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戀書시리즈 - 독후감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페터 한트케/윤시향옮김/문학동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2. 28.

 

 

 

 

엘프리데 옐리네크에 이어 두 번째로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파격적 형식과 내용으로 찬사와 비판을 넘나드는 문제적 작가 페터 한트케(1942년생)를 접했던 것은 아마 노벨문학상 때문이었나보다. 2019년 봄, 나는 그의 책 소망없는 불행을 접했고 그 후 이런 느낌을 남겼음을 지난 블로그를 보고 알았다.

 

외로움과 욕망과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여자의 전투는 왜 이렇게 쓸쓸한지,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마지막 희망은 여자의 자살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자살에 찬성하는 쪽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대한 욕망과 소망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되고자 했던,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를 충족치 못했던 루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살이라는 형태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의 유일한 방법이자 마지막 욕망의 실현이었음에 씁쓸하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는 누구이며 인생에 무엇을 욕망하며, 그 욕망을 향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게 했던 책.

 

 

 

 

그 당시에 함께 구입하고 읽지 못했던, 어쩌면 시적 제목 때문에 선택되었으리라, 짐작되는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 (문학동네)를 이제야 읽었다.

 

 

예민한 후각의 소유자, 버섯 전문가이자 중세 영웅 서사시의 애호가인, 잘츠부르크에 인접한 마을 탁스함에 사는 독수리 약국의 약사는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을 보내다 의문의 일격을 당한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후 집을 나서서 스텝 지역을 떠돌며 온갖 기이한 일을 겪은 끝에 마침내 말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를 그린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로테스크한 여정이 감정을 배제한 언어에 실려 신중하고 집요하게 가지를 뻗어나가는 로드 무비 형식의 주인공이 익명의 일인칭 화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소망 없는 불행은 비교적 쉽게 읽었는데 겨우 250여 쪽의 이 책은 처음엔 무엇을 이야기하나 의구심을 간직한 채 호기심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는 이 소설에 대해

방랑과 기행奇行, 과거에 대한 풍자, 위트, 돈키호테적인 발상과 낭만적 소재, 이 모든 것을 한 텍스트 안에 섞어놓고 있으며, 이를 독특한 서술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소설을 완성했다.”라고 평한다.

 

실어증에 걸린 여행자이자 주인공은 마지막 즈음에 화자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 이야기가 글자로 쓰인 것을 갖고 싶어요. 입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게로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글자로 쓰인 것은 다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도 내 이야기에서 뭔가를 얻고 싶답니다. 말과 글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 차이는 아주 중요하지요. 나는 내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된 걸 보고 싶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쓰인 것을 볼 거예요.”

 

자신의 자아에 대한 확신을 찾아 떠난 여행자는 결국 말과 글 사이의 차이를 느끼며 문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욕구, 아마도 작가 자신의 욕구였음을 어쩌면 그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이 소설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너는 무엇을 위해 쓰고 쓸 것인가?”

 

 

그의 다음 책을 읽고 싶은, 간절함을 어이 할거나?

 

 

 

 

 

<책 속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주변이 온통 깜깜해지던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그리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가 완전히 변화된 존재가 되기를 끈질기게 강요하는 이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60)

 

 

속도와 관계를 맺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야, 그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능력이 없다구. 이건 단지 오늘날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지. 내가 속도에 적응하기로 결단한 바로 그 순간, 아니 속도에. 최대한으로 가능한 속도에 단호히 나 자신을 내맡긴 그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지저귀를 뗀 후 처음으로 나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해. 이제 나를 아아, 어느새 - 또다시 오로지 !‘ 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적인 존재로부터 치유해주었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걸 포기한 건 아냐. 속도 가운데 파묻혀 있으면 나는 집에 있는 듯 편했어. 내가 오늘 완전히 기진맥진한 것도 아마 이제는 그렇게 재빠르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 (94)

 

 

먼 곳에 있다고 누가 그처럼 단정했을까? 언젠가 이미 말했듯이 그들 자신이다. 그들의 분위기와 상황, 여건 그리고 이야기와 소설이다. 어느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함께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느 이야기를, 더구나 공동으로 체험하고 있다는 의식이, 집을 전혀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멀리 와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105 106)

 

 

