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2화. 역설의 서버: 제논의 무한 로딩
강의실에 들어서자 화면 하나가 프로젝터에 띄워져 있었다. 끝없이 돌아가는 로딩 아이콘. 짜교수는 거북이 인형을 한 손에, 다른 손에는 활과 화살(장난감)을 들고 등장했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끈이 풀려 있었다.
학생들은 직캠을 켜려다 로딩 화면에 빠져들었다.
“교수님, 저거 언제 끝남?”
“끝 안 남ㅋㅋ”
짜교수는 칠판에 적었다.
Truth = Infinite Loop
“오늘은 엘레아의 제논 형님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지난 시간에 파르메니데스가 ‘변화는 없다, 움직임은 환영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당연히 사방에서 욕이 날아왔다. ‘뭔 소리야, 눈 떠봐, 세상이 움직이잖아.’ 제논은 스승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반격하기 위해 역설이라는 무기를 만들었다. 전략이 기가 막히다. 직접 ‘움직임은 없다’를 증명하는 대신,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너희 논리가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는 걸 보여준 거다. 이걸 귀류법이라 한다.”
슈가가 말했다.
“교수님, 그러니까 공격이 아니라 카운터펀치?”
“정확하다. 제논의 역설은 전부 카운터다. 상대방의 전제를 받아들인 척하고, 그 전제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오늘 세 개만 보자.”
짜교수는 칠판에 크게 적었다.
역설 1: 이분법 — 결승선에 도달할 수 없다
“A에서 B로 가려면, 먼저 중간 지점을 지나야 한다. 그 중간 지점에 가려면, 다시 그 중간의 중간을 지나야 한다. 이게 무한히 반복된다. 무한한 수의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무한한 과정을 완료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 너는 출발조차 할 수 없다.”
뷔가 멈칫했다.
“잠깐, 그러면 저 지금 여기서 문까지 못 감? 중간을 무한히 나눠야 하니까? 이거 ‘무한 로딩’ 아님? 페이지가 영원히 안 열리는 거랑 같은 거잖아.”
짜교수가 로딩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그거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무한한 중간 지점을 거쳐야 하고, 무한한 과정은 끝나지 않으므로, 너는 영원히 로딩 중이다. 도착 불가.”
RM이 바로 받았다.
“근데 교수님, 실제로는 도착하잖아요. 제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교실까지 도착했다는 증거인데.”
짜교수가 웃었다.
“그게 역설의 힘이다. 경험적으로는 도착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는 도착할 수 없다. 제논이 노리는 건 바로 이 간극이다. '움직임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너희, 그럼 이 논리적 모순을 설명해 봐라.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무한의 개념이 아직 없었으니까.”
짜교수는 칠판에 두 번째를 적었다.
역설 2: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 가장 빠른 자는 가장 느린 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스프린터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와 달리기를 한다. 거북이에게 100미터 핸디캡을 준다. 아킬레우스가 100미터 지점에 도착하면, 그 사이 거북이는 10미터를 간다. 아킬레우스가 그 10미터를 가면, 거북이는 다시 1미터를 간다. 아킬레우스가 1미터를 가면, 거북이는 0.1미터를 간다. 무한히 반복. 아킬레우스는 거북이가 ‘있었던 지점’에 도달할 때마다, 거북이는 항상 조금이라도 앞에 있다. 따라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정국이 벌떡 일어났다.
“교수님 이건 제가 직접 증명할 수 있는데요. 지금 교실에서 달려볼까요? 거북이 인형 놓고.”
짜교수가 거북이 인형을 교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달려봐. 실제로 따라잡겠지. 그런데 제논의 질문은 이거다. 네가 따라잡는 건 눈으로 보인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왜’ 따라잡을 수 있는지 설명해 봐. 무한한 수의 단계를 유한한 시간 안에 완료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걸 당시 수학으로는 설명하지 못했다.”
