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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네 멋대로 써라》데릭 젠슨 지음 /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6.

 

 

독후노트 — 《네 멋대로 써라》

데릭 젠슨 지음 /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

(원제: Walking on Water: Reading, Writing, and Revolution, 2004)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날, 젠슨은 깨달았다. 철창 안의 사람들이 강의실의 학생들보다 오히려 더 솔직하게 쓴다는 것을. 잃을 체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역설에서 시작한다.

 

학교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복종을 가르쳐왔다. 성적표는 지식의 척도가 아니라 권력에 순응하는 능력의 척도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목소리를 잃는다. 아니, 정확히는, 묻어둔다. 젠슨은 성적 대신 체크 표시를 썼다. 제출하면 하나, 진짜 좋은 글로 갈고닦으면 넷. 사소해 보이는 이 변화는 사실 평가 권력 전체를 해체하는 행위였다. 너를 판단하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그가 반복해서 말하는 건 하나다. 우리 안에는 글 쓸 수 있는 사람이 백 명쯤 들어앉아 있는데, 예의 바르고 눈치 빠른 딱 한 사람이 늘 앞줄을 차지한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 강한 충동 앞에서 얼버무리는 사람. 그가 앞에 나서는 순간 나머지 아흔아홉은 입을 다문다. 글이 안 써지는 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 한 사람 때문이다.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 것이 제1 규칙이고, 제2, 제3, 제4 규칙도 똑같다. 나머지는 전부 기술적인 문제다. 그리고 젠슨은 이 글쓰기 론을 어느 순간 삶의 방식론으로 밀고 나간다. 쓰는 일과 사는 일은 그에게 분리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멈춘 대목이 있다. 25년을 써온 사람도 그 예의 바른 얼굴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사실이다. 문학상을 의식하는 순간, 독자 반응을 계산하는 순간, 글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여전히 문장이 되고 단락이 되지만, 어딘가 한 꺼풀 덧씌워진 느낌. 날 것의 충동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가장 뜨거웠던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오랫동안 그것을 ‘완성’이라고 여겼다. 뭔가 나의 착각이었고, 이 착각으로 내 날 것이 색을 잃어간다는 느낌을 오랫동안 버릴 수 없었다.

 

젠슨은 혁명이라는 말을 쓴다. 제목에 박아 넣은 그 단어. 그가 말하는 혁명은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 길들여진 문화 안에서 자기 심장 소리를 따르는 것, 그것이 가장 불편하고 가장 절박한 저항이라고 그는 말한다. 글쓰기는 그 저항의 형식이다.

 

나는 아직 내 안의 아흔아홉 명을 다 꺼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그들을 하나씩 두려움 없이, 그러나 떨면서 꺼내보고 싶어졌다. 혈관 꼭지를 따는 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을 온전히 읽으려면, 젠슨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야 한다. 데릭 젠슨은 콜로라도 광산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이스턴 워싱턴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를 받았다. 이후 대학 강의실과 펠리컨 베이 최고 보안 교도소에서 글쓰기를 가르쳤고, 뉴욕 타임스 매거진과 오듀본 등에 글을 발표하며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를 단순한 글쓰기 교사나 문학적 에세이스트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는 처음부터 글쓰기와 환경운동, 문명 비판을 하나의 궤도 위에 놓고 걸어온 사람이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 살며 Deep Green Resistance 운동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Walking on Water 이전에 A Language Older Than Words (2000)가 있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어린 시절을 출발점으로, 개인이 겪는 폭력과 문명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이 어떻게 같은 뿌리를 갖는지를 파고든 회고록이다. 상처에서 시작한 글이지만 그 도달점은 생태철학이었다. 이 책이 없었다면 Walking on Water도 없었다. 젠슨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학대를 통해 잃어버린 목소리를 타인에게서 되찾아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Walking on Water 이후, 젠슨은 방향을 튼다. Endgame Vol. 1 & 2 (2006)에서 그는 산업문명 자체가 생명과 양립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저항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여야 한다고. Deep Green Resistance (2011)에서는 문명 해체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논하고, The Myth of Human Supremacy (2016)에서는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자체를 해부한다. 점점 더 불편해지고, 점점 더 절박해지는 방향으로. 한국에는 번역본이 네 멋대로 써라 하나뿐이지만, 이 한 권만으로도 젠슨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이후에 걸어간 길을 알고 나면, 이 책의 마지막 단어 revolution이 다르게 읽힌다. 그는 처음부터 글쓰기를 삶의 방식으로, 삶의 방식을 저항으로, 저항을 혁명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교도소 수감자들이 강의실 학생들보다 솔직하게 썼던 그 이유, 잃을 체면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그 이유는 결국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봐 두려워 쓰지 못하는가.

 

나는 올해 8월, 단편집을 비롯한 일곱 권의 책을 낼 것이다. 25년의 글쓰기가 압축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들을 묶어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동안의 삶의 궤적을 훑게 될 것이고, 그 끝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남을 것이다. 이제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젠슨도 아마 그 질문 앞에 섰을 것이다. Walking on Water를 덮고 나서. 그리고 그는 점점 더 불편한 쪽으로, 점점 더 절박한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나의 대답은 아직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물음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다. 젠슨이 Walking on Water 이후 걸어간 길이 점점 더 불편하고 절박한 방향이었다면, 그것은 그가 미리 설계한 노선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권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질문이 생겼을 것이고, 그 질문이 그를 다음 책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쓰는 일이란 결국 도착하고 나서야 출발점이 보이고, 끝내고 나서야 무엇을 향해 걷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일일 것이다.

 

25년을 걸어온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내가 써온 것들이 결국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렴풋이 보인다는 것이 곧 다음을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무언가를 향해 걸어야 한다는 것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이 불안이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설렘이기도 하다.

 

젠슨이 말한 그 예의 바른 얼굴을 치우는 일은, 어쩌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쓸 때마다 다시 나타나고, 완성할 때마다 다시 앞줄을 차지하려는 그 얼굴과, 평생 밀고 당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안다는 것, 그 얼굴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면서 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제의 글과 오늘의 글은 조금 다를 것이다. 혈관 꼭지를 따는 일은 여전히 첫 번째이고, 아마 마지막까지도 첫 번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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