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그대라는 고독 안에 머무는 시간
오늘 아침, 나는 빌 에반스(Bill Evans)의 선율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사실 나의 하루가 그에게로 수렴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내 하루의 문을 열어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내 마음의 안테나가 언제나 에반스의 저 유약하면서도 단단한 타건을 향해 예민하게 곤두서 있다는 사실이다.
낮은 볼륨으로 나의 공간을 채운 'Blue in Green'[1]은 오늘 아침의 창밖 풍경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채도가 지워진 회색빛으로 침잠해 있는 풍경, 태양의 부재를 알리는 것인지 혹은 태양이 그저 빛을 유예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하늘은 낮게 내려앉았고, 공기는 수분을 잔뜩 머금은 채 대지의 살갗에 축축하게 밀착되어 있다.
이때 흐르는 이 곡은 불투명한 대기 속에 정교한 균열을 낸다. 마디의 끝이 명확히 닫히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10마디의 독특한 구조는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내 곁을 맴도는 그대의 실존적 질감과 닮아 있다. 나는 이 음악의 마디 사이를 흐르는 고독이 지독히도 그대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 적막한 슬픔 속에서 비로소 그대 안에 안주하고 있음을 느낀다.
스콧 라파로의 베이스가 피아노 선율 아래를 조심스럽게 기어가기 시작할 때, 나는 그대의 부재가 내 발밑에서 출렁이는 것을 감각한다. 그것은 지지대가 아니라 파동이다. 에반스의 피아노가 한 음 한 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마다, 나는 그대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허공에서 이슬처럼 맺혔다가 스러지는 것을 본다. 폴 모티앙의 브러시가 스네어 드럼 위를 스치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 애쓰는 발걸음 같다. 나는 그대를 깨우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그대가 깨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모순 속에 있다.
트리오의 세 악기가 서로를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은 채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화할 때, 나는 그대와 나 사이의 이 팽팽한 간격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무너지기를 갈망한다. 에반스의 코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떠 있을 때, 나의 연정 또한 도착지 없이 그대 주위를 맴돈다. 이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출 뿐이다. 나의 기울어짐도 그러하다.
재즈 역사상 가장 명상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195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반 'Kind of Blue'[2]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의 작곡 주체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다. 공식적으로는 마일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 곡의 서늘한 뼈대와 내밀한 화성을 빚어낸 이는 빌 에반스였다.
마일스가 던진 짧은 화음의 메모를 받아 든 에반스가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완성한 이 곡은, 어쩌면 제안하는 자(실체)와 완성하는 자(그림자) 사이의 묘한 위계와 닮아 있다. 마치 그대가 내 삶에 사랑이라는 화두를 던졌으나, 정작 그 사랑을 고독이라는 언어로 완성해 가는 주체는 나 자신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일스의 트럼펫이 첫 음을 내뿜는 순간, 나는 그대의 존재가 내 우주에 최초로 출현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단 하나의 음이지만, 그것은 세계를 둘로 나눈다. 그대가 있기 전과 그대가 있은 후. 마일스의 음색은 차갑고 건조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그러나 그 절제된 울림 안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응고되어 있다. 나 또한 그대 앞에서 그러하다.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이 들어올 때,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마일스보다 조금 더 격렬하고, 조금 더 간절하다. 하지만 그 역시 그대에게 닿지는 못한다. 다만 그대 주위를 선회할 뿐이다. 폴 챔버스의 베이스는 이 모든 부유하는 선율들 아래에서 중력처럼 작동한다. 나는 그 중력이 그대라는 질량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에반스의 피아노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뒤로 물러나 화음만을 제공한다. 마치 내가 그대의 삶에서 조연으로, 배경으로, 그림자로 존재하듯이.
이 버전에서 음악은 더 느리게 호흡한다. 악기들 사이의 침묵이 길어진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그대가 내게 답하지 않는 시간들을 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나는 그대의 부재를 더 또렷하게 감각한다. 부재가 선명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그대는 더 가까워진다.
