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 〈어둠 속의 댄서〉
“난 모든 걸 봤는 걸요. 나무도 보았고, 미풍에 나부끼는 버드나무 이파리도 보았죠. 제일 친한 친구의 손에 죽은 사람도 보았고, 채 꽃도 못 피우고 스러진 생명들도 보았죠. 내가 누군지를 보았고 뭐가 될지 알고 있어요. 난 모든 걸 보았으니 더 볼 것이 없답니다.”
영화 속 여주인공 셀마가 톰과 함께 철길 위에서 부르는 이 노래는 셀마의 내면에서 솟아난 환상이다. 현실이 견딜 수 없을 때 그녀는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나 관객은 음악 너머의 냉혹한 현실을 알고 있기에, 이 장면은 아름답지 않다. 뮤지컬은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생존 방식이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주인공 셀마는 교수대에 오르고 목에 밧줄이 걸리고, 발판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노래를 한다. 비요크의 목소리가 그 공간을 채우고, 노래는 끊기지 않으며, 죽음이 노래를 끊는다.
라스 폰 트리에는 덴마크 감독으로, 1956년 코펜하겐 근교 콘겐스 링뷔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에게 규율도 종교도 즐거움도 허용하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금지였지만 동시에 아무런 규칙도 없었다. 금지와 방임이 함께 있었고, 그 역설적인 자유 속에서 트리에는 불안을 키웠다.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낯선 곳에 가지 못했으며, 칸 영화제에는 차를 몰고 갔다. 영화는 세상 밖으로 나갔지만 그는 세상 안에 갇혀 있었다.
〈어둠 속의 댄서〉는 2000년에 나왔고, 칸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뮤지컬 장면에는 100대가 넘는 디지털 카메라를 동시에 돌렸고 나머지는 핸드헬드 한 대로 찍었으며, 두 방식이 한 영화 안에서 충돌한다. 카메라가 흔들릴 때는 현실이고, 카메라가 고정될 때는 환상이다. 트리에는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 비요크를 주인공 셀마로 캐스팅했는데,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그녀에게 트리에는 꾸며진 고통이 아니라 실제 고통을 요구했다.
셀마는 체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공장 노동자로, 유전성 질환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들 진 역시 같은 병을 물려받을 것이었다. 셀마는 아들의 수술비를 모으며 자신의 시야가 좁아질수록 통장의 숫자가 커지는 역설을 살아갔다.
뮤지컬 장면은 셀마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공장의 기계 소리가 리듬이 되고 법정의 긴장이 안무가 된다. 현실이 견딜 수 없어질 때 셀마의 머릿속에서 노래가 시작되지만, 그 장면들은 아름답지 않다. 관객은 음악 너머의 현실을 알고 있고, 노래가 끝나면 다시 공장이고 법정이고 감옥이며, 뮤지컬은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생존 방식이다.
이웃 빌이 셀마의 수술비를 훔쳤다. 셀마가 돌려달라고 하자 빌은 총을 꺼냈다. 나는 이 장면이 다가올수록 불안과 두려움에 젖어들었고, 결국 영화를 한 번에 보지 못했다. 셀마가 빌을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이 두려웠던 것은, 선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셀마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셀마처럼 선한 사람도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봤다. 불편함을 견디는 것 자체가 이 영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발사됐고, 빌이 죽었다. 재판에서 셀마는 침묵했는데, 빌의 아내가 수치를 당할까봐, 빌의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막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선택했고,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법은 그녀의 절박함을 묻지 않았으며, 사회적 약자가 얼마나 쉽게 희생양이 되는지를, 제도의 정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이 재판은 조용히 고발했다.
트리에는 그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비요크와 극심하게 대립했고, 촬영 후반에는 트리에가 아예 촬영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요크는 촬영이 끝난 뒤 트리에를 향해 "날 착취해 상 타먹었다"고 면전에서 비난했고, 칸 영화제 이후 트리에가 사과의 의미로 직접 만든 분홍색 베개를 소포로 보냈지만 비요크는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대로 반송해버렸다. 두 사람은 이후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마지막 장면은 남았다.
비요크는 다시는 배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운드트랙 앨범 「Selmasongs」는 냈고, 교수대 위의 노래도 거기 있었다. 제목은 「107 Steps」였는데, 교수대까지 걸어가는 107걸음을 세면서 끝까지 노래했다. 걸음을 세는 것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동시에 일어났고, 하나는 끝을 향해 가고 하나는 끝을 거부했으며, 그 두 가지가 겹쳐 있는 것이 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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