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창작들

11화. 존재의 서버: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것’의 공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2. 14.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1화. 존재의 서버: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것’의 공포

 

강의실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음악도 없고, 와이파이도 끊겼다. 학생들이 휴대폰을 켜려 하자 화면이 멈춰 있었다. 시계 초침도 멈춰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짜교수는 완전 흰색 정장에 회색 돌무늬 넥타이, 그리고 손에는 멈춰 있는 모래시계를 들고 등장했다.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말했다.

“오늘은 밈학과 최대 난제다. 파르메니데스 서버에 접속한다.”

칠판에는 이미 적혀 있었다.

존재 = Being Server (변화 없음, 수정 불가, 영구 저장)

“파르메니데스 형님은 고대 그리스 철학사에서 가장 과격한 주장을 했다. ‘변화는 없다. 움직임은 환영이다. 존재만 있고, 비존재는 없다.’ 너희가 보는 모든 변화, 모든 생성과 소멸, 모든 움직임은 감각의 오류다. 진짜 퓌시스는 완벽하고, 불변하며, 영원하다.”

정국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럼 제가 지금 손을 드는 것도 환영입니까?”

짜교수는 모래시계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정확하다. 네 손은 움직인 게 아니다. 너는 ‘손이 올라간 상태’와 ‘손이 내려간 상태’를 각각 다른 존재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모든 순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너는 그 완성된 존재의 여러 단면을 시간 순서대로 보고 있는 것뿐이다.”

슈가는 노트북을 열려다 멈췄다.

“교수님, 그럼 제 코인 차트도 사실은 멈춰 있었던 겁니까? 떡락도 없고 떡상도 없고 그냥 존재?”

짜교수는 칠판을 가리켰다.

“그렇다. 너의 차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네 눈이 시간이라는 렌더링 오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진짜 서버에는 이미 모든 가격이 동시에 존재한다. 과거 가격, 현재 가격, 미래 가격. 전부 다 이미 거기 있다. 너는 그걸 ‘변화’라고 착각할 뿐이다.”

뷔가 거들었다.

“그럼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건 뭡니까? 그냥 UX(User Experience) 디자인 실수?”

짜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는 ‘지금’만 존재한다고 했다.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없음(비존재)’는 말 그대로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지금’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지금’은 변하지 않는다.”

RM은 태블릿에 정리하며 물었다.

“그럼,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는 이겁니까? ‘변한다’는 건 ‘없던 것이 생긴다’ 또는 ‘있던 것이 없어진다’는 뜻인데, 비존재(없음)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변화도 불가능하다?”

짜교수는 손뼉을 쳤다.

“완벽하다! RM, 너 지금 파르메니데스의 핵심 논증을 정리했다. 변화는 ‘존재 → 비존재’ 또는 ‘비존재 → 존재’의 이동이다. 그런데 비존재는 말 그대로 ‘없다’.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없고, 없는 곳에서 올 수도 없다. 따라서 변화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민은 창밖을 보며 아련하게 말했다.

“그럼, 저 구름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제가 착각한 건가요? 구름은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고?”

짜교수는 지민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바로 그거다. 너는 지금 감각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파르메니데스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길은 ‘존재의 길’—진리의 길이다. 두 번째 길은 ‘의견의 길’—감각과 착각의 길이다. 구름이 움직인다는 건 의견의 길이다. 진리의 길에서 보면, 구름은 영원히 같은 자리에 존재한다.”

단톡방에는 [지민 감성 = 정지된 구름 철학자] 짤이 돌았다.

정국은 운동 앱을 보다가 물었다.

“형들, 그럼, 제 근육이 자라는 것도 환영임? 오늘 벤치프레스 80kg 들었는데, 이게 사실은 그냥 존재 상태 A에서 존재 상태 B로 바뀐 게 아니라, 처음부터 둘 다 있었던 거?”

슈가가 웃으며 답했다.

“정국아, 네 근육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 너는 그걸 ‘성장’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존재 서버에는 네 모든 근육 상태가 동시에 저장되어 있어. 너는 그냥 그중 일부를 시간 순서대로 로딩하는 거야.”

학생들이 웃었다. 그러나 짜교수는 웃지 않았다.

“웃지 마라. 이건 농담이 아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너무 과격해서 후대 철학자들이 2500년 동안 반박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문제는,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다는 거다. 너희가 ‘변화’를 믿는 건 감각 때문이다. 그런데 감각은 거짓말을 한다. 막대기를 물에 넣으면 꺾여 보이지? 그러나 막대기는 꺾이지 않았다. 감각이 거짓말한 거다.”

뷔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교수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든 게 환영이면, 노력도 의미 없고, 변화도 의미 없고, 그냥 존재만 하면 되는 건가요?”

짜교수는 모래시계를 책상 위에 놓으며 천천히 말했다.

“그게 바로 파르메니데스가 우리에게 던진 공포다. 만약 변화가 환영이라면, 너의 성장도 환영이다. 너의 사랑도 환영이다. 너의 꿈도 환영이다. 모든 게 이미 완성되어 있고, 너는 그냥 그걸 재생하는 플레이어일 뿐이다. 이게 존재 서버의 진실이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각자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 속 숫자들이 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게 정말 변하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정해진 숫자를 순서대로 보여주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짜교수는 칠판을 가리켰다.

