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o What
Miles Davis
Kind of Blue (1959)
—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
1. 베이스가 먼저 묻는다
“So What”은 베이스가 먼저 입을 연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안개처럼 짧은 서주를 깔고 나면, 폴 챔버스의 묵직한 저음이 여덟 마디에 걸쳐 느릿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에반스의 피아노가 두 개의 코드로 짧고 무심하게 응답한다. 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콜 앤 리스폰스. 그런데 이 대화의 핵심은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태도에 있다. “So What”, 그래서 뭐. 이 두 단어 안에 모던 재즈의 혁명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은 대개 당혹스러워한다. 재즈가 이렇게 느긋해도 되는 건가. 화려한 기교도, 빠른 템포도, 복잡한 화성적 곡예도 없다. 그저 넓고 열린 공간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느긋함이, 그 텅 빈 공간이, 재즈의 역사를 두 동강 내버렸다.

1959년, 재즈는 비밥의 유산 아래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일으킨 비밥 혁명은 재즈를 엔터테인먼트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지만, 그 예술성은 갈수록 현란한 기교의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코드 체인지는 촘촘해졌고, 솔로이스트들은 그 미로 같은 화성 위를 초인적인 속도로 질주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더 빠르게, 더 복잡하게, 더 어렵게.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 질주를 멈췄다. 더 빠르게 달리는 대신 “그래서 뭐?”라고 되물었다. 《Kind of Blue》는 그 되물음의 산물이다. 복잡한 코드 진행 대신 모드라는 넓은 음계의 들판을 펼쳐놓고, 연주자들에게 그 위를 자유롭게 거닐 것을 요구했다. “So What”은 D 도리안과 E♭ 도리안, 단 두 개의 모드만으로 9분 22초를 채운다. 비밥이 백 개의 코드로 말하던 것을 마일스는 두 개의 음계로 말했다. 덜어내는 것이 가장 급진적인 혁명이 된 순간이었다.
1959년 3월 2일, 뉴욕 30번가 스튜디오. 그리스 정교회 교회당을 개조한 이 녹음실은 높은 아치형 천장 덕분에 자연 잔향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이날 아침, 마일스는 연주자들에게 악보를 나누어주지 않았다. 대신 음계의 스케치 몇 줄을 보여주고 나머지는 말로 전했다. “이 스케일 위에서 이렇게 연주해.” 그게 전부였다. 리허설은 없었다. 콜트레인도, 애덜리도, 에반스도 자신이 무엇을 녹음하게 될지 거의 알지 못한 채 마이크 앞에 섰다. 마일스는 즉흥성을 원했고, 첫 테이크에 담기를 원했다. 준비된 완벽함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 것이다.
스튜디오에는 미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마일스의 현재 피아니스트인 윈튼 켈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빌 에반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에반스는 몇 달 전 마일스의 밴드를 떠났지만, 마일스가 이 녹음을 위해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켈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자리를 뜨려 했다. 마일스가 그를 붙잡았다. “네가 연주할 곡이 따로 있어.” 결국 켈리는 이 앨범의 “Freddie Freeloader”한 곡에서만 피아노를 쳤고, 나머지 네 곡은 모두 에반스의 몫이 되었다. “So What”의 서주,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그 피아노 인트로는 사실 편곡자 길 에반스가 쓴 것인데, 빌 에반스가 연주함으로써 두 명의 에반스가 하나의 곡 안에 겹쳐 있는 셈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마일스는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당일에 필요한 만큼만 말했을 뿐이다.
“So What”은 그렇게 태어났다. 누구도 이 곡이 재즈 역사를 바꿀 것이라 예감하지 못한 채. 녹음이 끝난 뒤 사이드맨들이 받은 보수는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콜트레인, 애덜리, 챔버스가 각각 250달러 미만, 에반스와 드러머 지미 콥은 150달러도 되지 않았다.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만든 대가치고는 보잘것없는 금액이었지만, 그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다. 그날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일의 의미를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기묘한 사실이 있다. 녹음 당일 마스터 테이프 머신이 정상 속도보다 약간 느리게 작동하고 있었다. 기술진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앨범 1면 전체가 원래 연주보다 미세하게 높은 피치로 세상에 발매되었다.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의 뮤지션들은 이 앨범에 맞춰 연주하려면 악기를 약간 높게 조율해야 했다. 이 오류는33년이 지난 1992년에야 비로소 교정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이 사실은 잘못된 음높이로 들려왔다는 것. 마일스라면 이 사실에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So What?
