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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You’re Exaggerating! (2025)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2. 20.


#재즈앨범소개

겨울 햇살이 창가를 지나 찻잔 위에 부드러운 빛을 내려놓는 오후다. 그 따뜻한 기운 때문에 마음 깊이 묻혀 있던 수많은 생각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조용히 흔들리며, 잠들어 있던 삶의 감각을 깨우는 순간이다. 나는 한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꿈이란 빛바랜 책장 사이에 남겨진 오래된 유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세상을 향해 온몸을 열고 싶어질 만큼, 다시 살아 있음을 선명히 느끼고 있다.



그렇게 되살아난 감각은 자연스레 음악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울리던 재즈의 여운이 다시금 선명해지며, 나는 그 선율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꿈꾸게 된다. 마침내 들려온 소식—2026년 4월 5일 성수 아트홀에서 폴 코니쉬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오래 기다려온 답처럼 다가왔다. 삶이 다시 찬란히 피어나는 순간을, 나는 그의 음악 속에서 기꺼이 맞이하려 한다.

Paul Cornish: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미래를 지휘하는 음악가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객석은 숨을 죽인다. 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는 한동안 건반 위에 손을 얹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그 침묵 속에서 음악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첫 음이 울린다. 맑지만 무겁고, 단순하지만 깊다. 이 순간이 바로 음악가 폴 코니쉬가 추구하는 세계다. 그는 단순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소리와 침묵의 무게를 조율하는 사상가”로 평가된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성장한 그는 음악적 자극이 넘치는 환경 속에서 감각을 키웠다. 도시 특유의 힙합, 가스펠, 블루스, 남부 리듬 문화는 어린 시절 그의 청각 세계를 자연스럽게 확장시켰다. 그는 단순히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 아니었다. 악보를 읽으면서 동시에 “소리가 없는 부분”을 듣는 방법을 고민했다. 대부분 학생이 음표를 연습할 때 그는 쉼표를 연구했다. 이 시기의 습관은 훗날 그의 음악을 규정하는 핵심 특징이 된다.

그가 다닌 휴스턴 예술 고등학교는 현대 재즈 실험가들을 배출한 명문이었지만, 그는 단순히 연주 실력 향상에 머물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클래식 악보와 현대 미술 서적을 함께 탐독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리를 그린다면 어떤 색일까?” 이 질문은 그의 음악을 연주가 아니라 추상적 표현 언어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음을 연주하기보다 배치했고, 리듬을 치기보다 시간을 조각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세계적 재즈 교육 프로그램 입학 오디션이었다. 심사위원 앞에서 그는 화려한 기교 대신 극도로 절제된 연주를 선택했다. 빠른 패시지 대신 긴 여백을, 강한 코드 대신 미세한 울림을 택했다. 연주가 끝난 뒤 방 안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는 합격을 직감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 철학을 가진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2023년 아메리칸 피아노 어워즈 그리고 허비 헨콕 국제 재즈 피아노 콩코드에서 최종 후보로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Joshua Redman, Louis Cole, Mark Guiliana, HAIM 등의 세션으로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코니쉬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그의 핵심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에게 소리는 물질이고, 침묵은 공간이며, 음악은 두 요소의 균형이다. 그는 종종 하루 10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앉아 단 하나의 음만 반복한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음 하나에도 무게가 있다.” 이 철학은 그의 연주를 듣는 순간 즉시 체감된다. 그는 많은 음을 연주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음을 오래 남긴다. 잔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다음 음을 치지 않는다.

그는 전통 재즈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팝, 힙합, R&B, 실험 음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언어를 확장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음악에 세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리듬 감각은 더욱 직관적으로 변했고, 사운드 질감은 다양해졌으며, 즉흥 연주는 구조적 설계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대중음악 프로젝트 참여는 그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음악이 복잡할수록 전달은 단순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 그의 연주는 난해함보다 직관적 몰입을 지향하게 되었고, 청자는 분석보다 체험을 먼저 하게 된다.

 




그의 음악적 철학과 치열한 탐구는 마침내 첫 리더작으로 응축되었다. 폴 코니쉬의 공식 데뷔 앨범은 블루노트 레이블을 통해 발표된 《You’re Exaggerating!》(2025)이다. 이 음반은 단순한 연주 기록이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소리와 침묵의 균형”을 건축적 설계로 구현한 선언문에 가깝다.


앨범은 총 9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이시스트 Joshua Crumbly, 드러머 Jonathan Pinson, 그리고 특별히 ‘Palindrome’ 트랙에서는 기타리스트 Jeff Parker가 참여했다. 이들은 단순한 리듬 섹션을 넘어, 코니쉬가 배치한 여백의 공간을 함께 지켜내며 소리의 질량을 조율하는 파트너로 기능한다.


