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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228

두이노의 비가/라이너 마리아 릴케/손재준 옮김/열린책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손재준 옮김/열린책들), 490쪽에 달하는 필사를 완성했다. 팔이 좀 아팠지만 이 뿌듯함이란! 왜 하필 릴케의 시선집이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난 꽤 문학적이었다, 릴케를 위시해 하이네, 예이츠, 워즈워스, 휘트먼과 같은 시인들의 시집을 자주 읽었고, 감상에 젖어 몇 편은 암송하고 필사를 했었다. 사대가 아닌 문과 계열을 택해 시인이 되고자 했던 꿈을 꾼 적도 물론 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시인이 되지 못한 나는 결국 ‘시’들과 멀어졌고……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도 난 자주 문학적이다. 그 즐거움은 내 일상의 반을 차지하고도 넘친다. 물론 소설 위주의 작품들을 더 자주 읽지만 때때로 비평서와 이론서, 혹은 철학서 같은 인문학 서적들을 병용하는 지혜를 가.. 2023. 3. 1.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페터 한트케/윤시향옮김/문학동네 엘프리데 옐리네크에 이어 두 번째로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파격적 형식과 내용으로 찬사와 비판을 넘나드는 문제적 작가 페터 한트케(1942년생)를 접했던 것은 아마 노벨문학상 때문이었나보다. 2019년 봄, 나는 그의 책 ‘소망없는 불행’을 접했고 그 후 이런 느낌을 남겼음을 지난 블로그를 보고 알았다. 외로움과 욕망과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여자의 전투는 왜 이렇게 쓸쓸한지,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마지막 희망은 “여자의 자살”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자살에 찬성하는 쪽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대한 욕망과 소망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되고자 했던,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를 충족치 못했던 루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살”이라는 형태가 어쩌면 .. 2023. 2. 28.
세상 끝의 집/헨리 베스톤 지음/강수정 옮김/눌와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헨리 베스톤(Henry Beston, 1888년 6월 1일 ~ 1968년 4월 15일)은 미국의 작가이자 박물학자로 1928년에 쓴 The Outermost House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세상 끝의 집 – 케이프코드 해변에서 보낸 1년“이라는 표제를 달고 강수정님의 번역본으로 출판사 눌와에서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을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에서 읽었는데 너무 궁금해 알라딘을 뒤적거렸으나 절판된 지 아주 오래고 앞으로도 출간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여, 중고본을 어렵게 구입했다. 책소개 바람과 파도에 따라 달라지는 사구, 모래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햇살, 장엄한 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케이프 코드에.. 2023. 2. 22.
작별들 순간들/배수아/문학동네 #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동쪽으로 난 창으로 이른 아침 빛이 스며들면 눈곱 낀 눈을 비비며 온몸이 작동하도록 몇 번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 오늘 아침은 뿌연 회색 안개가 바다처럼 날개를 펼쳤고 희끄무레한 태양도 기가 죽은 듯 고요하더군요. 폴 블레이를 공간으로 들여놓으며 가만 창문 앞에 섰지요. 건너편 소나무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바람도 먼 나들이를 했을까요? 회색빛 안개의 바다가 주는 몽롱함이 고요와 맞물려 나의 파라다이스 “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에서 배수아님의 “작별들 순간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답니다. 사실 책장을 넘기기가 아쉬워 천천히, 시를 음미하듯 그렇게 읽으려 했는데 다음 문장은 어떨까, 호기심에 책장이 저절로 움직.. 2023. 2. 17.
휘파람 부는 사람/메리 올리버/마음산책 #책소개 나는 이른 아침, 늦은 오후, 또는 해가 질 무렵 바닷가에 내려와 갈매기들의 탐욕스러운 날갯짓을 부러워하며 신비하고 농밀한 파도의 열망에 들뜬 맹렬함을 응시하거나 서사에 귀를 기울이며 은빛 구슬로 빛나는 물결 너머로 내 오래된 그리움의 편지들을 실어 보내곤 한다. 때론 느리게 느리게 해변을 걸으며 내 정신을 모아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의 영혼에서 어떤 것들을 듣기 위해 혹은 느끼기 위해 버려진 장소에서 멀리 와버려 그저 존재만을 유지하며 망각의 길을 여행하는 해변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특히 소금물에 절여진 나뭇가지를 호기심과 열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전 바람 그물 노릇을 했던 그의 시간대를 더듬는 것으로 내 산책의 맛을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공포나 슬픔 혹은 욕망 같은 것들 때문에.. 2023. 2. 4.
긴 호흡/메리 올리버/마음산책 책 추천 긴 호흡(메리 올리버/마음산책) 바람은 몹시 불었으나 상쾌했고 햇살을 받은 해수면은 은빛 구슬을 풀어놓은 듯 리듬을 타며 쉼 없이 일렁이는 한낮 수평선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활강하며 해수면을 차고 날자 반짝이는 것들이 “잘 있지요?” 물 찬 낱말처럼 튀어 오른다 물의 구슬들이 이루는 말들이 그토록 소소하다니! 무한 반복되는 무한대의 인사라니! “잘 있어요, 곧 만나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충분했지요? 그럼요, 충분했지요” 바람의 멜로디가 다정도 한 오후의 바닷가에서 난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긴 호흡”을 뒤적였다.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92쪽) 라는 그의 말에 가만 귀를 기울였더니, .. 2023.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