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5화. 다원론의 반격
강의실 문이 열리자, 학생들은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교탁 위에 네 개의 투명한 용기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두 번째에는 물이 담겨 있었으며, 세 번째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네 번째에는 흙이 담겨 있었다. 그 옆에는 하트 모양 스티커와 X자 스티커가 놓여 있었다.
짜교수는 이번엔 네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레인보우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빨강(불), 파랑(물), 하양(공기), 갈색(흙). 손에는 자석 두 개를 들고 있었는데, 하나는 N극과 S극이 서로 끌어당기고, 다른 하나는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교수님, 오늘은 과학 실험?”
“아니면 연금술?”
짜교수는 네 개의 용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다원론의 시작이다. 엠페도클레스 형님. 시칠리아 출신 의사이자 시인이자 철학자. 이 형님은 파르메니데스에게 정중하게 반박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존재는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존재가 하나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여럿이면 안 됩니까?’”
칠판에는 이미 적혀 있었다.
존재 = 4 (불, 물, 공기, 흙)
변화 = 결합 + 분리
동력 = 사랑(Love) + 미움(Strife)
RM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를 반박한 건가요, 아니면 따른 건가요?”
짜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다. 이게 엠페도클레스의 천재성이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절반은 받아들이고, 절반은 뒤집었다. 받아들인 것: ‘존재는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뒤집은 것: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 = 1’이라고 했다면, 엠페도클레스는 ‘존재 = 4’라고 선언한 거다.”
슈가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그럼, 이 네 가지 — 불, 물, 공기, 흙 — 는 절대 안 변한다는 거예요? 불은 영원히 불이고, 물은 영원히 물이고?”
짜교수는 촛불을 가리켰다.
“정확하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네 가지를 ‘뿌리(rhizomata)’라고 불렀다.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이건 파르메니데스를 따른 거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섞이고 흩어지면서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나무는 뭘로 이루어져 있나? 흙과 물과 공기와 불의 혼합물이다. 나무가 탄다는 건 뭔가? 불이 빠져나가고, 재(흙)만 남는 거다. 생성도 소멸도 아니다. 그냥 재배열이다.”
뷔가 거들었다.
“이거 거의 레고 아님? 레고 블록은 안 변하는데, 조립 방식을 바꾸면 다른 모양이 나오는 거.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을 4가지 레고 블록으로 본 거네요?”
짜교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완벽한 비유다! 뷔, 너 방금 2500년 된 철학을 레고로 번역했다. 엠페도클레스의 세계관은 정확히 이거다. 우주는 4가지 불변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블록들이 조립되고 분해되면서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재배열일 뿐이다.”
정국이 물었다.
“근데 교수님, 그럼 누가 조립하고 분해해요? 레고는 사람이 조립하는데, 우주는 누가 조립함?”
짜교수는 자석 두 개를 들어 올렸다.
“바로 그거다. 정국, 네가 엠페도클레스의 두 번째 혁신을 건드렸다. 엠페도클레스는 동력의 개념을 철학에 최초로 도입했다. 물질(4원소)만으로는 부족하다. 뭔가 그것들을 움직이는 힘이 필요하다. 엠페도클레스는 그 힘을 두 가지로 봤다. 사랑(Philotes)과 미움(Neikos). 사랑은 결합시키고, 미움은 분리시킨다.”
지민이 눈을 크게 떴다.
“사랑이요? 철학에서 사랑이 나와요?”
짜교수가 하트 스티커를 들어 보였다.
“그렇다. 엠페도클레스는 우주의 근본 동력을 ‘사랑’과 ‘미움’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적 사랑이 아니다. 이건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다. 현대 물리학으로 치면 인력과 척력 같은 거다. 사랑이 지배하면, 4원소가 완전히 섞여서 하나의 구형(Sphairos)이 된다. 이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비슷하다. 그런데 미움이 개입하면, 이 구형이 쪼개지고 흩어지면서 세상이 생긴다.”
RM이 태블릿에 정리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엠페도클레스의 우주는 순환한다는 건가요? 사랑이 지배 → 완전히 섞임 → 미움이 개입 → 흩어짐 → 다시 사랑 → 반복?”
짜교수는 손뼉을 쳤다.
