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위스키에 절어 알딸딸한 기분으로 독서하기'에
마침내 도전했다.
취하도록 마실 수는 없는 처지였으므로,
짐빔에 얼음을 잔뜩 넣고
콜라를 부어 연거푸 들이켰다.
위스키의 알딸딸함이 서서히 차오를 무렵,
비로소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결국 해냈다.
서가에서 꺼내 든 것은
성해나의 단편집 『혼모노』였다.
표제작 「혼모노」와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이미 심도 있게 읽은 터라,
이번엔 「스무드」부터 펼쳤다.
한국계 2세대 이민자 부모를 뒀지만
김치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철저한 미국인 듀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 전시를 맡게 되는 이야기다.
혈통은 연결되어 있으나
인식은 단절되어 있는 인물
듀이는 한국성을 부여받지만
그것을 거부하며,
그 거부 자체가 소설의 핵심 긴장을 만든다.
그에게 한국이란 미국 드라마에서 본
"뱀술이나 개고기를 파는 상점이 즐비한 우범지대"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낯선 나라다.
자신과 접점을 찾으려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곤혹스럽기만 하던 듀이는
종로에서 헤매다
성조기를 발견하고,
태극기 집회의 행렬에 섞여든다.
영어는 통하지 않고
대화는 연신 미끄러지지만,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미스터 김이
가방에서 태극기를 꺼내
듀이의 손에 쥐여준다.
처음엔 민망하고 웃기기도 했으나
곧 음악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게 되고,
노인들에게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라는 말을 듣는다.
제목 '스무드'는 두 층위로 작동한다.
하나는 공간의 차원이다.
작품이 전시될 아파트는
상주 큐레이터와 미슐랭 셰프의 코스요리를 갖춘,
입주민만 출입 가능한 공간이다.
어떤 갈등도 스며들지 않는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
소설은 불평등과 배제가 은폐되어 있음을
자꾸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 하나는 인식의 차원이다.
듀이가 한국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알지 않으려는 의지적 무지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관철될 수 있는
확고한 정체성을 향한 의지,
그 무지야말로
그의 매끄러운 미국인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조건이다.
이 '의지적 무지'는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Aletheia) 개념으로 읽힐 때
더 선명해진다.
하이데거에게
진리란 은폐된 것을 걷어내는
비은폐성의 사건이다.
그런데 듀이는 그 걷어냄을 거부한다.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하는 것,
즉 스무드함이란
그에게 진리의 도래를 차단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소설의 제목이
단순한 형용사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매끄러움은 결코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은폐의 구조이며,
듀이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존재 방식이다.
소설에서 가장 예리한 장치는
태극기 집회다.
성해나는 인터뷰에서
"태극기 집회든 KKK 집회든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타자의 눈에는
축제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듀이의 눈에
그것은 정치적 사건이 아닌
낯선 구경거리로만 등록된다.
이념을 읽지 못하기에
노인들의 친절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불통과 단절의 상징인 그 공간이
그에게는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푸는
온기 넘치는 곳으로 경험된다.
성해나는
독자가 당연하게 여기던 판단의 구도를
이방인의 무지라는 프리즘으로 낯설게 만든다.
폭로이면서 동시에
이해의 시도이기도 한 소설이다.
성해나는
2024년 예스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선정되었고,
「혼모노」로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과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혼모노』는
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기도 했다.
특별한 애정도 적의도 없이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인물을 만들고,
완결되지 않은 문장과
반점으로 열린 결말을 내놓는 작가,
이 형식적 선택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윤리적 멈춤과
닮아 있다.
타자를 나의 언어로
완벽히 포섭하고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성해나가 문장을 닫지 않을 때,
그것은 듀이를
그리고 독자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고백이자,
그 알 수 없음을 존중하겠다는
작가의 윤리적 선택일 것이다.
그렇게 읽고 나면 이 소설은
이민자 2세대의 정체성 방황을 다룬
텍스트를 넘어선다.
타자를 어떻게 오해하고,
또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그 묵직한 윤리적 질문 앞에
독자를 세워두는 작품이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읽기에
오히려 더 잘 맞는 소설이었다.
표면은 매끄럽지만
그 아래 거칠고 불균등한 것들이
은폐되어 있다는 인식이,
위스키의 온기와 함께 천천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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