2. 등을 돌린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는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연주한 최초의 재즈 뮤지션이었다. 재즈 클럽의 불문율은 청중과 눈을 맞추며 에너지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환한 미소, 디지 길레스피의 부풀어 오른 볼, 듀크 엘링턴의 우아한 인사. 재즈는 청중 앞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의 예술이었다. 마일스는 그 전통의 한복판에 등을 보여주었다. 솔로를 마친 뒤 무대 끝으로 걸어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박수를 구걸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다. 관객이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So What.
이 태도를 단순한 오만으로 읽는 것은 마일스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등을 돌린 것은 관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에 집중한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의 기대라는 코드 진행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킨 것이다. 비밥이 복잡한 화성의 코드 진행을 따라가야 하는 음악이었듯, 재즈 클럽의 무대 역시 보이지 않는 관습의 코드 진행에 묶여 있었다. 미소를 짓고, 곡명을 소개하고, 박수에 고개를 숙이는 연주자의 에티켓. 마일스는 그 모든 코드 진행에 “So What?”이라고 던지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등 뒤에서 흘러나온 트럼펫은 어떤 미소보다도 청중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마일스의 트럼펫 톤 자체가 이미 “So What”이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고음역 폭발이나 클리포드 브라운의 매끈한 윤기와는 달리, 마일스의 트럼펫은 일부러 비브라토를 걷어낸 마른 소리였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음 하나하나를 공중에 던져놓듯 연주했다. 그 소리는 듣는 이를 향해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공간 속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좋아하든 말든, 알아듣든 말든. 무심함이 가장 강력한 매혹이 되는 역설. 이것이 쿨의 본질이다.
3. 소크라테스, 그래서 뭐라고 묻는 사람
약 2400년 전, 아테네의 한 광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라는 맨발의 사내가 시민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상대가 자신만만하게 답을 내놓으면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래서?” 상대가 보충 설명을 하면 또 되물었다. “그래서?” 이 끝없는 되물음의 끝에서 상대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준 적이 없다. 그는 오직 질문만 했다.
이것은 “So What”의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곡에서 베이스가 던지는 질문에 피아노는 매번 같은 두 개의 코드로만 응답한다. 왜 더 정교한 답을 내놓지 않는가. 왜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유에서다. 답이 복잡해질수록 진짜 질문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응답 앞에서 기존의 복잡한 화성 문법은 스스로의 근거를 잃고 흔들렸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의 확신을 무너뜨린 것과 같은 방식이다. “너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규칙,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 거야?” 이 물음 앞에서 정교하게 쌓아올린 체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을 철학에서는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산파가 아이를 직접 낳지 않고 산모의 출산을 도울 뿐이듯,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질문으로 이끌 뿐이다. “So What”의 구조가 정확히 이것이다. 마일스는 곡 안에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두 개의 모드라는 질문의 틀만 놓아두고, 각 연주자가 그 안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게 한다. 녹음 세션에서도 마일스의 지시 방식은 철저히 소크라테스적이었다. 그는 악보를 쓰는 대신 입으로 차트를 ‘말했다’. 음계의 윤곽만 알려주고, 때로는 어떤 음을 어떻게 연주하라고 한마디씩 던졌을 뿐이다. 같은 앨범의 “Blue in Green”을 녹음할 때 드러머 지미 콥이 기억하는 마일스의 지시는 이것이 전부였다. “떠다니는 소리를 원한다.” 어떻게 떠다니라는 것인지, 무엇 위를 떠다니라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산파가 아이를 대신 낳아주지 않듯, 마일스는 음악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았다.
