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my Scott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울고 있는 어른이 보였다. 소리 내지 않고 우는 어른이었다. 때때로 나는 엄마 없는 아이 같다고, 그 말을 낮게 읊조리면서 속으로만 삭이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는 작았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것은 작지 않았다.

지미 스콧은 1925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죽었다.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였다. 스콧은 현장에 있었다. 그 뒤 열 명의 형제자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위탁 가정과 고아원을 전전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콧에게는 칼만 증후군이 있었다. 뇌하수체 기능 이상으로 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희귀 질환이었다.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 키가 150센티미터를 넘지 못했다. 몸은 아이처럼 남았다. 목소리도 아이처럼 남았다. 그는 평생 소프라노로 살았다. 공연장에 섰을 때 틀린 가수가 나온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스콧은 개의치 않았다. 그 목소리로 노래했다.
1960년대 초, 레이 찰스가 그를 자신의 레이블 탄제린에 영입했다. 「Falling in Love Is Wonderful」이었다.
https://youtu.be/gZsKK-KfiHI?list=PL3Kvox3ecBrtsfCWdVsNJGJdtPY78sNJz
발매 직후 전량 회수됐다. 사보이 레코드의 허만 루빈스키가 계약권을 주장했다. 앨범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1969년 녹음한 「The Source」도 마찬가지였다.
https://youtu.be/IRzCew5DRG4?list=OLAK5uy_kL6UjF2yvLwrGHZzzI3RbYIV-4xkCt-UI
애틀랜틱 레코드를 통해 발매됐지만 루빈스키가 다시 나타났다. 몇 주 만에 사라졌다. 두 번 만들었고 두 번 막혔다. 그것이 그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뜻이었다.
스콧은 그 뒤 30년 가까이 음악계에서 사라졌다. 병원 잡역부로 일했다. 호텔 엘리베이터 운전원으로 일했다.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변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것만은 아무도 앗아가지 못했다.
1991년에 돌아왔다. 친구이자 작곡가인 닥 포머스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사이어 레코드 대표 시모어 스타인이 그를 알아봤다. 데이비드 린치도 같은 해 드라마 〈트윈 픽스〉 최종화에 그를 기용했다. 붉은 방, 지그재그 바닥,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공간에서 스콧이 노래했다. 린치는 그 목소리에서 시간 바깥에 있는 것을 봤다. 30년을 기다려온 것들이 쌓인 목소리. 이후 스콧의 앨범들이 재발매됐다. 「The Source」도 세상으로 돌아왔다.
https://youtu.be/-4aHWG7aqPM?list=RD-4aHWG7aqPM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는 19세기 노예제 시대의 영가다. 어머니와 강제로 헤어진 흑인 아이들이 불렀다. 팔려가는 아이, 남겨지는 아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아이. 민권운동 시기에 다시 불렸다. 말 그대로의 뜻으로도, 은유로도 읽히는 노래였다. “sometimes”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 단어 하나에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있었다.
https://youtu.be/ZXg9UFUXFXU?list=RDZXg9UFUXFXU
오데타는 1960년 카네기홀에서 이 곡을 불렀다. 혼자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 목소리는 땅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깊고 넓었다.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수백 년의 시간을 통과한 목소리였고, 공동체 전체가 견뎌온 것들의 무게였다. 스콧의 버전은 달랐다.
https://youtu.be/7kqsSX8rZro?list=OLAK5uy_kL6UjF2yvLwrGHZzzI3RbYIV-4xkCt-UI
「The Source」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트랙이었다. 4분 53초짜리였다. 그는 박자를 밀었다. 악단이 이미 다음 마디로 넘어갈 때 스콧은 아직 이전 음절에 있었다. 흘러가는 것을 붙잡는 것이었다. 음과 음 사이에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에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들어찼다. 오데타가 공동체의 슬픔을 노래했다면, 스콧은 개인의 것을 노래했다. 어머니가 죽던 날 현장에 있었던 열세 살 아이의 것이었다. 형제들과 흩어지던 날의 것이었다. 30년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다리던 것이었다. 그것들이 4분 53초 안에 있었다.
도른은 훗날 이 앨범에 대해 말했다. 스콧이 처음으로 상업적 규칙 없이 원하는 것을 만든 앨범이라고. 스콧에게 그것이 시대와 관련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야. 그냥 감정이었어. 표현의 선택이었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감정이 시대의 것이었다. 어머니 없는 아이의 목소리가 어머니를 잃은 시대의 목소리가 됐다. 그것은 스콧이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어머니 없는 아이’를 마주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그 목소리처럼 작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나를 붙잡아준다. Jimmy Scott의 노래는 시대의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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