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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John Coltrane 「Alabama」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3. 29.


John Coltrane 「Alabama」

1963년 9월 15일 일요일 오전, 앨라배마 주 버밍햄 16번가 침례 교회에 폭탄이 터졌다. 주일 예배 준비 중이던 네 명의 소녀가 죽었다. 애디 메이 콜린스(Addie Mae Collins), 캐럴 드니스 맥네어(Carol Denise McNair), 캐럴 로버트슨(Carole Robertson), 신시아 다이앤 웨슬리(Cynthia Dianne Wesley). 열네 살, 열한 살, 열네 살, 열네 살이었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이 테러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라는 선언,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노스캐롤라이나 햄릿 출생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1926~1967)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 음악 속에서 자랐고, 필라델피아에서 색소폰을 배웠으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의 협업을 통해 모달 재즈의 가능성을 열었다. 알코올과 헤로인 중독을 극복한 뒤 1957년부터 음악을 예술이 아니라 기도로, 연주가 아니라 증언으로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가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지미 개리슨(Jimmy Garrison), 엘빈 존스(Elvin Jones)와 함께 구성한 클래식 콰르텟은 1960년 결성되어 1965년까지 재즈 역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창조의 시기를 보냈다. 「Alabama」는 그 한가운데서 나왔다.


https://youtu.be/yL-ORJkgaLw?list=RDyL-ORJkgaLw


콜트레인이 이 곡을 만들 때 참고한 것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세 소녀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추도사였다. 네 소녀 중 캐럴 로버트슨의 장례식은 별도로 치러졌고, 킹 목사는 나머지 세 소녀의 합동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했다. 추도사 전문은 방송되지 않았지만 Associated Press를 통해 신문에 발췌 인용되었고, 콜트레인은 그것을 신문에서 읽었다. 설교의 억양, 문장이 오르내리는 리듬, 침묵의 위치. 콜트레인은 그것을 색소폰 선율로 옮겼다. 곡은 느리게 시작한다. 낮은 음역에서 테너 색소폰이 설교자의 목소리처럼 홀로 나타난다. 그 목소리가 조금씩 움직인다. 올라가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문다. 드럼과 피아노와 베이스가 합류할 때도 과시하지 않는다. 함께 침잠한다. 공동체가 애도하는 방식이 그렇다.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서로의 슬픔을 대신할 수 없다.



콜트레인 특유의 ‘시츠 오브 사운드(sheets of sound)’, 음표를 겹겹이 쌓아 물결처럼 흐르게 하는 주법이 이 곡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A Love Supreme」(1965)의 영적 폭발도, 「Ascension」(1965)의 프리 재즈적 격렬함도 없다.

「Alabama」는 절제로 말한다. 분노를 압축하면 이런 소리가 난다. 폭발하지 않은 슬픔은 이런 형태를 갖는다. 1964년 발표된 앨범 《Live at Birdland》에 수록된 이 녹음에서 연주가 끝난 뒤 청중은 한동안 박수를 치지 않는다. 침묵이 먼저 온다. 그 침묵이 곡의 일부다.

여기서 먼저 한 가지를 짚어두고 싶다. 콜트레인은 네 소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의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은 그 선율 속에서 무언가를 마주한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 추상화되지 않는 것,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을. 콜트레인은 소리로 소환했다. 얼굴이 없는 소리가 얼굴을 돌려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Saint John Coltrane African Orthodox Church’가 있다. 그 전신인 야드버드 템플(Yardbird Temple)은 1969년 설립되었고, 콜트레인이 공식 성인으로 추대되어 교회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콜트레인 자신은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1967년 마흔 하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악보가 아니라 소리였고, 그 소리는 예배가 되었다. 예술이 종교로 넘어가는 경계는 아마 듣는 사람이 그 앞에서 멈출 때 있을 것이다.


「Alabama」 이후의 앨범들을 추적하면 콜트레인의 방향이 보인다. 《Crescent》(1964)의 명상적 내성,


https://youtu.be/3z6Fo61Ts_k?list=PLEyxWPyoryRJSqqN7_XMQR4WiKgEQ4M0b



《A Love Supreme》(1965)의 영적 선언,


https://youtu.be/vMCHDC2Lurk?list=RDvMCHDC2Lurk



《Meditations》(1966)의 자유로운 초월은 「Alabama」의 절제된 슬픔이 출발점이었다.


https://youtu.be/8hJeR7I8keo?list=OLAK5uy_krwq5cKtkCVdD3rrDjvwbGHqNU_zeqEqI




그 슬픔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를 남은 생애 동안 탐색했다. 그가 탐색한 것은 음악이 역사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다.

 

듣기 John Coltrane, 「Alabama」,

《Live at Birdland》(Impulse!, 1964)

  John Coltrane, 《A Love Supreme》(Impulse!, 1965)

  John Coltrane, 《Crescent》(Impulse!, 1964)

  John Coltrane, 《Meditations》(Impulse!,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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