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건 「개복동 꽃순이」
임인건의 음악 중에서 나는 제주 시절의 것들을 가장 좋아한다. 2013년 제주 구좌읍 하도리에 정착한 뒤 그가 만들어낸 곡들은 서울 야누스 시절의 것과 결이 달랐다. 도시의 긴장이 빠지고 섬의 공기가 들어온 음악이었다.
앨범 《All that Jeju》에 담긴 「평대의 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https://youtu.be/OQRxSGDszjE?list=RDOQRxSGDszjE
제주 구좌읍 평대리, 비자나무 숲 언저리의 봄을 담은 곡이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느리고 투명했다. 피아노 한 음 한 음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만들었다. 그 여백 속에 봄바람이 있었고, 해풍이 있었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섬의 시간이 있었다. 「하도리 가는 길」도 그랬다. 「용눈이 오름의 봄」도 그랬다.
https://youtu.be/buyVizPFCeI?list=RDbuyVizPFCeI
그의 제주 음악들은 한결같이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 있었다. 그 존재 방식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그런 임인건이 2016년 앨범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에 「개복동 꽃순이」를 넣었다.
임인건은 열여섯에 피아노를 처음 만났다. 중학교 2, 3학년 때였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미친 듯이 쳤다고 했다. 한번 앉으면 10시간, 11시간씩, 아침 8시면 어서 치고 싶어서 빵 반쪽, 우유 한 모금만 먹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음악이 먼저 독학으로, 늦게, 그러나 열렬하게 그에게 왔다.
20대 중반 재즈를 시작했다.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의 소개로 1986년 야누스 무대에 섰다. 야누스는 1978년 박성연이 신촌 이대 골목에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재즈 클럽이었다. 클래식과 키스 재릿만 들어온 젊은이가 갑자기 스윙과 재즈 속으로 들어갔다. 박자도 달랐고 감성도 달랐다. 그런데도 야누스의 선배들은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항상 연주 좋았다고 했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것이 드러나게 해줬다고 임인건은 나중에 회고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2013년 제주로 이주할 때까지 그는 야누스를 떠나지 않았다.

1989년 첫 솔로 앨범 《비단구두》를 냈다. 국내 최초의 피아노 솔로 앨범이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작곡가였다. 「바람이 부네요」는 그가 만든 곡이다. 나중에 이소라가 불렀고 박효신이 불렀다. 그러나 이 곡이 가장 깊이 닿는 것은 야누스 1세대 보컬 박성연의 목소리로 들을 때다. 박성연은 병원에서 일주일에 이틀씩 나와 자택에서 연습하며 이 곡을 녹음했다.
“임인건 씨가 곡을 써준 것이 요즘 살아가는 힘을 줘요. 죽는 날까지 노래하겠다는 소망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목소리에는 살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무게가 있었다.
https://youtu.be/SV_6_RmvYNw?list=RDSV_6_RmvYNw
2015년,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과 박성연이 재정 문제로 야누스를 정리하고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임인건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주에서 바로 움직여 2016년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1세대 재조명 앨범은 대부분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임인건은 달리 했다. 야누스 시절의 기억과 선배 뮤지션들을 위해 직접 곡을 만들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판근을 기리는 「I'll Remember 이판근」
https://youtu.be/QmwMfApG-2Q?list=RDQmwMfApG-2Q
김수열의 테너 색소폰과 베이스만으로 이루어진 「Mr. 김수열」
https://youtu.be/Oyj6ogukmvY?list=RDOyj6ogukmvY
1세대 세 명이 모두 참여한 「야누스 블루스」.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음악이 됐다.