내 이야기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아요.” 탁스함의 약사가 대답했다. “가끔씩 슬프게 진행되고, 때론 거의 절망적이기도 하지만 죽는 사람은 있을 수 없어요.”(121)

 

 

그러던 어느 날, 밤바람 속에서 그는 실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다니, 잘된 일이야.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아도 돼. 이건 자유야! 아니 그 이상이지, 아주 이상적인 상태야! 정당을 하나 창설할까, 아니 차라리 신흥종교를 만들어? 벙어리들의 정당, 벙어리들의 종교? 아니지, 홀로 서야 해. 묵묵히, 자유롭게, 그리고 마침내 당연히 혼자서. (140)

 

 

승리자’! 중세 서사시를 읽어서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호칭이나 이름은 때때로 정반대를 의미하지요. ‘승리자는 그러니까 처음부터 실패자였던 거예요. 서사시의 비밀은 당연히, 언젠가는 모험이 무사히 끝나 패배자가 마침내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그렇게 불린 것도,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거나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승리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실패자에게 정해진 운명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쩌면 모험만이 팽팽한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몰라요.” (157)

 

 

당신은 그 실어 상태를 떨쳐버려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의 무언無言이 오늘이라도 당장 당신을 죽일 거예요. 당신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에요. 비록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의식을 확대 시켜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을수록 당신의 실어 상태는 위험해지고, 급기야 생명까지 위협할 거예요. 실어 상태가 계속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 있어 보이는 현재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체험까지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며 파괴될 거예요. 그렇게나 상징적인어린 시절까지도. 그러면 당신의 기억은 무가치해지고 또 파괴되어버리죠. 기억이 없어지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어지고 의사 소통도 불가능해져요. 당신은 지금 세계의 한계에 다다른 거예요. 친구여, 게다가 세계의 한계 저편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새롭게 말하려는 시도를 해야 해요.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고, 문장을 새로 만들고, 큰 소리로, 아니 소리라도 내보세요. 당신의 말이 비록 얼토당토않고 터무니 없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다시 입을 연다는 사실이에요.”(197 198)

 

 

P. 192

나는 그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로 인해 달라졌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동안 어디선가 나 자신에게 맹세한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 내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는 딴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달라져 보이는 것은 커진 발이었지요. 그래서 새 신발을 사야 했다는 것뿐이라오.” (224)

 

 

 

중요한 건,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을 당신이 커다란 종이 위에 적어둔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헛일이에요. 나는 백지 위의 검은 글씨를 원합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글자로 쓰인 것을 갖고 싶어요. 입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게로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글자로 쓰인 것은 다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도 내 이야기에서 뭔가를 얻고 싶답니다. 말과 글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 차이는 아주 중요하지요. 나는 내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된 걸 보고 싶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쓰인 것을 볼 거예요. 그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과 나를 제외하면 대체 누가 그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요?” 내가 물었다.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른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오직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만을 위해 쓰이는 이야기가 오늘날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가 대답했다. “어쩌면 그런 게 바로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가 아닐까요? 언젠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224 225)

 

 

 

 

그래요, 나는 내 이야기 도중에 몇 가지를 그르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더라도 뭔가 늦지 않고 제때 하고 싶답니다! 여기서 어느 곳에 서 있든, 어느 곳을 걷고 있든 나는 다음 모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다음번에는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위해서죠.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동경이라기보다는 탐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스승 파라켈수스가 버섯들에 관한 단상에서, ‘귀중한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자는, 바로 그 순간 벌써 또다른 귀중한 것으로 눈길을 돌린다고 말했던 대로지요. 다만 나는 그 특별한, 까맣게 작열하는 출발점을 더이상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당시, 내 이야기가 시작되던 때, 그땐 발견했었어요. 그 출발점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내줄 수 있을 텐데!” (227 228)

 

 

 

이어진 노래는 오랫동안 준비되고 차분히 다듬어진 곡 같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탈진상태가 되어 서로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서로에게서 맛보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나른함 속에 나란히 누웠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탄 속에 깨어났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조바심으로 창마다 내다보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내심으로 계속 달렸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 사랑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서 자유로웠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 대담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 감사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를 인정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땀을 흘렸다,

소리를 질렀다,

울었다,

피를 흘렸다,

침묵을 지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갔다,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할 수 없이 분노하며.” (230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