“완벽하다! RM, 너 지금 엠페도클레스의 우주론을 정리했다. 이 순환을 ‘우주적 순환(cosmic cycle)’이라고 부른다.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단계: 사랑의 지배 → 모든 게 하나 (Sphairos)
2단계: 미움이 침입 → 분리 시작
3단계: 미움의 지배 → 완전히 흩어짐
4단계: 사랑이 침입 → 결합 시작 → 다시 1단계
우리는 지금 2단계와 3단계 사이쯤에 산다. 사랑과 미움이 섞여 있는 시기. 그래서 세상에 결합도 있고 분리도 있는 거다.”
슈가가 말했다.
“이거 완전 빅뱅-빅크런치 우주론 아님? 우주가 팽창했다가 다시 수축하고. 엠페도클레스가 우주론을 예언한 건가요?”
짜교수가 웃었다.
“비슷하긴 한데, 엠페도클레스의 순환은 영원히 반복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건 파르메니데스의 영원성을 따른 거다. 다만 ‘존재’가 아니라 ‘순환’이 영원한 거다.”
뷔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교수님,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작동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처럼요?”
짜교수는 네 개의 용기를 섞으며 말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사랑과 미움이 경쟁한다. 어떤 건 결합하고(생명, 우정, 사회), 어떤 건 분리된다(죽음, 갈등, 전쟁). 엠페도클레스는 이게 우주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봤다. 완전한 사랑도, 완전한 미움도 오래가지 못한다. 둘이 섞여야 세상이 흥미롭다.”
단톡방에는 [엠페도클레스 = 우주적 연애 코치] 짤이 떠올랐다.
정국이 말했다.
“형들, 그럼, 근육도 4원소로 이루어진 거예요? 단백질은 뭐고, 탄수화물은 뭐임?”
짜교수가 웃으며 답했다.
“엠페도클레스 시대엔 단백질 개념이 없었다. 그는 모든 물질이 4원소의 혼합 비율로 결정된다고 봤다. 근육은 아마 흙과 물이 많고, 열정은 불이 많고, 숨은 공기가 많고. 비율의 문제다.”
강의실 불빛이 깜빡였다. 짜교수는 촛불을 끄고 두 번째 철학자를 소개했다.
“엠페도클레스가 ‘4개’로 쪼갰다면, 아낙사고라스 형님은 ‘무한 개’로 쪼갰다. 아테네에서 활동한 최초의 자연철학자. 이 형님은 말했다. ‘4개로는 부족하다. 세상의 모든 성질마다 각각의 종자(spermata)가 있어야 한다. 뼈는 뼈 종자, 살은 살 종자, 금은 금 종자. 무한히 많다.’”
칠판에 새로운 문장이 적혔다.
존재 = ∞ (무한한 종자들)
동력 = 누스(Nous, 정신)
슈가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무한 개요? 그럼 원소가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네요?”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 안에 만물의 종자가 있다(Everything in Everything)’라고 했다. 예를 들어, 빵 한 조각 안에는 뼈 종자도 있고, 살 종자도 있고, 피 종자도 있다. 네가 빵을 먹으면, 네 몸이 그중에서 필요한 종자를 골라서 뼈를 만들고 살을 만든다. 이게 영양 섭취의 원리다. 이 형님은 의외로 과학적이었다.”
RM이 정리했다.
“그럼, 아낙사고라스는 ‘질적 다양성’을 설명하려 한 거네요? 엠페도클레스는 4가지 블록의 조합으로 설명했는데, 아낙사고라스는 ‘각각의 성질마다 고유한 종자가 있다’라고 본 거?”
짜교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정확하다! 이게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의 차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양적 차이(혼합 비율)로 질적 차이를 설명하려 했고, 아낙사고라스는 질적 차이 자체를 근본적인 것으로 봤다. ‘빨강’과 ‘파랑’은 4원소의 조합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종자다.”
뷔가 물었다.
“그럼, 누가 그 무한한 종자들을 정리해요?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미움이 있었는데, 아낙사고라스는요?”
짜교수는 칠판을 가리켰다.