슈가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이거 코인 차트에서 매일 보는 건데요. 손절 라인까지 떨어지는데 영원히 안 닿을 것 같다가 갑자기 닿아 있음. 제논의 역설은 코인판에서 매일 깨지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존재론적 손절은 무한 로딩이었는데 현실 손절은 즉시 체결”
짜교수는 세 번째를 적었다.
역설 3: 날아가는 화살 — 화살은 멈춰 있다
짜교수가 장난감 화살을 허공에 던지며 말했다.
“날아가는 화살을 어느 한순간에 포착해 봐라. 그 순간, 화살은 특정한 한 점에 있다. 그 점에 ‘있다’는 건, 그 순간 화살은 정지해 있다는 뜻이다. 다음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한 점에 정지해 있다. 시간이 순간들의 모임이라면, 화살은 매 순간 정지해 있으므로 — 화살은 움직인 적이 없다.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정지 상태의 연속을 네 눈이 ‘움직임’으로 해석한 거다.”
지민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이거 영화 필름 아닌가요? 영화도 결국 정지된 프레임의 연속이잖아요. 초당 24 프레임. 하나하나는 멈춰 있는 사진인데,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 제논이 영화를 예언한 건가?”
짜교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지민, 방금 2500년 된 역설을 가장 정확하게 현대적으로 번역했다. 영화 필름이 정확히 제논의 화살이다. 매 프레임은 정지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움직임’을 본다. 제논의 질문은 이거다. 그 움직임은 어디서 오는 거지? 정지 상태를 아무리 많이 더해도 움직임이 되지 않는다면, 운동이란 대체 뭐지?”
단톡방에는 [지민 = 제논의 영화감독] 짤이 돌았다.
RM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정리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제논의 역설은 세 가지 방향에서 움직임을 공격한다. 이분법은 ‘도착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따라잡을 수 없다’, 화살은 ‘애초에 날지 않았다.’ 전부 결론은 같다. 운동은 불가능하다. 스승 파르메니데스가 옳다.”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된다. 제논의 역설이 무서운 건 ‘운동은 없다’는 결론 때문이 아니다. 이 역설들이 던진 진짜 질문 때문이다. 공간은 무한히 나눌 수 있는가? 시간은 순간들의 모임인가? 무한한 과정을 유한한 시간 안에 완료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2000년 동안 풀리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완전히는 못 풀었고, 아르키메데스조차 제논의 공격이 두려워서 무한소를 공개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뷔가 물었다.
“그럼, 언제 풀린 거예요?”
“17세기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발명했을 때 실마리가 나왔고, 19세기에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가 극한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했을 때 비로소 수학적으로 해결됐다. 무한한 항을 더해도 유한한 값에 수렴할 수 있다는 것, 무한등비급수라는 개념이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기까지의 거리를 무한히 쪼개도, 그 합은 유한하다. 제논은 이걸 몰랐다. 하지만 제논이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미적분학도 없었을 거다.”
정국이 말했다.
“그러니까 제논은 틀렸는데, 그 틀림이 수학을 만든 거네요?”
짜교수가 거북이 인형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확하다. 파르메니데스가 ‘무서운 건 그가 맞아서가 아니라, 틀렸는데 논리를 깰 수 없어서’라고 했던 거 기억나? 제논도 마찬가지다. 역설은 틀렸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는다. 화살은 날아간다. 그런데 ‘왜’를 설명하기 위해 인류는 2000년이 걸렸다. 제논의 거북이가 인류에게 미적분을 선물한 거다.”
짜교수는 칠판에 마지막으로 적었다.
오늘의 퀘스트
“너희 일상에서 ‘무한 로딩’을 경험하는 순간을 하나 골라라. 시험공부를 해도 끝이 안 보이는 거,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도 영원히 닿지 않는 거, 다이어트를 해도 목표 체중에 절대 도달하지 않는 거. 그걸 제논의 역설 구조로 해석해라. 왜 무한 로딩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도달할 수 있는 건지. 로딩을 풀지 못하면 F 서버에서 영원히 버퍼링 된다. 피스!”