그 앨범에 「개복동 꽃순이」가 들어 있다. 개복동은 군산의 성매매 집결지였다. 2002년 1월 29일 새벽, 그 골목 2층 건물에서 불이 났다. 열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그 안에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에는 철창이 박혀 있었다. 탈출할 수 없었다. 열다섯 명 모두 죽었다. 그 남성은 여성들을 감시하던 사람이었다. 밖을 알고 있었지만 그 문을 열지 못했던 사람, 끝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비명을 지를 수 없었는지, 지르지 않았는지, 지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우리는 그 새벽의 침묵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거기 있었다는 것, 그리고 죽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https://youtu.be/RQKObmfDfGk?list=RDRQKObmfDfGk
임인건이 그 공간에 곡을 붙였다. 꽃순이는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 골목에서 살아간 수많은 여성들의 집합적 이름이었다. 곡의 구조는 전형적인 재즈 스탠더드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느린 템포, 자유로운 루바토, 마이너 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화성이었다. 피아노의 터치는 부드럽고 투명해서 음 하나하나가 공간을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겼다. 그 여백이 침묵이었고, 그 침묵이 사회가 외면한 목소리였다. 선율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불완전 종지로 끝났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음악이 스스로 고백했다.
「개복동 꽃순이」를 들을 때마다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음악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음악 뒤에 있는 것들 때문이었다. 그네들은 왜 거기 있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었고,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골목에 들어갔고, 그 골목에 들어간 뒤에는 나올 수 없었다. 개인의 불행이기도 했지만 그 불행을 방치한 사회의 것이기도 했고, 그 구조를 묵인한 국가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도 국가도 그 새벽의 화재 앞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사고였다. 그냥 지나갔다. 꽃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에 꺾인 것들이었다. 가여운 어린 꽃들이었다. 그 꽃들이 잠긴 문 안에서, 철창 박힌 창 앞에서, 소리를 질렀는지 질렀다면 그 소리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임인건의 피아노는 그 모름 앞에서 울었다. 나도 그 앞에서 울었다.
재즈의 역사에는 이런 음악들이 있었다. 사회가 외면한 것을 음악이 정면으로 불러낸 순간들이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1939년 「Strange Fruit」을 불렀다. 미국 남부의 린치 현장, 나무에 매달린 흑인의 시체를 이상한 열매라고 노래한 곡이었다. 레코드사는 녹음을 거부했고, 공연장은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홀리데이는 불렀다. 침묵보다 노래가 더 정직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찰스 밍거스는 1959년 「Fables of Faubus」를 만들었다. 흑인 학생들의 학교 입학을 막기 위해 주 방위군을 동원했던 아칸소 주지사 오벌 포버스를 직접 겨냥한 곡이었다. 밍거스는 가사까지 붙여 그 이름을 음악 속에서 조롱했다. 아치 쉐프는 1972년 앨범 《Attica Blues》를 냈다. 뉴욕 아티카 교도소 폭동 진압 과정에서 43명이 사망했다. 쉐프는 그 죽음들을 앨범 전체로 기록했다. 그리고 존 콜트레인은 1963년 버밍햄 교회 폭탄 테러로 네 명의 흑인 소녀가 죽은 뒤 「Alabama」를 만들었다. 말이 없는 곡이었다. 멜로디가 마틴 루터 킹의 추도 연설의 리듬을 따랐다. 언어보다 더 깊은 곳에서 애도했다.
이 곡들의 공통점은 분노가 아니었다. 분노는 오히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이름을 불렀다. 지워진 이름, 외면당한 이름, 숫자로만 처리된 이름을 음악 속으로 불러들였다. 「개복동 꽃순이」도 그랬다. 임인건은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불렀다. 꽃순이라는 이름으로, 그 새벽에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음악 속으로 불러들였다. 홀리데이가 불렀고, 밍거스가 불렀고, 쉐프가 불렀고, 콜트레인이 불렀던 것처럼, 임인건도 불렀다. 재즈가 그에게 그런 언어였다.
임인건은 이 앨범으로 야누스를 기억했다. 그 기억의 방식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 병실에 있는 사람들, 잊히고 있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불러내는 것이었다. 「개복동 꽃순이」는 그 방식의 연장이었다. 기억하는 것, 이름 붙이는 것, 소리로 불러내는 것이었다. 재즈가 임인건에게 그런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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