“바로 그거다. 아낙사고라스는 ‘누스(Nous)’를 도입했다. 이 단어는 ‘정신’, ‘지성’, ‘마음’ 등으로 번역되는데, 엠페도클레스의 사랑/미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누스는 지적인 힘이다. 우주를 설계하고, 질서를 부여하고, 회전을 시작시킨다. 아낙사고라스는 말했다. ‘태초에 모든 종자가 뒤섞여 있었다. 그때 누스가 회전을 시작시켰고, 그 회전에 의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게 우주 생성론이다.”
지민이 조용히 말했다.
“누스… 정신이 우주를 만든다는 거예요? 그럼, 우주는 지적인 존재인 건가요?”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 좋은 질문이다.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는 애매하다. 어떤 학자는 ‘신’처럼 해석하고, 어떤 학자는 ‘자연법칙’처럼 해석한다. 분명한 건, 누스는 물질이 아니다. 종자들은 전부 물질인데, 누스만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미세하며,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게 서양철학사에서 ‘정신’과 ‘물질’을 구분한 최초의 시도다.”
RM이 메모하며 말했다.
“그럼, 아낙사고라스는 이원론자네요? 물질(무한한 종자)과 정신(누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랑 비슷한 건가요?”
짜교수가 웃었다.
“비슷한 방향이긴 한데, 플라톤만큼 극단적이진 않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물질세계를 완전히 분리했지만,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는 여전히 우주 안에 있다. 회전을 시작시키고, 질서를 부여하지만, 완전히 초월적이진 않다. 그래도 방향은 맞다. 아낙사고라스 → 플라톤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강의실 불빛이 다시 깜빡였다. 짜교수는 세 번째 철학자를 소개했다.
“엠페도클레스가 4개, 아낙사고라스가 무한개라면, 데모크리토스 형님은 ‘쪼갤 수 없는 것(atomos)’으로 갔다. 원자론의 창시자. 스승 레우키포스와 함께 만든 이 이론은 2000년 뒤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된다.”
칠판에 마지막 문장이 적혔다.
존재 = 원자(Atom) + 허공(Void)
변화 = 원자의 결합 + 분리
동력 = 원자 자체의 운동
슈가가 눈을 크게 떴다.
“교수님, 이거 진짜 현대 원자론 아님? 원자랑 허공?”
짜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물론 고대의 원자와 현대의 원자는 다르지만(고대 원자는 진짜 쪼갤 수 없다고 봤으니까), 기본 아이디어는 같다. 만물은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입자들이 결합하고 분리되면서 변화가 생긴다.”
정국이 물었다.
“그럼, 원자는 뭘로 이루어진 거예요?”
짜교수가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원자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다. 이게 ‘atomos(쪼갤 수 없는 것)’의 의미다.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원자와 허공만 있다. 나머지는 전부 의견이다(By convention sweet, by convention bitter, but in reality atoms and void).’ 맛, 색깔, 소리 — 이런 건 전부 우리의 감각이 만들어낸 거고, 진짜 현실은 원자의 배열일 뿐이다.”
뷔가 말했다.
“이거 거의 매트릭스네요. 우리가 보는 건 전부 렌더링이고, 진짜는 뒤에 있는 코드(원자)?”
짜교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정확한 비유다. 데모크리토스의 세계관은 극단적 환원주의다. 모든 것은 원자로 환원된다. 사랑? 원자의 배열. 생각? 원자의 운동. 영혼? 특별히 미세한 원자들. 죽음? 영혼 원자가 흩어지는 것. 전부 다 물질이다.”
RM이 정리했다.
“그럼, 데모크리토스는 유물론자네요? 정신 같은 건 없고, 전부 물질?”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데모크리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철저한 유물론자다. 아낙사고라스는 ‘누스’라는 비물질적 동력을 인정했지만, 데모크리토스는 그것조차 거부했다. 원자 자체가 움직인다. 외부의 힘이 필요 없다. 원자는 영원히 운동한다.”
슈가가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데모크리토스가 ‘허공’을 인정했다는 게 중요한 거죠? 파르메니데스가 ‘비존재는 없다’라고 했는데, 허공은 바로 그 비존재잖아요.”
짜교수는 손뼉을 쳤다.
