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존재에는 이야기가 있다.
실수로 도착한 것들,
버려질 뻔한 것들,
길을 잃은 것들도
누군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존재가 된다.
쿠은키가 그랬다.
이건 월명서가를 방문하신 분들께 드리는 작은 변명이에요.
좁은 공간에 저 철재물이 왜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속으로 '저건 뭐람' 혀를 끌끌 차셨다면,
혹은 '주인이 좀 과하네' 싶으셨다면,
이제 쿠은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길 잃은 철학자
안녕, 여러분!
제 이름은
'길 잃은 철학자',
줄여서 쿠은키(쿠팡이 낳고 은님이 키운) 예요.
은님은
우드 우체통을 주문했고,
저는 어느 창고에서
그 자리에 잘못 서 있었어요.
쿠팡의 물류 시스템은
저를 우체통이라 믿었고,
저는 군산으로 향하는 박스 안에 실렸어요.
도착하자마자
오해는 밝혀졌어요.
저는 우체통이 아니었어요.
교환이 이루어졌고,
저는 판매자가
수거 대상이 아니라고
자체 폐기 통보를 했답니다.
그러나 은님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호기심으로 조립을 시작했고,
저는 서서히 제 형태를 찾아갔어요.
그렇게 저는 이 자리에 서게 되었어요.
길을 잃었기에 이 자리에 있어요.
실수가 아니었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지금
음지식물들이
저를 채울 날을 기다리며,
이 공간의 철학자로 살아가고 있어요.
6월 말이 되면
제 몸 곳곳에
작은 음지식물들이
자태를 뽐낼 거예요.
그때쯤,
저를 보러 오시지 않겠어요?
월명서가에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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