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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작별들 순간들/배수아/문학동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2. 17.
#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동쪽으로 난 창으로

이른 아침 빛이 스며들면

눈곱 낀 눈을 비비며

온몸이 작동하도록

몇 번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

 

오늘 아침은

뿌연 회색 안개가 바다처럼 날개를 펼쳤고

희끄무레한 태양도

기가 죽은 듯 고요하더군요.

 

폴 블레이를

공간으로 들여놓으며

가만 창문 앞에 섰지요.

 

건너편

소나무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바람도 먼 나들이를 했을까요?

 

회색빛 안개의 바다가 주는 몽롱함이

고요와 맞물려

나의 파라다이스

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에서

 

배수아님의 작별들 순간들

마지막 장을 덮었답니다.

 

 

 

 

 

사실 책장을 넘기기가 아쉬워

천천히,

시를 음미하듯 그렇게 읽으려 했는데

다음 문장은 어떨까, 호기심에

책장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애써 자제하기 힘들었는데요.

 

수없는 밑줄을 그으며

그의 베를린 서가의 주인을 초대하고 싶은 바람 같이 것이

슬며시 기어드는

 

혹은 친애하는 친구 누구누구에게라는

긴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이 울렁거렸는데요.

 

우리 정원으로 가는 거야

나직이 속삭이는 배수아님의

환영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의 정원이나 그의 숲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고 아득한 몽상 속에서

 

잠시, 느리게

꼼짝없이 압도되어

장엄한 감동과 함께 서 있는

또 다른

를 발견했답니다..

 

그것은 그의 글이 너무 좋다, 라는 단순한 것이라기보다는

 

글쓰기는 언어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나는 무성영화와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스스로 만든 언어 안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존재는 거주이다. 내 거주는 글쓰기 안에 있었다. (“내 언어는 무너지는 집이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어디에서 살아왔던가? 항상 나는 내 최초의 집을 생각한다. 내게 최초로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는 누구였을까? 글을 쓸 때, 나는 종종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화가의 아틀리에를 상상한다. (233)

 

작가와의 어떤 동지 의식,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경지에 대한 소망 같은 것이 일부였고요.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처음에는 순간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 글은 모든 순간에 있었다. (8)

 

에필로그에서

내 글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는 상상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글 속의 대화체를 위한 장치이며 듣는 사람으로 위장한 발하는 사람의 역할이고, 실직적으로는 말을 암시하는 사람이자 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그는 마치 한 권의 책과 같고, 나는 반복해서 책을 읽는다고 쓸 뿐 한 권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 다른 사건이지 책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250)라는 맺음을 하는데요.

 

그의 말처럼 나는 그의 문장들을 기억 속에 저장하지는 못하겠지만 반복해서 읽고 쓰며 고독하게 산책하며 사유할 나의 파라다이스에서 소풍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계속 머물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내가 그의 책 한 권을 통과하며 나 자신을 어떻게 확장시켜야 하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나 자신으로부터 늘 작별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는 여정이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오랜만에 찾아온 황홀은 놀랍고, 기쁘고, 고맙고…… 하여.

 

 

 

 

 

밑줄 친 문장들

 

 

 

 

처음에는 순간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 글은 모든 순간에 있었다. (8)

 

 

 

하나의 작품은 다른 작품이 말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고, 하나의 작품은 다른 작품의 파동을 이룬다. 하나의 작품은 다른 작품의 내면화하는 읽기이다. 내용뿐 아니라 언어에서도.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에서도. 한 소설의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소설 밖으로 걸어나간 다음 순간, 그녀는 다른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인다. (21 22)

 

11월에 나는 글쓰기의 기원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비틀거린다, 라고 나는 대답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공포에 질려 비틀거릴 뿐이라고. 나 자신이 쓴 모든 것에걸려 넘어진다고. 그것은 밤의 숲에 드러난 뿌리다. 비명을 지르는 물닭이다. 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숲에서 방향을 잃은 채오직 낙엽을 헤치며 가는 중이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그러나 나는 내 공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

내 글은 아무도 모르게 달아나는 중이다. ‘글자 그대로 읽히는 것으로부터. (49)

 

 