“슈가, 정확히 핵심을 짚었다! 데모크리토스의 허공은 파르메니데스에게 정면 선전포고다. 파르메니데스는 ‘비존재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아니, 빈 공간은 있다. 그래야 원자가 움직일 수 있다. 허공은 “있는 것”만큼이나 실재한다.’ 이건 혁명이다. 비존재도 일종의 존재라는 거니까.”
지민이 말했다.
“그럼,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건가요? 역설 아닌가요?”
짜교수가 웃었다.
“바로 그게 데모크리토스의 과감함이다. 그는 역설을 받아들였다. ‘허공은 있지 않은 것(what is not)이지만, 있는 것(what is)만큼이나 실재한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vacuum)’도 비슷한 개념이다. 아무것도 없지만, 뭔가 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네 개의 용기와 칠판의 세 이론을 바라보았다.
짜교수는 칠판을 가리켰다.
다원론 3인방
엠페도클레스: 4원소 + 사랑/미움
존재는 4개
혼합 비율로 질적 차이 설명
우주는 순환한다
아낙사고라스: 무한 종자 + 누스
존재는 무한 개
각 성질마다 고유한 종자
정신(누스)이 질서를 부여
데모크리토스: 원자 + 허공
존재는 쪼갤 수 없는 원자
허공(비존재)도 실재
모든 것은 원자로 환원
“이 세 사람이 한 일은 간단하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하나’를 ‘존재는 여럿’으로 바꿨다. 그러면서도 ‘존재는 불변’이라는 원칙은 지켰다. 4원소든, 무한 종자든, 원자든 — 전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다만 결합하고 분리될 뿐이다. 이게 다원론의 전략이다. 엘레아의 논리를 지키면서, 변화를 설명한다.”
짜교수는 칠판에 마지막으로 적었다.
오늘의 퀘스트
“너희 삶에서 ‘결합과 분리’의 경험을 하나 골라라. 친구 관계, 연애, 팀 프로젝트, 뭐든 좋다. 그걸 다원론 구조로 설명해 봐라. ‘변한 게 아니라, 요소들이 결합했다가 분리된 거다’라는 식으로. 예를 들어, ‘우리 관계가 끝난 게 아니라, 각자의 원자가 다른 배열로 재조합된 거다’처럼. 생성/소멸을 주장하면 F 서버로 간다. 피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민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첫 팀 활동이요. 처음엔 다들 따로따로였는데, 연습하면서 하나가 됐다가, 활동 끝나고 다시 각자의 길로 갔어요. 생성된 것도 소멸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랑(결합)이 왔다가 미움(분리)이 온 건가요?”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 완벽하다. 엠페도클레스가 딱 그렇게 설명했을 거다. 너희 일곱 명은 원래부터 존재했다(불변). 활동이라는 사랑의 힘이 너희를 결합시켰고, 활동 종료라는 미움의 힘이 분리시켰다. 그런데 너희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배열이 바뀌었을 뿐.”
단톡방에는 [지민 감성 = 엠페도클레스의 우주 순환] 짤이 떠올랐다.
뷔가 말했다.
“저는 사진 찍을 때요. 처음엔 피사체랑 저랑 따로였는데, 셔터 누르는 순간 하나가 돼요. 그리고 사진 저장되면 다시 분리돼요. 이건 원자들의 일시적 결합인가요?”
정국이 거들었다.
“형들, 전 운동할 때요. 바벨이랑 저랑 따로였는데, 들어 올리는 순간 하나가 돼요. 그리고 내려놓으면 다시 분리. 이거 완전 데모크리토스 아님? 원자들의 일시적 접촉?”
학생들이 웃었다. 슈가가 말했다.
“정국이 근육 = 바벨 원자의 결합체ㅋㅋ”
강의실 불빛이 깜빡였다. 짜교수는 네 개의 용기를 하나씩 정리하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멈춰 서서, 학생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원론자들은 ‘있는 것’을 설명했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 아낙사고라스는 무한한 종자,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칠판에 새로운 문장이 적혔다.
존재론 → 인식론
“무엇이 있는가?” → “어떻게 아는가?”
