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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어릿광대 난쟁이의 기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6.

어릿광대 난쟁이의 기도

 

어젯밤에 줄곧 비가 온 듯 싶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아직 하늘도 흐리고 공기가 차다. 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런 날 아침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게 된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식어가는 커피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는 늘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다. 요즘은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이 상의 이름이 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떠올랐다.

 

그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라쇼몽》, 《지옥변》 같은 단편으로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지나치게 예민하고 총명했던 그는 끝내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35세에 생을 마감했다. 책상 위에 그의 글이 있었다.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이었다.

 

저는 이 색깔을 물들인 옷을 입고 공중제비 재주를 바치며 태평을 즐기면 부족함이 없는 어릿광대입니다.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제발 쌀 한 톨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발 곰발바닥 요리마저 싫어질 정도로 부유해지게도 하지 말아주십시오...그 중에서도 제발 용감한 영웅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읽을 때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난다. 이 기도의 형식이 너무 정직해서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게, 너무 영리하지도 너무 어리석지도 않게. 적당히, 라고 신에게 비는 인간의 모습이 우습고 또 애처롭다.

 

그러나 읽다 보면 웃음이 가신다. 마지막 소원에서다.

 

제발 영웅이 되지 않게, 영웅의 뜻을 세우지 않도록 힘 없는 저를 지켜주십시오.

 

앞의 소원들은 세속적 균형에 대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소원만은 결이 다르다. 영웅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영웅이 되고 싶다는 꿈이 이미 안에 있다는 고백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꿈꾸는 것이 두렵다고 그는 썼다. 산봉우리를 오르고 파도를 건너는 꿈을 꿀 때만큼 두려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두려움의 이름을 그는 끝내 쓸쓸함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너무 총명했고 너무 예민했고 너무 일찍 모든 것을 보아버린 사람의 피로였다. 어머니의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그는 평생 달고 살았다. 그가 난쟁이 어릿광대를 자처한 것은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들어야만 이 세계의 무게를 간신히 견딜 수 있었던 사람의 몸짓이었다.

 

나는 이 기도를 읽으며 그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쿠타가와가 영웅의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면, 나는 그 중간을 너무 뜨겁게 원해서 탈이다. 너무 가난하지도 너무 부유하지도 않은 자리, 너무 어리석지도 너무 총명하지도 않은 자리, 그 어딘가에 조용히 서 있고 싶다는 갈망이 나를 오히려 소진시킨다. 적당함을 원하는 마음이 이렇게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꽤 오래 살고 나서야 알았다. 중간을 향한 열망이 때로는 영웅을 꿈꾸는 것보다 더 간절하고, 더 지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쩌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발 이 뜨거움이 나를 다 태우기 전에, 그 자리에 닿게 해달라고.

 

비가 그쳤다. 하늘은 아직 흐리다. 커피는 이미 다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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