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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승자는 혼자다 — 혹은, 지는 자의 품위에 대하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11.

승자는 혼자다 — 혹은, 지는 자의 품위에 대하여

 

파울로 코엘료는 묻는다.

“진정한 승자란 누구인가?”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 위에서, 럭셔리한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는 이 질문을 던진다.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이고르, 꿈을 향해 몸을 던지는 가브리엘라, 그 모든 욕망의 향연을 가로질러 조용히 빠져나가는 재스민. 코엘료는 재스민이 옳다고 말한다. 현실과 환상의 차이를 이해하고, ‘꿈의 공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했으니까.

 

책을 덮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코엘료를 오래전부터 읽어왔다. 《연금술사》에서 자아의 신화를 배웠고, 《브리다》에서 사랑과 운명의 무게를 느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의 그 오래된 슬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날카로운 생의 역설, 《11분》이 건드렸던 수치와 욕망의 경계. 《오 자히르》에서는 집착과 해방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것을 보았고, 《알레프》에서는 기차 위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작가의 불안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한 권씩 읽어가는 동안, 나는 그가 던지는 질문들이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제 《승자는 혼자다》. 이 질문을 그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다시 꺼내든다.

 

이 소설의 구조는 교묘하다. 이고르는 살인자이지만 그의 논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위해 죽인다. 세상이 헛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인다. 피해자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준다고 믿으면서 죽인다. 독자는 그의 뒤틀린 시선을 따라가면서 어느 순간 불편한 것을 발견한다.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는 것. 칸의 레드카펫 위에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이름을 얻기 위해 몸과 자존심을 내주는 사람들, 명성이라는 신화를 소비하면서 정작 자기 삶을 잃어가는 사람들. 이고르의 살인은 그 세계의 허상을 향한 극단적인 주석이다.

 

코엘료는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유보한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는 결국 보물을 찾았다. 《베로니카》는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그러나 《승자는 혼자다》에서 꿈을 향해 달려간 사람들의 결말은 차갑다. 가브리엘라는 기회를 잡았지만 그 기회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삼켜진다. 이고르는 에바를 되찾지 못한다.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칸의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된다. 승자는 없다. 아니, 승자는 혼자다. 그리고 그 혼자라는 말 안에는 고립과 공허가 함께 들어 있다.

 

나는 이 질문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방식으로 25년을 써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되는 글, 화제가 되지 않아도 되는 문장, 군산이라는 도시의 골목과 강변과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 발효시켜온 시간들. 그것이 패배인지 선택인지를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코엘료는 말한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전투입니다. 때론 이기고, 때론 지죠.”

 

이 문장이 유독 오래 남았다. 그는 세계 3억 2천만 독자를 가진 작가다. 그러나 그 말은 겸손의 수사가 아니라 사실처럼 들렸다. 승자도 매일 진다. 그렇다면 지는 자는 매일 무언가를 이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명성의 세계와 거리를 둔 채 써왔지만, 사실 그 거리가 늘 편하지만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보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입장이라고. 패배가 아니라 태도라고.

 

재스민은 꿈의 공장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처음부터 그 공장 근처에 없었다. 승자는 혼자다. 지는 자도 혼자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서 나는 여전히 쓰고 있다. 그것이 패배인지 선택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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