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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가난한 부자의 밥상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6. 18.

 

 

 

 

 

나는 물질적으로

지극히 가난한 사람이다.

 

이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월세 살이를 면하지 못했고,

돈 버는 데는 영 젬병이라

남편이 건네주는 200여만 원의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간다.

초라하다면 초라한 실체다.

 

그럼에도 나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물질적 가난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어,

소확행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베풀어줄 때,

그 마음이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한 달에 한 번,

거금을 들여

나를 초대해 맛있는 밥을 사주는

지인 언니가 한 분 계신다.

마음도 부자,

물질도 부자일 것이다.

 

모처럼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며칠을 생각했다.

얼마를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차릴까,

어떻게 하면 초라하지 않을까.

그렇게 결심 끝에 치른 행사가

7~8만 원짜리 밥상이다.

 

9,000원짜리 G7 와인 한 병,

만 원짜리 냉동 새우로 만든 감바스,

각종 야채를 곁들인 상차림.

 

그 언니와,

일주일에 한 번쯤

외로운 사람들끼리 밥이라도 먹자고

모이는 친구들을 함께 불렀다.

잠깐이었지만,

흥분된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숫자일 테지만,

내게는 꽤 많은 생각과

용기가 필요한 숫자였다.

 

그날 저녁,

혼자 남은 자리에서

나는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뿌듯했다.

그리고 눈물이 찔끔 났다.

 

왜였을까?

 

정성껏 차린 밥상이

실제로 그럴싸했다는 안도감.

가난하지만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

그리고 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다는 사실.

 

소박한 재료로 감바스를 만들고,

와인을 따고,

친구들이 맛있다고 할 때

그 순간이 너무 충만해서

오히려 슬펐던 것일 수도 있다.

충만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이 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날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하지만

누군가를 대접했다는 것,

그 작은 사실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서 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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