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agaste, 현재의 알제리 수크 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알제리 땅이었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로마 시민이자 이교도였고,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두 사람의 종교가 달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아무도 확실하게 가르쳐주지 않는 그 사이에서 자랐다.
그는 총명했다. 카르타고로 유학해 수사학을 공부하며 말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그는 마니교에 빠져들었다. 선과 악이 동등한 두 원리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원론이었다. 세상에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주는 체계였다. 9년을 마니교도로 살았다. 동시에 한 여성과 함께 살았다. 이름은 기록에 남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끝내 쓰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다고,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고 썼던 사람의 이름을 그는 《고백록》 어디에도 남기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이름 없음이 그녀가 그 책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였다. 아들도 낳아 아데오다투스라고 이름 붙였다. “신이 주신 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 신에게 가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압력으로 그 여성을 떠나보냈고 로마로, 다시 밀라노로 갔다. 더 나은 집안의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고백록》에서 그는 그 순간을 그녀가 아들을 두고 아프리카로 돌아갔고, 자신은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으며, 상처가 쓰리고 피를 흘렸다고 썼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 상대가 혼인 적령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른 여성을 들였다. 그러면서도 안식이 없었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채워질 것 같았는데 채워지지 않았다.
모니카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도로 살던 시절, 그녀는 어느 주교에게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청했다. 주교는 모니카의 눈물의 아들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니카는 그 말을 붙들었고 17년을 기도했다. 아들이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떠날 때 그녀는 따라가려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녀를 따돌리고 밤에 배를 탔다. 《고백록》에서 그는 그 밤에 대해 어머니가 해변에서 울며 기도하는 동안 자신은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고 썼다. 그러나 모니카도 결국 밀라노까지 왔다. 아들의 세례를 눈으로 보았고 이듬해 죽었다. 오스티아 항구에서였다.
《고백록》 9권은 그 죽음을 다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가 죽던 날 울지 않으려 했다고, 슬픔을 억눌렀다고 썼다. 그러나 밤에 혼자 있을 때 눈물이 쏟아졌고 그는 그 눈물을 신 앞에 고백했다.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를 들었다. 처음에는 말하는 방식을 분석하려 했다. 그러나 말의 구조보다 말의 내용이 먼저 들어왔다. 플로티노스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읽으면서 물질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마니교가 세상을 선과 악의 전쟁으로 설명했다면, 플로티노스는 세상을 빛이 흘러 내려오는 위계로 설명했다. 악은 적이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 그 차이가 컸다.
386년 여름, 밀라노 정원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라, 읽어라.”
그는 성경을 펼쳤다. 로마서 13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빛의 확신이 마음 안으로 쏟아졌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사라졌다고 그는 나중에 썼다. 이듬해 서른두 살에 세례를 받았다.
《고백록》을 쓴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 히포의 주교가 되어 있을 당시 397년이었다. 인간에게 읽히기 위해 썼지만 신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썼다. 그 첫 문장에 핵심이 있었다.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안식이 없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관이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향해 기울어진 존재다. 그 무언가에 닿을 때까지 쉬지 못한다.
그가 말한 결핍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었다. 방향이 있는 결핍이었고, 무언가를 향해 열려 있는 구멍이었다. 마니교에서 9년을 보낸 것도, 함께 살던 여성을 떠나보내고도 안식을 못 찾은 것도, 수사학으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공허했던 것도 그 구멍 때문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막아지지 않았다. 그 실패들이 그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문제를 오래 생각했다. 어머니가 죽던 날 밤 그가 흘린 눈물, 이름을 남기지 않은 여성을 떠나보내던 날의 찢김, 그것들이 악인지 아닌지를 그는 물었을 것이다. 마니교는 악을 독립적인 원리로 설명했다. 선과 악이 싸우는 세계였다. 그것이 한때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다르게 봤다. 악은 존재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었다. 그 생각이 인간론 전체를 바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30년에 죽었다. 반달족이 히포(Hippo Regius, 현재의 알제리 안나바)를 포위하던 중이었고, 로마 제국이 무너지는 시대였다. 그가 세운 신학은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살아남았다. 결핍에 관한 생각이 살아남았다. 모니카의 17년 기도가 있었고,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을 향한 찢김이 있었고, 밀라노 정원에서 들린 아이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들이 그를 움직였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고, 그가 쓴 책이었다.
나에게 《고백록》의 백미는 악론이었다. 악은 존재가 아니라 선의 결핍, 추위가 열의 부재이고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악은 선이 없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 생각이 오래 남았다.
악을 실체로 보는 세계는 명쾌했다. 선과 악이 싸우는 전장에서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였다. 고통이 있는 이유가 설명됐다. 그러나 명쾌한 것이 반드시 깊은 것은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다르게 본 것은 악의 무게가 아니라 악의 성격이었다.
악은 싸워야 할 적이 아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자리,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자리였다.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원래 거기 있어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결핍은 부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원래의 충만을 가리켰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는 것은 어둠 안에 빛을 향한 방향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방황하는 것, 채워지지 않는 것은 악한 힘에 지배당해서가 아니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없음이 인간을 움직였다.
그에게 결핍은 동력이었다. 그 열림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방향이 잘못됐을 뿐이었다. 결핍을 채워야 할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느낀다는 것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것이고,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무언가가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비어 있음을 신을 향한 구멍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구멍이 있는 한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고백록》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인 듯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구멍이 있었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걸어왔고,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오늘, 나의 결핍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왔음을 고백하고 싶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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