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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13.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고

 

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스탈린 체제라는 감옥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이 어떻게 권력을 조롱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설이다.

어떤 소설들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통과된다. 독자는 그 안을 걸어가면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빌라도인지, 어느 지점에서 거장인지를 묻게 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 앞에서 독자는 단순한 관람자로 머물 수 없다.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사랑이 어떻게 그 무너짐을 버티게 하는지를 함께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신론과 유물론이 지배하며 모든 초자연적 가능성을 거세했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악마 볼란드가 나타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전복의 시작이다. 볼란드와 그의 수행단, 체커판을 두는 거대 고양이 베헤모스, 뾰족한 코의 코로비예프는 경직된 모스크바 시내를 휘저으며 위선적인 관료들과 기회주의적인 예술가들을 철저히 농락한다. 문인 협회의 수장은 목이 잘리고, 마술 공연장에서는 공짜 옷과 돈에 달려드는 시민들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불가코프는 외부에서 온 절대적 타자를 통해 인간들이 구축한 허구적 질서의 내부를 환히 드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에서 악마가 오히려 가장 정직한 존재라는 점이다. 볼란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위선을 폭로할 뿐이며, 그 폭로가 이미 심판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뒤집히는 순간,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선이라고 믿어왔는지를 되묻게 된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인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서사는 이 소동극에 비극적 무게를 더한다. 거장은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의 만남을 다룬 소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탄압받고 정신병원에 갇히며, 그의 원고는 불태워진다. 그러나 볼란드는 "원고는 타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의 예술을 복원한다. 불가코프가 이 대사를 쓴 것은 자신의 원고가 실제로 압수된 뒤였으므로, 이 한 문장은 소설 속 볼란드의 말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선언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 멈추었다. 권력은 종이를 태울 수 있지만 그 종이에 새겨진 인간의 사유까지 태울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문학이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이유다. 불가코프는 죽었고 스탈린도 죽었지만, 이 소설은 지금 여기서 읽히고 있다.

 

한편 마르가리타는 거장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의 계약을 마다하지 않고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에서 무도회의 여주인이 되며, 마녀로 변신해 하늘을 날면서 두 사람을 괴롭혔던 관료들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빗자루를 탄 그녀의 비행은 중력이라는 물리적 구속과 검열이라는 정신적 구속을 동시에 뛰어넘는 비상이다. 마르가리타는 이 소설에서 가장 능동적인 인물이다. 거장이 무너지는 동안 그녀는 싸운다.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를 불가코프는 마녀의 비행이라는 환상적 언어로 그려내는데, 그 언어가 오히려 가장 정확하게 진실을 가리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실제로 중력을 거스른다. 그것이 은유가 아니라 사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이 소설 안에 있다.

 

불가코프는 현대 모스크바의 소동극 안에 거장이 쓴 예수와 빌라도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액자 소설 형식을 통해 2000년 전 예루살렘의 고뇌와 현대 모스크바의 비극을 교차시킨다. 예수를 살리고 싶었으나 권력의 압박에 굴복해 그를 처형하고 평생 후회한 빌라도의 내면은, 스탈린 치하에서 침묵과 굴복 사이에 놓였던 당대 지식인들의 실존적 고뇌와 정확히 겹쳐진다. 비겁함은 불가코프에게 가장 큰 죄악이다. 빌라도의 비겁함은 단순한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배반하는 순간이며, 그 배반의 대가는 평생의 후회로 치러진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이 권력 앞에서 내리는 선택의 구조는 반복되며, 불가코프는 성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현대의 비속한 공간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박제된 역사를 현재의 살아있는 담론으로 끌어올린다. 결국 이 소설이 묻는 것은 하나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불가코프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끊임없는 감시와 원고 압수, 상영 금지에 시달렸고, 해외 이민을 요청하는 편지를 소련 정부에 보냈으나 스탈린이 직접 전화를 걸어 거절했다. 그는 소련을 떠나지 못했고 소설의 출간도 보지 못한 채 1940년 눈을 감았으며, 소설의 완전한 전문이 정식 출판된 것은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1973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하거나 굴복하는 대신 현실을 조롱하는 환상적 소동극을 창조함으로써 영혼의 자유를 선포했다.

 

나는 25년 넘게 글을 써왔지만, 글쓰기가 생존의 방식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이해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쓴다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쓰는 동안만큼은 세계가 나를 압도하지 못하게 막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불가코프의 글쓰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살아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에 썼을 것이다. 원고를 압수당하고도 다시 쓰고, 출판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썼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어떤 문장보다 더 강렬하게 읽힌다. 글을 쓰다 보면 때로 이것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지, 혹은 끝내 닿지 못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그 막막함 앞에서 불가코프를 떠올린다. 그는 끝내 출간을 보지 못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그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지금 여기 존재한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펼쳐 금기 너머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불가코프는 이 소설 전체를 통해 증명했다. 그 날개는 박탈당하지도, 압수당하지도, 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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