“엠페도클레스는 말했다.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 네 눈의 불로 세상의 불을 보고, 네 몸의 물로 세상의 물을 느낀다.’ 아낙사고라스는 반박했다. ‘아니, 반대가 반대를 안다. 차가운 것은 뜨거운 것으로만 느껴진다. 대비가 없으면 인식도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또 다르게 말했다. ‘감각은 원자의 접촉이다. 하지만 그건 어두운 인식일 뿐. 진짜 인식은 이성이다.’”
칠판에 세 줄이 적혔다.
엠페도클레스: 같은 것 → 같은 것
아낙사고라스: 반대 → 반대
데모크리토스: 원자 → 감각 (하지만 불완전)
“다음 시간은 ‘인식론 서버’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아는가? 눈으로? 이성으로? 원자로? 준비해라. 다음 시간엔 ‘아는 것’의 구조가 해체된다. 피스!”
문이 닫혔다. 네 개의 용기는 여전히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촛불은 꺼졌지만, 물과 흙과 바람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RM이 중얼거렸다.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무엇이 있는가에서 어떻게 아는가로… ”
슈가가 답했다.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해. 원자를 어떻게 알지? 눈에도 안 보이는데.”
단톡방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음 회: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 - 다원론자의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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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해설: 다원론의 전략과 한계
파르메니데스의 딜레마를 푸는 세 가지 방법
엘레아학파 이후 철학자들은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어떻게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변화를 설명할 것인가?” 다원론자들의 해법은 일관된다. “존재는 불변”이라는 원칙은 받아들이되, “존재는 하나”라는 명제는 거부한다. 존재를 여럿으로 쪼개면, 각각의 존재는 불변하지만, 그들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 양적 환원과 우주적 순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질적 다양성을 양적 차이로 환원하려는 시도다. 모든 사물은 불, 물, 공기, 흙의 혼합 비율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뼈는 4:2:2:1 비율, 살은 다른 비율. 이것은 현대 화학의 선구적 발상이다(물론 원소의 종류는 틀렸지만). 더 혁신적인 것은 동력의 개념이다. 엠페도클레스 이전 철학자들은 “무엇이 있는가”만 물었지, “무엇이 그것을 움직이는가”는 묻지 않았다. 사랑과 미움은 최초의 동력인(efficient cause) 개념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4원인설의 선구로 평가했다.
아낙사고라스: 질적 다원론과 정신의 등장
아낙사고라스는 엠페도클레스와 정반대 전략을 택한다. 질적 차이는 환원 불가능하다. 빨강과 파랑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각각 고유한 종자를 갖는다. “만물 안에 만물의 종자(Everything in Everything)”라는 명제는 기묘하지만 일관되다: 변화는 종자의 재배열이 아니라, 어떤 종자가 지배적이 되느냐의 문제다. 빵이 살이 되는 것은, 빵 안에 이미 있던 살 종자가 분리되어 네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누스(Nous)의 도입이다. 누스는 “가장 순수하고, 다른 것과 섞이지 않으며, 홀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것은 정신과 물질을 구분한 최초의 명시적 시도다.
데모크리토스: 철저한 유물론과 허공의 역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고대 유물론의 정점이다. 원자와 허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색깔, 맛, 냄새 — 이른바 “이차 성질(secondary qualities)”은 주관적 의견이고, 진짜 현실은 원자의 형태, 배열, 위치뿐이다. 이것은 근대 과학(갈릴레오, 데카르트)의 1차 성질/2차 성질 구분을 2000년 앞서 제시한 것이다. 더 급진적인 것은 허공의 인정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비존재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데모크리토스는 “허공은 ‘있지 않은 것(to mē on)’이지만, ‘있는 것(to on)’만큼이나 실재한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존재론적 혁명이다: 부정적 실재(negative reality)의 인정.
다원론의 한계와 다음 질문
다원론은 변화를 설명하는 데 성공했지만,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어떻게 우리는 이 원소/종자/원자를 아는가?” 엠페도클레스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like knows like)”라고 답했다. 우리 눈에도 불이 있기에 세상의 불을 본다. 아낙사고라스는 반대로 “대비를 통해 안다(opposites know opposites)”라고 했다. 차가운 것은 뜨거운 것과의 대비로만 인식된다. 데모크리토스는 감각을 “어두운 인식”, 이성을 “밝은 인식”으로 구분했다. 이 논쟁이 16화의 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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