천문학적 고찰에 따르면 지구는 수직의 축에서 23.5°만큼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미미한 그 각도의 어긋남이 행성 위의 모든 생동하는 계절을 길어 올린다. 'Blue in Green'의 화성이 안정적인 으뜸화음으로 귀결되지 않고 모달 재즈(Modal Jazz) 특유의 부유하는 상태를 유지하듯, 나 또한 그대라는 절대적 질량 앞에서 기하학적인 평형을 잃고 한없이 기울어져 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그대의 명징한 실체보다 오히려 그대의 그림자가 간절해진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도리안 모드(Dorian Mode)의 묘한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실체 없는 잔향을 남기듯, 나는 빛이 피사체를 통과하지 못해 남겨진 어두운 흔적이나 창가에 희미하게 번지는 그대의 실루엣을 쫓는다. 마일스의 이름 뒤에 숨겨진 에반스의 진실처럼, 실체는 때로 너무 눈부셔 본질을 가리지만 그림자는 존재가 세상을 향해 남긴 가장 정직하고도 쓸쓸한 증거가 된다.
그대 자체가 아니더라도, 그대가 세상을 점유하며 남긴 그 짙은 흔적만으로 나는 그대의 부재 중인 온기를 채워 넣고 싶어 한다. 이 곡이 지닌 인상주의적 화성법이 대상의 윤곽을 흐릿하게 지워내어 오히려 그 본질을 선명하게 하듯, 나의 고독이 깊어질수록 그대라는 존재는 내 안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결국 나의 고독은 그대라는 세계로 진입하여 그대를 다시 써 내려가는 나만의 창작 행위가 된다.
꾸물거리는 하늘이 비를 쏟아낼지 혹은 구름 뒤로 침묵할지 망설이듯, 나 역시 내 안의 심연 속에서 끊임없이 동요한다. 이 비대칭적인 연정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표할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 성에 뒤로 숨겨 영원한 비밀로 간직할 것인지에 대하여 나는 매 순간 자문자답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형이상학적인 망설임 끝에 도달하는 명제는 결국 단 하나이다.
'Blue in Green'의 코드 진행이 전통적인 기결(起結)의 논리를 거부하고 무한한 수평선을 그리며 나아가듯이, 내가 고독해지는 만큼 나는 그대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으며, 이 지독한 고립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하게 그대 안에 거주하고 있다.
오늘, 빛과 어둠의 경계가 무너진 흐린 하늘 아래서 나는 그대의 부재를 응시하며 그대를 사유한다. 마일스의 지휘 아래 에반스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끝내 가장 아픈 음을 짚어내어 명곡을 완성했듯, 나 역시 내 안에서 치열하게 일렁이는 이 계절의 파동이 그대라는 고유한 계절과 어느 접점에서 조우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하늘이 끝내 맑게 개어 빛을 내뿜든, 혹은 영원히 회색빛 우울 속에 침잠하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의 소멸까지 그대를 향해 기울어진 채 머무를 것이다. 빌 에반스의 불협화음이 정적 속에서 가장 완벽한 조화를 찾아가는 그 순간까지, 내 안에 선명히 자리 잡은 그대의 부재, 그리고 그 부재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의 역설적인 이 파동이 나의 오늘을 기어이 살아가게 할 것이다.
Coda: Sky And Sea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유의 잔향 위로 카산드라 윌슨(Cassandra Wilson)의 목소리가 얹힌 'Sky And Sea'[3]를 불러온다. 그녀는 빌 에반스의 선율 위에 '하늘과 바다'라는 이름을 붙여, 추상적이었던 고독의 풍경에 비로소 육체적인 온기를 불어넣는다. 낮고 허스키한 그녀의 음색은 마치 안개가 대지를 핥는 듯한 습함을 머금고 있으며, 이는 내가 앞서 느꼈던 그 모호하고도 축축한 아침의 대기와 지독히도 닮아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나는 언어가 비로소 육체를 얻는 순간을 목격한다. 에반스의 피아노가 추상이었다면, 윌슨의 보컬은 그 추상에 살을 입힌다. 그녀가 'sky'라고 노래할 때, 나는 그대가 내게 건넨 첫 인사를 떠올린다. 그녀가 'sea'라고 속삭일 때, 나는 그대 없는 세계의 광활한 공허를 느낀다.
