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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들

영화 <스틸 라이프 (三峽好人)>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10.

영화 <스틸 라이프 (三峽好人)> — 사라지는 것들의 자리

 

 

 

영화가 좋다. 정말 좋은 영화를 본 날은 며칠 동안 그 안에서 산다. 배우가 바라본 창문 너머 풍경이 내 눈 안에서 계속 흐른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귓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가 그랬다.

 

처음엔 낯설었다.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는다. 인물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눈물도 없다. 절규도 없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감동이 소리를 내지 않고 밑바닥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지아장커(賈樟柯)는 1970년 산시성 펀양에서 태어났다. 산시대학 미술과 1학년 때 첸카이거의 《황토지》를 보고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학교를 중퇴하고 1993년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약 2만 위안의 돈으로 단편영화 《샤오산의 귀향》을 찍었다. 이 작품이 홍콩독립단편영화제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장편영화 데뷔의 기회가 주어졌다.

 

중국 정부는 1996년부터 국영 스튜디오 바깥에서의 영화 제작을 금지했다. 홍콩과 중국의 민간자본 6만 달러를 가지고 게릴라식으로 찍은 독립영화 《소무》는 중국 내에서 상영 금지됐다. 그러나 바로 그 영화로 지아장커는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후버트 발스 기금상과 새로운 물결 부문 최우수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소도시 소매치기 청년의 일상을 통해 급격한 근대화의 이면을 드러낸 이 작품은, 지아장커라는 감독이 평생 붙들게 될 질문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제출한 것이었다.

 

이후 《플랫폼》(2000), 《임소요》(2002)를 거쳐 이른바 ‘산시 3부작’을 완성했다. 고향 펀양을 무대로 한 이 세 편의 영화는 그에게 혁신적인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2004년작 《세계》를 기점으로 정부 승인을 받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폭넓은 관객층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스틸 라이프》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영화는 중국 내에서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후에도 지아장커는 멈추지 않았다. 《24시티》(2008), 《천주정》(2013)에서 중국 사회의 폭력과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산하고인》(2015)에서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뿌리를 잃어가는 인간을 그렸다. 《강호아녀》(2018)로 다시 한번 칸의 시선을 붙들었다. 가장 최근작인 《풍류일대》(2024)는 2001년부터 20년 넘게 단편적으로 촬영해온 장면들을 모아 완성한 작품으로,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 영화 제작 외에도 핑야오 국제 영화제를 설립하고 새로운 인재 육성에 앞장서며 중국 영화계의 문화 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 감독은 평생 단 한 편의 영화만 만든다고도 한다. 지아장커야말로 그렇다. 《소무》에서 시작해 《풍류일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변하는 것을 찍으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름들이, 그 얼굴들이, 그 강물 소리가 이어진다.

 

《스틸 라이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산밍은 16년 전 떠난 아내를 찾아 주소 하나만 들고 산샤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 주소의 땅은 이미 물 아래 잠겼다. 션홍은 2년째 소식 없는 남편을 찾아 같은 강가로 온다. 두 사람 모두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왔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샤댐 건설이 113만 명을 내몰고 수천 년의 시간을 수장시켰다. 지아장커의 카메라는 그 황폐한 풍경 위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영화의 중국어 원제는 ‘三峽好人’, 산샤의 좋은 사람들이다. 영어 제목 Still Life는 정물화를 뜻한다. 동시에 '여전히, 삶은 흐른다'는 이중의 의미를 품는다. 두 제목이 하나의 영화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껴안는다. 인물들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게 프레임 안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고요 아래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흘러간다.

 

지아장커는 현장에서 영화를 만든다. 로케이션 자체가 이미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철근 골조가 드러난 채 매일 조금씩 부서지는 건물들이 있다. 강물 위로 잡동사니가 떠내려간다. 쌓인 돌더미 위에 올라앉아 담배를 피우는 인부들이 있다. 그 풍경 안에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일을 한다. 그 모습이 어떤 비극보다 더 오래 남는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장면이 있다. 산밍과 처음 만난 노동자가 담배 한 개비를 건넨다. 션홍이 낯선 남자에게 사탕 하나를 받아 입에 넣는다. 담배와 술과 차와 사탕. 지아장커는 이 너저분한 기호품들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 계산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좋은 사람들'이라 이름 붙인 이유일 것이다.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가리켜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예술이란 다가올 것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라진 것들 곁에 조용히 앉아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지아장커는 이 영화에서 그것을 보여준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것들이 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수장된 것들이 있다. 그 물 아래 가라앉은 사람들의 시간이 있다.

 

마지막 장면. 카메라가 멀어진다. 외줄 위를 걷는 한 사람이 아주 작게, 아스라하게 보인다. 아무도 그를 잡아주지 않는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보고 나서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 울지 않아도 무언가 젖어드는 영화.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다 있는 그런 영화 한 편. 꿈이지만, 영화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글이라도 쓸까 하며 웃는다. 행복한 주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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