같은 곡 안에서 마일스의 솔로는 말을 아끼고, 콜트레인은 음의 폭풍을 쏟아내며, 애덜리는 블루지한 활기로 구르는데, 이 전혀 다른 세 가지 답이 모두 하나의 질문 안에서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질문 자체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콜트레인은 이 경험에 깊은 영향을 받아 나중에 “Impressions”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So What”과 정확히 같은 구조, 같은 모드를 사용한 곡이었다. 처음에 콜트레인은 이 곡을 그냥“So What”이라고 불렀다. 스승이 던진 질문이 제자 안에서 새로운 답으로 자라난 것이다. 이보다 더 소크라테스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 방법이 당대 아테네에서 불러일으킨 반응이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미워했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은 유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끈질긴 질문은 상대의 자존심을 무너뜨렸고, 그 무너짐은 분노로 돌아왔다. 결국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에게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을 씌워 재판에 세웠다. 그러나 진짜 죄목은 따로 있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든 죄. 편안하게 잠들어 있던 확신을 흔들어 깨운 죄. 마일스가 비밥의 문법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재즈 비평가들에게 공격받은 것과 놀랍도록 닮은 구도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과 마일스의 모달 혁명은 같은 곳을 겨냥한다.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의심하는 것. 더 복잡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쌓인 것을 걷어내는 것.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겸손의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앎의 체계 전체를 뒤흔드는 가장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마일스가 두 개의 모드로 9분을 채웠을 때, 그것은 가난한 어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풍요의 환상을 깨뜨리는 가장 우아한 전복이었다.
4. 뫼르소의 태양, 무관심이라는 정직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 “So What”의 태도를 문학의 영토 위에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소설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는 문학사에서 가장 무심한 개막이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뫼르소가 보여주는 태도는 슬픔도 분노도 아닌 순수한 무관심이다. 장례식에서 그는 울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졸음을 참고, 장례 행렬의 더위에 시달릴 뿐이다.
세상은 이것을 비정함으로 읽는다. 법정은 이것을 죄의 증거로 삼는다.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수영을 하고 희극 영화를 본 남자. 아랍인을 쏜 이유를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진술하는 남자. 이 남자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카뮈가 묻는 것은 이것이다. 뫼르소의 죄는 아랍인을 죽인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의 코드 진행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 슬퍼야 할 자리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죄목이 아니었을까?
뫼르소의 무관심은 냉혈함이 아니라 정직함이다. 그는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는 척하지 않을 뿐이다. 사회가 처방하는 감정의 매뉴얼, 장례식에서는 울어야 하고, 법정에서는 뉘우쳐야 하고, 사형 선고 앞에서는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그 대신 뫼르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회적 의미 체계 바깥에 있는 것들이다. 바다의 짠맛, 마리의 피부에 닿는 햇살, 감방으로 스며드는 여름 저녁의 냄새. 그의 감각은 죽어 있지 않다. 오히려 과잉으로 살아 있다. 다만 그 감각이 사회가 지정한 채널로 흐르지 않을 뿐이다.
이 거부는 마일스가 관객에게 등을 돌린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마일스가 관객의 기대라는 코드 진행을 거부했듯, 뫼르소는 사회의 감정적 코드 진행을 거부한다. 마일스가 비밥의 코드 체인지 대신 모드의 넓은 들판을 택했듯, 뫼르소는 사회적 의미의 그물 대신 감각의 직접성을 택한다. 둘 다 “So What?”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둘 다 그 무심함의 대가를 치른다. 마일스는 오만하다는 평판을, 뫼르소는 사형을.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밤, 사형 집행을 앞둔 뫼르소에게 놀라운 평온이 찾아온다. 그는 감방의 창문 너머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연다. 이 순간 뫼르소의 “So What?”은 허무가 아닌 수용이 된다. 세계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무의미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카뮈는 이것을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 불렀다. 마일스가“So What”의 마지막 코러스에서 트럼펫을 불 때의 그 고요한 확신과 닮은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자유. 더 이상 증명할 것도, 도착할 곳도, 기대에 부응할 의무도 없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역설적 충만함.
