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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29

문학연구방법론 수업을 마치며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에 와 있다. 다음 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드디어 방학이다. 이번 학기의 수업들은 하나같이 밀도 높은, 도저히 방심할 수 없는 과목들이었고, 나는 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볼 틈도 없이 늘 아쉬움을 달고 다녔다. 과장하자면, 꿈같은 나날 속을 지나온 기분이랄까, ㅎㅎ그중에서도 문학연구방법론 수업은, 내가 듣지 못한 현대철학 강의에 대한 아쉬움을 절묘하게 달래준 철학적 위로제 같은 존재였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온 철학은 주로 고대, 중세, 근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었기 때문에, 현대 사유의 지형에 대해선 늘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래서 지난 겨울방학, 스스로 36인의 현대철학자를 정리하며 1,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자료집을 묶어낸 것은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보상 심리의 합.. 2025. 6. 12.
「알랭 바디우의 사랑론과 문학적 사유」 「알랭 바디우의 사랑론과 문학적 사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사랑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부터 이미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감정이었다. 꼭 누군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는 오래도록 사랑을 사유했고, 그 사유는 때로 시나 소설, 에세이의 첫 문장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내가 계속해서 쓰고 있었던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 일으킨 세계의 변화였다는 것을. 사랑은 내게 '한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를 다시 보는 일'이었고, 그 낯선 시선의 충돌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일부가 빛을 얻곤 했다.이번 학기 문학연구방법론 수업에서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라는 단어가 펼쳐졌을 때, 나는 내 삶의 긴 문장 속에서 반복되어 온 단어 .. 2025. 6. 11.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이란?>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이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1990)』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젠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수행되면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이 개념은 젠더를 생물학적 성(sex)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따라 행해지는 일련의 행위들(performance)로 본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즉, 젠더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즉, 우리는 ‘여성이라서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처럼 행동함으로써 '여성'이 되어간다. 이러한 수행은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규범화된 사회적 실천이다.예를 들면, 치마를 입고, 목소리를 낮추며, 감정을 절제하고, 돌봄을 실천하는 일련의.. 2025. 6. 9.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 타자의 자리에서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 타자의 자리에서 말하다》 (이 글은 문학연구방법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나눠주신 자료를 베이스로 확장한 것이다.) 1. 서론: 왜 지금 사이드인가?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식민지’라는 말이 역사 교과서 속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문화와 권력의 심층 구조에 스며 있는 현실임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국가의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자본과 이미지, 언어의 식민화는 끝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유는 다시금 불려나올 수밖에 없다.『오리엔탈리즘』(1978) 이후, 그는 단지 문학비평가나 정치활동가의 경계를 넘어, 문화 전체를 둘러싼 권력의 장치를 해부해 낸 지식인이었다. 사이드가 분석한 '타자의 재현'은 단순한 인식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소유하고 질서 짓고자 했던 서구.. 2025. 6. 6.
신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옥시덴탈리즘 《신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옥시덴탈리즘》 어제 문학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신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문학 담론을 설명하셨다. 지난 2학년 2학기 동양철학 시간에 이미 한 번 배운 내용이어서 훨씬 이해가 빨랐다. 이번 강의는 단순한 이론 소개를 넘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와 문학 속에 스며든 권력 구조와 시선의 문제를 되짚어보게 했다.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한 오리엔탈리즘 개념은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재현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담론을 바탕으로, 나는 교수님의 강의 자료를 중심으로 신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더불어,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동양 재현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인 옥시덴탈리즘.. 2025. 6. 6.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윤리》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윤리》 오늘 문학연구방법론 수업에서 도나 해러웨이를 대표하는 두 선언,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을 공부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언제부터 인간을 중심으로만 생각해 왔을까? 그리고 지금 이 전환기의 시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사실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인간이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문명을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믿음 아래, 나 아닌 모든 존재들은 배경이거나 도구였다. 그러나 해러웨이의 글은 그 믿음에 균열을 내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인간’이라는 전제가 무너질 때 어떤 존재로 다시 살아가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이 에세이는.. 2025.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