You’re Exaggerating! (2025)

DB Song
단순한 모티프로 시작해 드럼의 날카로운 액센트와 베이스의 거친 질감이 점층적으로 쌓이며 거대한 흐름으로 확장된다. 이는 작은 생각이 거대한 감정으로 증폭되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곡이다. 동시에 코니쉬의 작곡 방식인 최소 → 확장 → 붕괴 → 재조립 구조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청자는 곡이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건축적 체험을 하게 된다.


https://youtu.be/U6EAEln-a7Q?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Queinxiety
제목부터 불안의 변형을 암시한다. 리듬은 분주하고 사운드는 팽팽하지만, 선율은 오히려 차분하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면은 격렬하게 움직이는 심리를 음향 구조로 번역한 곡이다. 청자는 안정된 표면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긴장감을 느끼며, 현대인의 불안정한 내면을 음악으로 체험한다.


https://youtu.be/rtBTV6dg3LQ?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Star Is Born
멜로디로 시작하지만 점차 추상적 화성과 리듬으로 이동한다. ‘탄생’이라는 제목과 달리 안정된 결과가 아닌, 형상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그린다.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생성의 과정이 주제임을 드러내며, 음악이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https://youtu.be/0I82nCsgNHc?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Slow Song
거의 무반주에 가까운 발라드 형식으로, 피아노의 잔향과 여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의 핵심 음악 철학인 ‘소리와 침묵의 질량’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트랙이다. 청자는 소리보다 공간이 먼저 들리는 경험을 하며, 기다림 자체가 음악이 되는 순간을 체험한다.


https://youtu.be/GXktlOm51PI?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5AM
반복되는 몽환적 아르페지오를 통해 시간의 의미를 탐구한다.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같은 새벽 다섯 시라도 삶의 국면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지닐 수 있음을 들려주며, 청자는 자신의 기억 속 새벽들을 떠올리게 된다.


https://youtu.be/Vy95zv5y9Pg?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Dinosaur Song
앨범에서 가장 짧고 장난기 있는 곡이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리듬을 비틀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상력, 놀이 감각을 표현한다. 앨범 전체의 무게감을 환기시키는 감정적 통풍구 역할을 하며, 무거운 사색 속에 숨결 같은 가벼움을 불어넣는다.


https://youtu.be/D9bVkxNdwgI?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Palindrome (feat. Jeff Parker)
멜로디와 그 변형이 거울처럼 서로를 반사하는 구조를 지닌다. 재즈 트리오 사운드를 실내악적 앙상블로 확장시키며, 제목 그대로 음악적 아이디어가 앞뒤로 대칭되는 구조적 유희가 핵심이다. 피아노와 기타가 서로의 언어를 빌려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는 순간, 청자는 음악이 대화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https://youtu.be/knIOMBFG_No?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Queen Geri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게리 앨런에게 헌정된 곡이다. 빠르고 날카로운 에너지를 특징으로 하며, 각진 리듬과 튀어 오르는 선율을 통해 존경을 모방이 아닌 움직임 자체로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헌사가 아니라, 선배의 정신을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한 선언이다.


https://youtu.be/kcpWj_tV2PU?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Modus Operandi
마지막 트랙으로, 바로크적 대위법과 현대 재즈의 공격적 리듬을 결합한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질문이라면 이 곡은 그 질문에 대한 답과도 같은 선언이다. “이것이 나의 방식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으며, 코니쉬가 앞으로 나아갈 음악적 궤도를 명확히 제시한다.


https://youtu.be/6lKdETLjaH4?list=OLAK5uy_kLVyv6r4LhHnTtC18jtLUAlmHqoZB8ftw



평론가들은 이 앨범을 인상주의적 분위기와 복잡한 리듬 구조의 결합이라고 평가하는데, 이는 감정은 흐릿하게 표현하면서 구조는 날카롭게 설계하는 역설적 언어가 그의 음악이라는 뜻이며, 그가 보여주는 진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그는 화려함보다 집중을, 속도보다 여백을, 밀도보다 잔향을 선택하고, 그래서 이 앨범은 들을수록 커지는 음악이 된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두 번째에는 깊으며 세 번째에는 위험해지는 음악, 즉 이 작품은 단순한 신인의 데뷔작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세계관이 처음으로 외부에 열리는 순간이다.

이 앨범은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 로버트 글래스퍼 등 블루노트 피아노 계보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전통을 복제하지 않고 해체하며, 다시 미래의 언어로 조립한다. 코니쉬에게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소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음은 벽돌이고, 침묵은 그 벽돌을 지탱하는 공간이다. 그의 음악은 건축처럼 세워지고, 청자는 그 건축물 안을 거닐며 시간을 체험한다.

폴 코니쉬의 데뷔작 You’re Exaggerating!은 신인의 첫 작품이라기보다 이미 완성된 미학 체계의 첫 공개다. 그는 재즈를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재즈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탐구한다. 이 음반을 펼쳐 들으면, 당신이 머무는 공간의 시간이 그의 설계대로 새롭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벽은 호흡하고, 공기는 울림을 품으며, 시간은 새로운 궤도로 흐른다. 그의 음악은 장소를 바꾸지 않지만, 장소의 감각을 바꾼다.

창밖의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오후, 나는 이 앨범을 당신에게 건넨다. 깊은 사색이 필요한 밤에 이 음반을 펼쳐 들으면, 당신이 머무는 공간은 폴 코니쉬의 설계대로 새롭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은 느려지고, 공기는 울림을 품으며, 당신의 하루는 다른 궤도를 그리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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