5. 고다르, 필름을 향한 So What
1960년, 마일스가 “So What”을 세상에 내놓은 이듬해, 장뤼크 고다르가 영화 한 편을 들고 나타났다.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파리의 공기 속에 떠돌던 같은 시대정신이 재즈와 영화에 각각 스며든 결과다. 마일스의 《Kind of Blue》가 녹음된 1959년과 고다르의 데뷔작이 개봉한 1960년 사이의 간격은 고작 1년. 대서양 양편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종류의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고다르가 영화에서 한 일은 마일스가 재즈에서 한 일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할리우드의 고전적 편집 문법인 장면과 장면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 시선의 일치, 180도 법칙에 “So What?”이라고 던진 것이다. 고다르는 점프 컷을 썼다. 한 장면 안에서 시간이 뚝뚝 끊기고, 인물이 갑자기 다른 위치에 나타나고, 대화가 논리적 흐름 없이 도약한다. 관객은 불안해한다. 이것은 편집 실수가 아닌가? 고다르의 대답은 So What. 실제로 고다르는 원래 편집본이 너무 길다는 지적을 받자, 장면 사이의 연결 부분을 잘라내는 대신 장면 안쪽을 잘라냈다. 규칙 위반이 의도가 아니라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더 흥미롭다. 마일스가 모달 재즈를 미학적 선언이 아니라 음악적 필요에서 시작한 것과 닮아 있다.
영화의 주인공 미셸 푸아카르는 마일스의 분신처럼 보인다. 경찰을 쏘고도 파리 거리를 느긋하게 거니는 쿨함. 험프리 보가트를 흉내 내면서도 보가트가 되지 않는 가벼움. 미셸은 어디로도 서두르지 않는다. 도망쳐야 할 상황에서도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담배를 문다. 그의 태도는 뫼르소의 무관심과 마일스의 쿨함이 한 인물 안에서 합류한 것처럼 보인다. 누벨바그와 모달 재즈는 같은 시대에 태어난 쌍둥이다. 비밥이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였다면, 모달 재즈는 누벨바그다. 복잡한 규칙을 간결한 태도로 전복하는 방식이 정확히 같다. 마일스가 코드를 두 개로 줄인 것과 고다르가 편집의 법칙을 부순 것은 동일한 미학적 선언이다. 덜 하는 것으로 더 자유로워지는 역설이다.
6. 무심함이라는 자유의 네 가지 얼굴
여기서 잠시 멈추어 네 사람의 “So What”을 나란히 놓아보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확신에 “So What?”을 던졌다. 네가 안다고 믿는 것, 정말로 아는 거야? 뫼르소는 사회의 감정 규범에 “So What?”을 던졌다. 내가 왜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는 척해야 하지? 고다르는 영화의 형식 문법에 “So What?”을 던졌다. 장면과 장면이 꼭 매끄럽게 이어져야 하나? 마일스는 음악의 화성 문법에 “So What?”을 던졌다. 코드가 꼭 이렇게 복잡해야 해?
네 사람의 공통점은 “당연한 것”의 거부다. 소크라테스는 앎의 당연함을, 뫼르소는 감정의 당연함을, 고다르는 형식의 당연함을, 마일스는 화성의 당연함을 거부한다. 그런데 이 거부가 파괴적이지 않고 해방적인 이유는 그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주지 않았고, 뫼르소는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고, 고다르는 새로운 편집 규칙을 세우지 않았고, 마일스는 모달 재즈를 이론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기존의 것을 부순 자리를 텅 비워두었다. 그 빈자리가 바로 자유다. 채우지 않는 것. 설명하지 않는 것. 규정하지 않는 것. “So What”은 파괴의 선언이 아니라 비움의 선언이다.
“So What”이 9분 22초 동안 두 개의 모드만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곡은 채우지 않는다. 코드의 촘촘한 격자 대신 넓은 음계의 평원을 펼쳐놓고, 연주자에게 그 위를 자유롭게 거닐 것을 허락한다. 마일스의 솔로는 음을 아끼는데, 그 아낌 속에서 한 음 한 음이 공기 중에 오래 머문다. 콜트레인의 솔로는 폭풍처럼 쏟아지는데, 그 폭풍이 가능한 것은 모드라는 넓은 활주로가 있기 때문이다. 애덜리의 솔로는 블루지하게 구르는데, 그 구름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무 방향이든 허락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세 개의 언어가 하나의 곡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모드라는 열린 공간이 그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So What”은 자유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뒤로 물러나는 곡이다.
