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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허비 행콕 「Cantaloupe Island」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14.

#재즈뮤지션및곡소개

살아있는 재즈의 전설 허비 행콕(85)이 한국 무대에 선다는 뉴스를 듣고 깜놀했다.

2015년 칙 코리아와의 협연 공연 이후 11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는데 그는 1962년 데뷔 뒤 음악 인생 64년 동안 그래미상을 14회 받은 이력만으로도 설명이 필요 없는 거장이다.

오는 5월22~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제18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6’(이하 서재페)이 허비 행콕 등이 포함된 2차 라인업 30팀을 24일 추가 공개했다.
비록 서재페에서 그의 연주를 직관할 수 없다하더라도 뉴스를 듣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허비 행콕 「Cantaloupe Island」

‘캔털루프(Cantaloupe)’는 오렌지빛 속살을 가진 달콤한 서양 멜론이다.



허비 행콕(Herbie Hancock, 1940~ )이 명명한 ‘캔털루프 아일랜드’는 지도 위에 존재하는 물리적 영토가 아니라, 과일의 달콤한 과즙과 뜨거운 햇살의 이미지가 응축된 환상의 섬이다.


행콕은 이 가상의 섬을 통해 소리가 어떻게 시각적 풍경을 대체하고,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기억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려 했다. 재즈의 영토를 현대 음악의 지평으로 확장한 건반 위의 탐험가인 그는, 클래식의 엄격한 규율 대신 재즈의 자유를 선택하여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소리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1940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열한 살의 나이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1963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제2기 퀸텟에 합류하여 현대 재즈의 어법을 재정립하던 그는, 이듬해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Empyrean Isles(천상의 섬들)』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Cantaloupe Island」는 하드 밥의 토양 위에 소울 재즈의 비트와 모달 재즈의 색채를 결합하여, 재즈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반복의 미학을 완성했다. 행콕에게 이 곡은 단순한 연주곡이 아니었다. 캔털루프 멜론의 거친 겉면과 달콤한 속살처럼 지적인 구조와 본능적인 리듬이 공존하는 새로운 음악적 대륙이었다.


https://youtu.be/otFVFLtRF_s?list=PLfJndz0utgOMK-_0L9zuuOuOKzDcuNJmd


이 곡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도입부부터 곡 전체를 관통하는 피아노 리프다. F마이너 코드의 차갑고도 도시적인 질감이 반복되는 이 리프는, 풍경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적인 패턴처럼 들린다. 행콕은 이 곡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대신 극도로 절제된 리듬의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청중을 최면적인 상태로 이끈다. 토니 윌리엄스의 절묘한 심벌 워크와 프레디 허버드의 서정적인 코넷 연주가 그 위를 유영할 때, 반복되는 리프는 사라지는 모든 찰나를 붙잡아두는 시간의 닻이 된다. 같은 리프가 반복되는데 왜 매번 다르게 들리는가. 그것이 이 곡이 던지는 질문이다.


행콕의 음악 여정에서 「Cantaloupe Island」는 단순한 히트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93년 힙합 그룹 US3가 이 곡을 샘플링하여 「Cantaloop (Flip Fantasia)」를 발표했을 때, 행콕은 자신의 창조물이 새로운 시대의 비트와 결합하여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흔쾌히 수용했다.



https://youtu.be/FvQ3vTsGMPw?list=RDFvQ3vTsGMPw

원곡이 60년대 도시의 우수와 지적인 고독을 담고 있다면, 90년대의 재해석은 디지털 비트의 반복 속에서 고전의 생명력을 연장했다. 풍경이 물리적으로 소멸하더라도 그 풍경이 지녔던 리듬의 패턴은 다른 형식으로 부활하여 반복된다는 것을 이 샘플링이 증명했다. 원곡을 알고 들으면 두 곡이 동시에 들린다. 60년대와 90년대가 한 트랙 안에서 겹친다.

행콕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한 일화는 그가 반복과 우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공연 중 행콕이 명백한 미스 터치를 범했을 때, 마일스는 당황하지 않고 그 실수를 곡의 새로운 일부로 받아들여 연주를 이어갔다. 행콕은 훗날 이 경험을 회고하며, 마일스는 자신의 실수를 실수로 듣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에게 실수를 다음 선택의 재료로 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Cantaloupe Island」의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주들은 이 태도의 산물이다. 실수조차 다음 선택의 재료가 된다. 리프는 같지만 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매번 다르다.

행콕의 음악적 행보는 소리의 질감이 어떻게 공간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Cantaloupe Island」에서 들리는 피아노의 타건은 건반을 누르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 텅 빈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말뚝을 박아 넣는 설계자의 손길과 같다. 이 곡이 수록된 『Empyrean Isles』가 천상의 섬들을 뜻한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행콕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 혹은 이미 사라져 버린 환상의 영토를 반복적인 리듬의 그물로 길어 올리려 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소리로 만드는 일이었다.

https://youtu.be/GHhD4PD75zY?list=OLAK5uy_k9gp1SSDfKjGOWmhm9T2g9IXYl7PKfWuk

그는 일찍이 전자 악기를 재즈의 심장부로 끌어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훗날 「Rockit」으로 대변되는 전위적인 실험 정신은 이미 「Cantaloupe Island」의 집요한 리프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미세하게 타점의 강도를 달리하는 그의 연주는, 같은 장소를 매일 산책하지만 결코 어제와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은유다. 반복은 정체가 아니다. 소멸해 가는 대상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한 의식이다.



이러한 반복의 미학은 보컬 버전들을 통해 다른 층위를 얻는다. 재즈 보컬의 거장 마크 머피는 특유의 스캣과 세련된 창법으로 이 리프 위에 가사를 얹어 캔털루프 아일랜드를 기억의 장소로 구체화했다.


https://youtu.be/oRrNT0A4SaE?list=RDoRrNT0A4SaE


그의 목소리는 행콕의 차가운 타건 사이를 유영하며 사라짐을 견디는 인간의 온기를 보탠다.

US3의 변주는 랩과 샘플링이라는 현대적 반복을 통해 고전의 비트 위에 동시대의 맥박을 수혈했다. 이 버전들은 모두 행콕의 지적인 반복이 자칫 잃어버릴 수 있었던 누군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실존적 증거를 목소리라는 흔적으로 남긴다. 섬은 환상이지만 그 섬을 기억하는 목소리는 실재한다.



https://youtu.be/Qr_ttU0nEZs?list=PLAxLqgYx1tvxLyaeJq4Hv-FQLvjIESd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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