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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를 읽으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6.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를 읽으며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향수』가 아니었다. 변학수의 『문학치료』라는 책에서 『좀머 씨 이야기』가 잠깐 스쳐 지나갔고, 그 짧은 언급이 호기심의 씨앗이 되었다. 사놓고 망설이던 『향수』DVD는 여전히 서랍 속에 있고, 나는 그보다 훨씬 얇고 가벼운 이 중편소설을 먼저 손에 들었다.

 

표지를 펼치자 장 자크 상페의 삽화가 눈에 들어왔다. 선이 가늘고 여백이 넓은 그 그림들 덕분에 책은 처음부터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실제로 이야기는 동화처럼 시작된다. 어린 주인공의 눈으로 마을 주변을 끊임없이 걸어 다니는 한 남자를 관찰하는 것이 이야기의 뼈대다. 좀머 씨. 배낭을 짊어지고 이상한 지팡이를 쥔 채, 마치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걷고 또 걷는 사람이다. 그가 왜 걷는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 사이사이로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너무나 선망하던 카롤리나 퀴켈만에 대한 설레는 감정, 피아노 선생 미스 풍켈의 혹독한 핀잔 앞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던 순간들. 읽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이에게는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쥐스킨트는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마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작가 자신을 떠올렸다. 쥐스킨트는 1985년 『향수』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수백만 부가 팔렸다. 그러나 그는 그 명성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일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쏟아지는 문학상 수상을 모두 거부했다. 인터뷰도 없고, 사진도 없고, 공식적인 자리도 없다. 세상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수록 그는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좀머 씨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지도 모른다. 쥐스킨트 자신이 좀머 씨였다. 배낭을 짊어지고 걷고 또 걷는 그 남자, 설명을 거부하고 이해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걸음으로만 살아가는 그 남자가 바로 작가 자신의 초상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오래 머무는 것은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머 씨의 모습이다. 그는 말이 없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거절한다. 한번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려움에 처한 좀머 씨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지팡이를 땅에 여러 번 내려치며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 한 마디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좀머 씨가 왜 걷는지,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소설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물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걷고 또 걷다가 마침내 닿은, 그만의 귀착점이었을까. 소설은 끝내 말하지 않는다. 그 열린 결말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것이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좀머 씨의 삶이 설명되지 않았듯, 그의 마지막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 침묵과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무게가 있다. 설명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물가를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설명을 요구하며 산다.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괜찮냐고. 그 물음들이 모두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해도, 때로는 그것이 상대의 고독에 대한 침범이 된다. 좀머 씨의 걷기는 어쩌면 현대인이 잃어버린 어떤 자유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냥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자유. 그것이 고독처럼 보여도, 어쩌면 가장 진정한 형태의 삶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를 되돌아보았다. 하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언어다. 미스 풍켈 선생님의 핀잔이 어린 주인공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읽으며, 내가 예전 학생들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떠올랐다. 말은 가볍게 던져지지만 받아내는 쪽에서는 오래 무겁다.

 

또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 방식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때로는 그 도움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좀머 씨처럼 혼자 걷고 싶은 사람이 있다. 절대 고독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삶의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가. 때로 나는 너무 쉽게 손을 내밀고,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요즘 나도 가끔 그 말이 하고 싶어진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안으로 삼키며. 그 말이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겠다는, 작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속으로 외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답답해 똑똑 문을 두드리고 싶지만, 그냥 존중해주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내 따뜻한 손을 내밀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애써 참는 것 또한 내가 감당할 관계의 미학이 아닐까, 하며 나는 오늘도 좀머 씨처럼 걸어야 하나보다.

 

“그런데 좀머 씨, 혹시 함께 걸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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