에타 반응 폭발 �
정국 글: “헬스장에서 10kg 증량 목표 세웠는데, 1kg 찍으면 0.5kg 남고, 0.5kg 찍으면 0.25kg 남고… 이거 아킬레우스와 덤벨임. 근데 난 따라잡음. 왜냐면 난 정국이니까” → 댓글: “정국 = 제논의 역설을 근육으로 반박한 남자”, “아킬레우스는 못 따라잡았는데 정국은 따라잡음ㅋㅋ”, “미적분 필요 없고 프로틴만 있으면 됨”
뷔 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 반을 다가가면 그 사람은 반만큼 멀어지고. 또 반을 다가가면 또 반만큼. 영원히 닿지 않는 거리. 이게 제논의 역설이 아니라 제논의 썸임” → 댓글: “뷔 감성 = 무한급수 러브레터”, “수렴은 하는데 닿지는 않는 관계ㅋㅋ”, “제논의 썸 —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영원히 사귀지 않는다”
지민 글: “영화 필름처럼 우리의 하루도 정지된 순간들의 모음이라면, 움직임은 내가 만든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날아가는 화살이 사실은 멈춰 있었듯이, 내가 달려온 것도 사실은 멈춰 있었던 순간들을 내 마음이 이어 붙인 것일지도” → 댓글: “지민 감성 = 제논의 시인”, “정지 프레임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인생 아님?”, “이건 역설이 아니라 서정시”
슈가 글: “코인 손절 라인: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절대 닿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체결됨. 결론: 현실은 제논보다 잔인하다. 무한급수는 수렴하고, 계좌는 0에 수렴한다” → 댓글: “슈가 형 계좌 = 극한값 0ㅋㅋ”, “제논이 코인 했으면 역설 안 만들고 손절했을 듯”, “수렴의 공포를 체감한 남자”
RM 글: “제논의 역설이 2000년 동안 안 풀렸다가 미적분으로 풀렸다는 거, 이거 결국 ‘좋은 질문이 좋은 답보다 먼저 온다’는 뜻 아닌가. 틀린 결론이 맞는 질문을 품고 있었던 거. 역설의 가치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 댓글: “RM 요약본 = 역설의 헌법 시즌2”, “틀린 결론 + 맞는 질문 = 제논 공식”, “이거 졸논 주제로 쓸 수 있음?”
강의실을 나서던 짜교수는 거북이 인형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끝없이 돌아가는 로딩 화면을 끄지 않은 채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다음은 밈학과 ‘무한 서버의 방패’다. 멜리소스 형님을 모신다. 사모스 섬 출신 해군 제독이자 철학자. 이 형님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물려받되, 한 가지를 뒤집었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는 유한한 구형이라 했다면, 멜리소스는 말했다 — 아니, 존재는 무한하다. 유한하면 바깥에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은 없으니까. 스승의 논리를 스승보다 더 밀어붙인 거다. 그리고 덧붙였다 — 존재는 물체가 아니다. 두께도 없다. 이건 파르메니데스의 구형을 해체한 거다. 제논이 스승을 방어하는 칼이었다면, 멜리소스는 스승을 확장하는 방패다.”
칠판에는 번개처럼 적혔다:
Being = ∞. No boundary. No body. Shield mode ON.
짜교수는 풀린 운동화 끈을 묶지 않은 채 교실을 나갔다. 프로젝터의 로딩 아이콘은 여전히 돌고 있었다.