어린 시절,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 된 사람은 태어날 때 이 생을 위한 지참금처럼 지니고 온 이미지와 생각을 먹고 살게 된다. 그리하여 예순세 살 예순네 살 예순다섯 살이 된 어느 토요일 강가를 산책하던 한 사람은, 이 강이 북아메리카의 강이라고 단정 짓고 흔들리는 수면의 영롱한 색채를 인디언의 색채인 양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의 환각 속에서 강물을 흘러가는 카누 한 대가 보인다. 카누에는 머리에 오색의 깃털 장식을 두세 개 꽂은 최후의 모히칸족이 타고 있다. 그 광경을 마주한 사람은 시민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보낸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회상한다……(90)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영영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강해진다. 나는 체념하고, 포기하고, 굴복하고, 인정하고, 마침내 울 것이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마지막 문장을 쓸 것이다. 아니, 눈물이 곧 마지막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마지막 문장은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94)

 

최초의 기억은 실제로아이가 보고 듣고 느낀 감각인지, 아니면 게르하르트 마이어가 썼듯이, 우리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이미지와 생각이 현실 사물에 투영된 현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일생 동안 그것을 먹고 산다. (104)

 

 

상실을 겪거나 배반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수치스러울 때면 나는 책상으로 가서 읽거나 쓰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삶을 바꾸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간절히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언젠가, 한 시간쯤 뒤에 혹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반드시 기분이 다시 좋아질 것이다. 나는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섬을 갖는다. 하나의 오두막을, 하나의 정원을 갖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평화를 느낀다. 물이 나를 들어올리듯이 그것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음을 느낀다. (110 111)

 

 

오직 내면의 눈으로 보게 되는 비전. 물가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있다. 비록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을 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래전 그들을 알았고, 그들의 몸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몸과 모종의 관계에 의해 연결된 상태였으며 나는 몸으로 그것을 느낀다. 나는 두려움 없이 홀로 그들의 뒤를 따른다.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내 최초의 언어였을 그 노래는 누구의 입에서 나왔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노래를, 언젠가 나도 부르게 될까. (115)

 

 

나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지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압도적인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으며 심지어 매혹적이거나 독특하거나 소름 끼치거나 아찔한 글도 아니라고, 문장 단위로 이루어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며, 개념과 펄학으로 쓰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체돠 통일과 조화의 글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연속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 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 무엇도, 심지어 내용이나 아름다움조차도 완성하거나 구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파편이었다. 단지 속삭임, 몸에서 울려나오는 숨과 같은 속삭임, 물처럼 들어올리는 속삭임, 글이 호흡하는 속삭임, 글을 해체하는 속삭임, 몸없이 환하고 불완전한 사물과 같은, 하지만 속삭이는 사물인, 혹은 모순되고 파편적인 몸을 가진 소리, 하나의 물방울이 돌 위로 떨어질 때 비로소 풀려나는 광물의 속삭임, 동굴의 한숨인 속삭임, 먼 훗날 어느 날 네가 희고 커다란 다리 위에 서 있을 때, 저녁이고 햇살이 강물 위로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에, 너는 혼자인데, 문득네 귀에, 네 입에, 네 몸안으로 동시에 덮쳐오는 파도처럼 사납게 속삭이는 여러 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끼고, 놀란 얼굴을 돌려 방금 누균가 네 곁을 스쳐지나간 것은 아닌지 헛되이 확인하려 할 때, 멀리 다리 건너편, 석탄처럼 불그스름하게 이글거리는 인파 속으로 막 사라지는 M***의 뒷모습이 보였다고 믿는, 그런 글쓰기를 원한다고.(134)

 

 

겨울이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해요, 하고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최초의 여행이므로, 우리는 커다란 가방을 끌고 얼어붙은 진창과 차가운 수렁을 지나서 갔다. 보이지 않는 비가 내리고…… 하루는 묽은 밤처럼 어두웠다. 얼음의 냉기가 감도는 방안에서 책상 위에 엎드린 한 사람. 나는 주먹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우리는 가야 해요, 하고 외쳤다. 너무 빠르고 급하게 가지 말아요 …… 하고 당신의 입이 말하려 하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194 195)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아마 한 권의 책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일생을 맡기기로 한 그런 일들. (237)

 

 

내 글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는 상상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글 속의 대화체를 위한 장치이며 듣는 사람으로 위장한 발하는 사람의 역할이고, 실직적으로는 말을 암시하는 사람이자 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그는 마치 한 권의 책과 같고, 나는 반복해서 책을 읽는다고 쓸 뿐 한 권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다른 사건이지 책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