7. 같은 곡, 다른 속도— “So What”의 열 해
1959년 스튜디오 녹음의 “So What”은 미디엄 템포, 9분 22초. 베이스가 묻고 피아노가 답하는 그 느긋한 대화에는 여유가 있다.
https://youtu.be/ylXk1LBvIqU?list=OLAK5uy_kLtBpVbGac_7xgJC4x9cRpeiLfjt9T1Pk

녹음 4주 뒤인 4월2일, CBS 텔레비전 방송 《The Sound of Miles Davis》에서 같은 곡을 다시 연주했을 때, 애덜리는 편두통으로 빠졌고 윈튼 켈리가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버전의 감정적 밀도는 스튜디오 판에 거의 필적한다. 아직 곡이 새로웠고, 마일스도 이 곡과의 관계가 시작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zqNTltOGh5c?list=RDzqNTltOGh5c

1960년, 콜트레인과의 마지막 유럽 투어에서 “So What”은 이미 빨라지고 있었다. 코펜하겐 버전 14분 36초, 파리 버전 13분 32초. 템포는 올라갔지만 길이도 늘었다. 솔로가 확장되고, 연주자들 사이의 대화가 더 뜨거워진다. 콜트레인은 이 투어를 마지막으로 마일스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헤어짐을 앞둔 연주자들의 에너지가 곡 안에 팽팽하게 감겨 있다.
https://youtu.be/9UnMj_6hfTU?list=PLC8svPlFx4c1LgCDHN7PNO5tiwdilunts
1961년 카네기홀. 이 버전에서 “So What”은 전혀 다른 옷을 입는다. 길 에반스의 21인조 오케스트라가 빌 에반스의 피아노 인트로를 가져다가 현악과 관악으로 확장시킨다. 피아노와 베이스의 은밀한 대화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그 인트로가 끝나고 퀸텟이 이어받는데, 이때 테너 색소폰은 콜트레인이 아닌 행크 모블리다. 12분 1초. “So What”은 이제 무심한 질문이 아니라 분노한 요구처럼 울린다. 길 에반스와 마일스가 함께 무대에 선 것은 평생 단 두 번뿐이었고, 이 카네기홀 녹음은 그 희귀한 순간의 기록이다.
https://youtu.be/cWGvsyeayFk?list=OLAK5uy_lmMjIFRvzM5pVI3T1GWAuQbqrVS1qdG8Q
1964년 《Four & More》에 이르면, “So What”은 거의 다른 곡이 된다. 허비 행콕,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로 구성된 2기 퀸텟은 이 곡을 맹렬한 속도로 몰아붙인다. 일부 비평가는 마일스가 이 곡에 질려서 빠르게 치고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마일스는 같은 질문을 다른 속도로 던져봄으로써 질문 자체의 탄성을 시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를 느긋하게 물을 때와 날카롭게 쏘아붙일 때, 그 의미가 같은가.
https://youtu.be/mwHwlgBFVmM?list=PLfJndz0utgON63rF-ldXAEac2uSAfDFDM
그리고 1969년, 첫 녹음으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해에 마일스는 “So What”을 세트리스트에서 빼버렸다.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마일스답다. 과거를 반복하는 것은 그의 미학에 없는 단어였다. “So What?”이라는 질문을 10년간 던졌으면 충분하다. 이제 다른 질문을 할 시간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마일스적인 “So What”이었다. 자기 자신의 대표곡에조차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등을 돌린 것이다.
8. 경암동,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길
군산 경암동.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이 있다. 레일은 녹슬었고, 침목 사이로 잡풀이 자라나고,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지던 공간은 이제 산책자들의 느린 발걸음으로 채워진다. 이 폐선 철로는 한때 군산 내항과 페이퍼코리아를 잇는 산업용 화물 노선이었다. 쌀과 종이와 원자재를 실은 화물 열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마을의 한복판을 관통했다. 출발과 도착, 시간표와 신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기차는 반드시 어딘가에 도착해야 했고, 철로는 그 도착을 보증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철길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출발도 도착도 없다. 시간표도 신호도 없다. 그저 두 줄의 녹슨 레일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뻗어 있을 뿐이다. 집과 집 사이로, 가게 앞으로, 빨래가 널린 마당 곁으로 철로가 지나간다. 기차가 다니던 시절, 주민들은 이 철길이 삶을 양쪽으로 갈라놓는 장벽이었다고 기억한다. 건널목에서 기다려야 했고, 소음을 견뎌야 했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철길은 기능적이었지만 억압적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역설이 벌어진다. 기능을 잃은 이 철길이 기차가 다니던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산책로가 되고, 사진의 배경이 되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된다. 목적지가 사라진 자리에 자유가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경암동 철길마을은 온갖 가게들이 레일 양옆으로 늘어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 레트로 카페, 기념품 가게, 교복 대여점, 인생 사진 포토존. 목적지를 잃었던 철길에 ‘관광’이라는 새로운 목적지가 씌워진 셈이다. 폐선의 자유가 다시 상업의 시간표에 묶인 것일까.