부제목 12화. 역설의 서버 제논의 무한 로딩 추가.jpg
#밈학과 #짜교수 #제논의역설 #무한로딩 #아킬레우스와거북이 #날아가는화살은멈춰있다 #이분법의역설 #귀류법은카운터펀치 #무한급수는수렴한다 #도착할수없는결승선 #정지프레임의연속이움직임이다 #제논의썸 #한없이가까워지지만닿지않는다 #틀린결론이맞는질문을품고있었다 #코인손절은즉시체결 #거북이가미적분을선물했다 #현실은제논보다잔인하다 #정국은역설을근육으로반박한다 #지민감성은제논의시인 #무한로딩에서버퍼링중 #엘레아학파 #파르메니데스의제자 #철학밈 #고대그리스 #밈철학 #인문학스타그램 #생각하는피드 #MZ철학 #lettersfromatraveler
철학 해설:
귀류법 — 제논의 전략
짜교수가 “카운터펀치”라고 표현한 것이 귀류법(歸謬法, reductio ad absurdum)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일단 참이라고 가정한 뒤, 그 가정에서 모순을 이끌어 내 원래 주장이 거짓임을 보이는 논증법이다. 제논은 ‘운동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모순을 터뜨렸다. 이것이 단순히 ‘운동은 없다’고 선언한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결정적 차이다. 스승은 진리를 선언했고, 제자는 반대편의 논리를 내부에서 폭파시켰다.
이분법의 역설 — 무한 로딩의 원형
뷔가 “무한 로딩”이라고 번역한 이 역설의 핵심은, 유한한 거리 안에 무한한 수의 중간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간이 무한히 분할 가능하다면, 어떤 거리든 그 안에 무한한 단계가 있고, 무한한 단계를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출발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은 연속체(공간이 꽉 차 있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전제)와 무한분할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 무한급수의 선구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한 제논의 표현에는 ‘거북이’가 없었다. “가장 빠른 자는 가장 느린 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였고, 후대 주석가 테미스티오스가 ‘거북이’로 바꾸면서 유명해졌다. 이 역설이 수학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한한 항의 합이 유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 던졌기 때문이다. 100 + 10 + 1 + 0.1 + 0.01 + … 이 무한급수의 합은 약 111.11이다. 무한한 단계를 밟지만 유한한 값에 수렴한다. 이 개념이 19세기에야 엄밀하게 정립되었다는 사실이, 제논의 질문이 얼마나 근본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화살의 역설 — 시간의 본질
지민이 “영화 필름”이라고 번역한 이 역설은, 나머지 두 역설과 공격 방향이 다르다. 이분법과 아킬레우스가 공간의 무한분할을 문제 삼는다면, 화살은 시간의 본질을 문제 삼는다. 시간이 순간들의 모임이라면, 매 순간 화살은 한 점에 정지해 있다. 정지 상태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운동이 되지 않는다면, 운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베르그송은 “운동을 공간적으로 환원해서 분석한 것 자체가 오류”라고 답했고,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는 ‘양자 제논 효과’라는 이름으로 이 역설이 되살아난다. 관측 행위 자체가 양자 상태의 변화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틀린 결론이 맞는 질문을 품고 있었다”
RM이 정리한 이 문장이 제논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요약한다. 제논의 결론(운동은 불가능하다)은 틀렸다. 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던진 질문들 — 무한, 연속, 극한, 시간의 본질 — 은 전부 맞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들이 아르키메데스의 구적법,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의 해석학, 칸토어의 집합론으로 이어졌다. 제논의 거북이는 2500년에 걸쳐 수학의 역사를 끌고 갔다.
'나의 창작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화. 두 갈래 길의 서버: 진리와 의견 사이에서 (0) | 2026.02.19 |
|---|---|
| 13화. 무한의 방패: 멜리소스가 확장한 존재의 경계 (0) | 2026.02.16 |
| 거의 사랑, 새벽 부엌에서 끓이는 죽에 대하여 (0) | 2026.02.14 |
| 11화. 존재의 서버: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것’의 공포 (0) | 2026.02.14 |
| 10화. 밈학과 탈(脫) 필터링: 크세노파네스 서버 (0) | 202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