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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저널치료》를 읽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3. 26.

《저널치료》를 읽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

 

 

나는 오래전부터 써왔다.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그 모든 글쓰기와는 별개로, 나는 가끔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썼다. 날짜를 적고, 그날의 감정을 적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적었다. 잘 쓴 문장이 아니어도 됐다. 논리가 없어도 됐다. 그냥 쏟아냈다.

 

그것이 저널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확인했다.

 

Kathleen Adams는 자신의 치료사에 대해 이렇게 쓴다. 거의 30년 동안 동일한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새벽 세 시에도, 결혼식 날에도 언제나 곁에 있었다고. 가장 어두운 면에 대해서, 가장 기괴한 상상에 대해서, 가장 소중한 꿈에 대해서 — 어떤 방식으로든 말할 수 있었다고. 그 치료사의 이름은 2000원짜리 스프링 노트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오래된 노트들을 떠올렸다.

 

나는 하루하루를 숱한 감정 속에서 헤맨다. 겉으로는, 혹은 의식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살려 한다. 그것은 기질이 아니라 선택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도 앞을 향하기로, 오늘도 의미 있는 방향으로 걷기로 결심하는 것. 이성이 매일 아침 내리는 작은 결단.

 

그런데 그 선택의 아래에는 늘 다른 것들이 출렁인다. 두려움, 불안, 이름 붙이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긍정을 선택하는 동안에도 조용히, 때로는 요란하게, 내 안에서 움직인다.

 

그 출렁임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가. 아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저널은 그 물음에 대한 오래된 나의 대답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쓰는 것. 정리되지 않은 채로, 추하고 모순된 채로, 그냥 종이 위에 내려놓는 것. 그렇게 쓰고 나면 무언가가 달라졌다. 감정이 해소된다기보다, 감정과 내가 조금 분리되는 느낌.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것이 종이 위의 문장이 되고 나면,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Adams가 말하는 치유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쓰는 것.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숨기지 않은 문장이 치유의 재료가 된다는 것.

 

책은 저널 쓰기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자신 안의 작가를 발견하는 것, 무의식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 삶의 패턴을 인식하는 것, 창조력을 개발하는 것까지. 방법론도 실용적이다. 날짜를 기록하고, 빨리 쓰고, 글씨 걱정을 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완전한 진실을 말하라고 한다.

 

이 지침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하나의 일관된 전제가 있다. 저널은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는 것. 평가받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것. 오직 쓰는 사람 자신을 위한, 쓰는 행위 그 자체를 위한 글이라는 것. 글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도,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에게 더욱, 이 구별은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쓰는 글이 얼마나 되는가. 평가와 무관하게 그냥 쏟아내는 글이 얼마나 되는가.

 

저널은 그 드문 공간이다.

 

오늘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치유되지 못한 상처로 인해 방황하다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상처를 안기는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상담과 치료가 이루어지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것이 꼭 전문적인 접근의 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솔직하게 쓰는 시간. 그 단순한 행위를 우리가 너무 쉽게 건너뛰는 것은 아닐까. 말해야 할 것들이 말해지지 않은 채로 쌓일 때, 그것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나온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타인을 향한 상처로.

 

저널이 그 모든 것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작은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쓰는 것. 그 2000원짜리 노트가 30년의 치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Adams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앞으로도 쓸 것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출렁이는 것들을 종이 위에 내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쓴 문장들이 언젠가 나를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라고, 아직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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