그럼에도 하나는 변하지 않았다. 레일 자체는 여전히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가게들이 아무리 들어서도, 관광객이 아무리 몰려와도, 녹슨 두 줄의 철로는 여전히 출발도 도착도 없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So What”의 풍경이다. 마일스가 코드 진행이라는 목적지를 제거하고 모드라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냈듯, 경암동의 폐선 철로는 도착지를 잃은 채 뻗어 있다. 그 위에 무엇이 올라타든 화물 열차든, 산책자의 발걸음이든, 관광 상품이든 레일 자체는 개의치 않는다. So What. 비밥의 코드 진행이 기차의 시간표였다면, 모달 재즈는 폐선 이후의 철길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로도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소가 초원사진관이었다면, 두 번째 장소는 이 폐선 철로다. 초원사진관이 시간을 정지시키는 장소였다면, 경암동 철길은 방향을 해방시키는 장소다. 사진관이 에반스의 멈춘 시간을 닮았다면, 이 철길은 마일스의 열린 태도를 닮았다. 초원사진관이 월명동 원도심 한가운데 있다면, 경암동 철길마을은 거기서 차로 5분쯤 떨어진 곳에 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장소 모두 원래의 기능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군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다. 낡은 것들이 낡음 그 자체로 아름다워지는 곳. 목적을 잃은 것들이 목적 없음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곳.
가게들의 불빛과 호객 소리를 지나, 철길의 끝자락까지 걸어가 보라. 관광객이 드문 그 끝에서 레일은 도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거기서 “So What”을 틀어보라. 이어폰 속에서 베이스가 묻는다. “그래서 뭐?” 피아노가 답한다. “그래서 뭐.” 녹슨 레일 위에 나의 발걸음이 세 번째 리듬을 얹는다.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도착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 산책의 목적이다.
9. 그래서 뭐, 라는 자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마일스는 오만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고다르의 미셸은 연인의 밀고로 경찰에게 사살당했다. “So What?”이라고 말한 사람들의 결말은 대체로 좋지 않다. 세상은 무심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자, 기대에 부응하기를 거부하는 자, 도착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하는 자에게 세상은 언제나 대가를 청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것은 대가보다 크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서양 철학 2400년의 근간이 되었고, 뫼르소의 무관심은 부조리 문학의 초석이 되었고, 고다르의 점프 컷은 영화 언어의 지평을 영원히 바꾸었고, 마일스의 두 개의 모드는 재즈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시켰다. 무심한 태도로 세상의 규칙에 되물은 자들이 결국 그 규칙 자체를 다시 쓴 것이다. 무심함은 패배가 아니었다. 가장 느린 혁명이었다.
경암동의 폐선 철로는 여전히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끄고 관광객의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 낮게 드리운 노을이 녹슨 레일 위에 긴 그림자를 눕힌다. 간판의 불빛 너머로 철길의 끝이 어둠 속에 잠긴다.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시간표가 없다. 서두르지 않고, 도착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유롭다. 마일스의 트럼펫이 이어폰 속에서 마지막 음을 뱉어내고 침묵 속으로 물러난다. 그 침묵은 어떤 설명보다도 완벽하다.
그래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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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동 철길의 끝에서 레일은 도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그 끝이 끝인지 시작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 듣기— Miles Davis, “So What”
1959 · Kind of Blue (Columbia). 9분22초. 스튜디오 오리지널.
1960 · The Final Tour: The Bootleg Series, Vol. 6 (Columbia/Legacy). 콜트레인과의 마지막 투어.
1961 · Miles Davis at Carnegie Hall (Columbia). 길 에반스 오케스트라 버전.
1964 · Four & More (Columbia). 2기 퀘텟의 맹렬한 속도.
⌖ 걷기— 경암동 철길마을| 전북 군산시 경암동| 해 질 무렵을 권한다.
▷ 읽기— 카뮈, «이방인»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 보기—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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