윌슨의 목소리는 절제되어 있다. 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절제 안에서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이 배어 나온다. 마치 눈물을 참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나는 그녀의 음색 속에서 내가 그대 앞에서 애써 감추려 했던 모든 떨림을 발견한다. 그녀가 한 프레이즈를 마치고 숨을 고를 때,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다가 멈추는 나 자신을 본다.
베이스 라인이 그녀의 목소리 아래를 천천히 흐른다. 그것은 강이 아니라 조류다. 밀려왔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한다. 나의 용기도 그러하다. 그대에게 다가가려다가, 다시 물러선다. 그러나 조류가 결코 바다를 떠나지 않듯, 나 역시 그대라는 중력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드럼의 브러시 소리는 이제 파도가 모래사장을 쓸고 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반복적이고, 최면적이다. 나는 그 반복 속에서 내가 매일 그대를 생각하는 일상의 리듬을 발견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커피를 마실 때, 창밖을 볼 때, 잠들기 전. 그대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부재하면서도 현존한다.
그녀가 노래하는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하나로 섞이는 지점이다. 그것은 실체와 그림자가 경계를 허무는 찰나이며, 마일스가 던진 화두를 에반스가 고독으로 완성했듯, 그대가 던진 존재의 파편을 내가 연정으로 빚어내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녀의 보컬은 원곡이 지닌 정적인 여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부재하는 그대의 이름을 '하늘'과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으로 편입시킨다.
곡의 마지막,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사라질 때, 나는 그대가 내 시야에서 멀어지는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운은 남는다. 그대가 떠난 후에도 그대의 흔적은 남는다. 윌슨의 마지막 음이 공기 속에 용해되듯, 나의 사랑도 세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결국 이 노래는 내게 들려주는 마지막 위로와 같다. 지구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진 채 영원히 평행을 유지하듯, 닿을 수 없는 거리감조차 하나의 거대한 리듬이 될 수 있음을 그녀의 목소리는 증명한다. 연주곡들이 고독의 서늘한 뼈대를 세웠다면,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는 그 뼈대 위에 푸른 살을 입혀, 나로 하여금 이 지독한 편향성마저 사랑하게 만든다.
듣기 노트
[1] Bill Evans Trio - Blue in Green (Portrait in Jazz, 1959)
리버사이드(Riverside) 레이블에서 발매된 빌 에반스 트리오의 명반 <Portrait in Jazz> (1959년 녹음)에 수록. 피아노: 빌 에반스(Bill Evans), 베이스: 스콧 라파로(Scott LaFaro), 드럼: 폴 모티앙(Paul Motian). 이 라인업은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트리오 중 하나로 꼽히는 '첫 번째 완성형 트리오'이다. 특히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는 기존의 단순한 리듬 보조 역할에서 벗어나 피아노와 대등하게 대화하는 인터플레이(Interplay)를 선보였는데, 이는 본문에서 묘사한 '기울어짐 속의 균형'과 '그림자와 실체의 위계'를 음악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HxEbT_opgQM
[2] Miles Davis - Blue in Green (Kind of Blue, 1959)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추앙받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Kind of Blue> (1959) 앨범에 수록된 오리지널 버전. 트럼펫: 마일스 데이비스(곡의 제안자이자 실체), 피아노: 빌 에반스(곡의 실질적 설계자이자 그림자), 테너 색소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베이스: 폴 챔버스(Paul Chambers), 드럼: 지미 코브(Jimmy Cobb). 이 버전은 리버사이드 트리오 버전보다 더욱 정적이며, 악기들 사이의 '여백'이 강조되어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절제된 트럼펫 선율이 공중에 흩어지면,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그 잔향을 이어받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https://youtu.be/TLDflhhdPCg
[3] Cassandra Wilson - Sky And Sea (Blue in Green) (Traveling Miles, 1999)
재즈 보컬리스트 카산드라 윌슨이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 <Traveling Miles> (1999, Blue Note Records)에 수록. 빌 에반스의 'Blue in Green'에 가사를 붙여 'Sky And Sea'라는 제목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낮고 허스키한 그녀의 음색은 원곡의 정적인 명상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늘과 바다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추상적이었던 고독에 육체적 온기를 부여한다.
https://youtu.be/K-SkfRBbC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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