

어쿠스틱 재즈 듀오 '유월의 인사'다.

버클리 음악대학과

뉴욕 주립대 재즈 전공을 거쳐

국내 1세대 여성 재즈 베이시스트로

자리를 굳힌 송미호님과,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는

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 강윤미님.

이들이 함께 만들어온 음악에는

하나의 일관된 세계가 있다.

 

자연은

사람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으며,

사람은 자연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

그러니 음악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늘 자연과 함께하는 음악을 노래해 온 것은

어쩌면 필연이 아닐까?

 

1집에서 이미

그 세계를 열었던 두 사람은,

이번 2집에서도

같은 곳을 향해 걷는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

사방으로 막힌 벽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창문 밖 빌딩 숲 너머 어딘가에

늘 있었던 그러나 우리에게선 자주 잊혀지곤 했던

숲과 언덕, 나무와 풀, 새,

따뜻한 동물들이 다정하게,

상냥하게,

싱그럽게 성큼 다가온다.

 

음반 전체가 자연을 닮았고,

그렇게 자연을 담았다.

 

그러나 그 여정이

처음부터 음악적 완성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던 듯 싶다.

 

두 사람은

보다 진정성 있게 곡을 쓰고 노래하고 싶어서,

여름과 겨울 방학이 되면 함께 여행을 떠난 듯 싶다.

경험하고 감각하는 것들을 공유하며,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닮음과,

서로의 마음 깊숙한 곳의 섬세한 다름들이

광산에서 끝없이 캐내지는 보석처럼

반짝임을 느꼈다고

2집 라이너 노트는 적고 있다.

 

자연에 대한 노래를 하려 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나에 대한 노래이고

사람에 대한 노래임을

깨닫기도 하였던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여행이 쌓이고,

감각이 쌓이고,

가사와 선율이 쌓여 앨범이 되었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강윤미님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했고,

송미호님은 콘트라베이스 앞에 서서

활을 당겼다.

 

두 사람 사이로

단풍나무가 조명을 받아 잎을 빛냈다.

소리들이 목조 처마와

유리 벽 사이를 채우다가

열린 중정 위로 흩어졌다.

 

관객들은 자갈 위 의자에 기대어

말없이 듣고 있었다.

 

나는 그러면서 깊어 가는

밤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보았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생각들이 천천히 정리되었고,

그 중 하나는

좀 더 착하게 살아야지, 라는 다짐이었다.

 

그날 밤은 연주회이기도 했지만,

발매 현장이기도 했다.

 

'유월의 인사'의 정규 2집 《여행》이

바로 그 자리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2022년 1집 이후 4년 만의 귀환이었다.

 

앨범의 아홉 트랙은

모두 송미호님 작사,

강윤미님 작곡이다.

 

〈땅이 꾸는 꿈〉으로 시작해

〈눈이 녹는 소리를 따라〉,

〈속삭이는 숲〉,

〈바람을 기다려〉,

〈팽나무 이야기〉,

〈Rainbow Heart〉,

〈너를 처음 만난 날〉,

〈시우리 왈츠〉,

그리고 〈긴 여행〉으로 끝난다.

 

집에 돌아와

가사들을 한 줄씩 읽어나가다가,

나는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났다.

미호님은 시인이구나, 싶었다.

활로 현을 긁는 그 손이

이런 언어들을 써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연주 사이사이에

두 분의 이야기가 끼어들었다.

송미호님이

고양이 모카의 입양기를 꺼냈을 때,

나는 살짝 눈물이 났다.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보아온 모카는

어린 왕자 같은 고양이였다.

그런 모카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강윤미님과 함께 강원도 양떼목장을 찾았을 때,

입구에 피부병이 온몸에 퍼진 채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가엾어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미호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가 담긴 트랙이

〈너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너를 만난 날

흰 것은 투명해지고

단단한 것은 녹아내리네

너를 처음 만난 날,

처음 세상에 내뱉은 언어는

세상의 경계를 열어 ~~~”

 

모카와의 첫 만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니

가사 한 줄 한 줄이 다르게 들렸다.

 

흰 것이 투명해지고

단단한 것이 녹아내리는 순간,

그건 피부병 걸린 작은 고양이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세 묘님들의 집사를 자처하는

그 삶의 방식이,

나는 감탄스러웠다.

언젠가 모카님과 눈인사라도 나눌 날이 올까.

그런 작은 바람 하나를 품고

중정을 나왔다.

 

그날 밤에는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미호님의 보컬을 들을 수 있었다.

활을 켜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수줍게 새어나온 그 목소리가,

중정의 밤 공기 속으로 번져나갔다.

 

연주가 끝난 뒤 손에 쥐고 돌아온 것은

작은 책과 CD 한 장이었다.

유월의 어느 목요일 밤이

거기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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