존재의 공포 =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오늘의 퀘스트다! 너희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했던 사건 하나를 골라라. 그리고 그게 사실은 ‘변화’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것의 발견’이었다고 재해석해 봐라. 예를 들어, ‘나는 변했다’가 아니라 ‘나는 원래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로. 존재를 부정하면 F다. 피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국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럼, 제가 운동 시작한 건 변화가 아니라, 제 안에 원래 있던 근육 욕망을 발견한 거라는 뜻인가요?”

뷔가 거들었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원래 사진작가였다는 걸 깨달은 거?”

지민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첫사랑도…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원래 사랑하고 있었던 걸 발견한 거네요.”

단톡방에는 [지민 감성 = 존재론적 첫사랑] 짤이 떠올랐다. 슈가는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이거 완전 운명론 아님?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냥 발견만 하는 거면,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음?”

RM이 태블릿에 메모하며 정리했다.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는 완벽하지만, 삶과는 충돌한다. 이게 철학의 딜레마네요.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살기에는 불가능한.”

짜교수는 모래시계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바로 그거다. 파르메니데스는 너무 완벽해서 위험하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그의 수제자가 등장한다. 스승보다 더 과격한 놈.”

강의실 불빛이 깜빡였다. 짜교수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여전히 교단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학생들은 눈을 비볐다. 짜교수는 문 앞에서 멈춰 서서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시간은 제논 형님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수제자. 그는 스승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무기를 만들었다. 바로 ‘패러독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절대 추월할 수 없고, 날아가는 화살은 사실 멈춰 있으며, 경기장을 반으로 나누면 결승선에 도착할 수 없다. 제논은 증명했다. 움직임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칠판에 마지막 문장이 번개처럼 적혔다.

제논의 패러독스 = 움직임은 버그다

“준비해라. 다음 시간엔 너희의 모든 움직임이 논리적으로 파괴된다. 걷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하고, 클릭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증명당할 거다. 제논 서버에 접속하면, 너희는 영원히 로딩 중이다.”

짜교수는 문을 열려다 멈췄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고로, 나는 지금 이 문을 열 수 없다. 왜냐하면 문까지 가려면 먼저 반을 가야 하고, 반을 가려면 또 그 반을 가야 하고…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이게 제논의 패러독스다. 피스!”

문이 닫혔다. 아니, 닫힌 것 같았다. 학생들은 확신할 수 없었다. RM이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존재 서버에 접속한 건가?”

슈가가 답했다.

“아니면 우리가 처음부터 접속되어 있었는데, 다음 시간엔 로그아웃조차 못 한다는 걸 증명당하는 건지도.”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췄다.

“잠깐, 나 지금 일어날 수 있는 거 맞지? 일어나려면 먼저 반만 일어나야 하고, 그 전에 또 반만…”

뷔가 웃으며 말했다.

“정국아, 넌 이미 제논 서버에 감염됐어.”

단톡방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음 회: 제논의 패러독스 - 아킬레우스는 왜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는가]

[경고: 다음 에피소드를 보려면 먼저 반을 봐야 하고, 그 전에 또 반을 봐야 하고…]

 

#밈학과 #짜교수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존재론 #존재의서버 #BeingServer #엘레아학파 #일자 #있는것은있고없는것은없다 #비존재의불가능성 #사유와존재는같다 #칼포퍼 #제논 #아킬레우스와거북이 #BTS철학 #철학밈 #NoUpdateAvailable #InfiniteLoop #서양철학사 #lettersfromatraveler

 

철학 해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서양 존재론의 출발점이다. 핵심은 ‘없는 것’의 불가능성에 있다. ‘없음’을 떠올리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유의 대상, 즉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순수한 무(無)는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생성과 소멸의 불가능성이 논리적으로 도출된다.

진리의 길 vs 억견의 길

파르메니데스의 서사시 《자연에 대하여》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진리 편에서 여신은 이성만으로 도달하는 ‘있다’의 길을 가르치고, 의견 편에서는 감각에 의존하는 인간(가사자)의 세계를 다룬다. 중요한 것은 의견 편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신은 “가사자들의 의견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다만 거기에는 “참된 확신이 없다”라고 경고할 뿐이다.

일자(一者)

윗글에서 RM이 짚어낸 개념이다. 존재가 여럿이려면, 그 사이에 빈 공간, 즉 ‘없는 것’이 필요하다. 없는 것은 없으므로 경계도 없고, 따라서 존재는 하나다. 세계는 꽉 차 있다. 이 ‘꽉 참’의 이론이 후대에 원자론(데모크리토스)과 정면 충돌한다. 원자론은 빈 공간(허공)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사유와 존재는 같다”

본문에서 짜교수가 언급한 이 명제는 단순한 관념론이 아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논리적 귀결이다. 이것이 이후 플라톤의 이데아론(진짜 존재는 사유로만 파악된다)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먼 원형이 된다.

존재의 다섯 표지

불생불멸, 초시간성, 불가분성, 부동성, 완전성(구형). 이 다섯 가지는 전부 ‘없는 것은 없다’는 단일 전제에서 연역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진짜 혁신은 내용이 아니라 방법에 있다. 하나의 전제에서 논리만으로 세계의 성격을 도출한 최초의 사례이다. 칼 포퍼가 “연역적 방법의 발명자”라고 부른 이유다.

뷔가 느낀 ‘공포’

본문에서 가장 철학적으로 날카로운 순간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는 완벽하지만, 그 완벽함이 자유를 부정한다. 변화가 없으면 선택도 없고, 선택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 이 문제는 2500년 뒤 실존주의(사르트르, 키르케고르)가 정면으로 다루게 된다. “존재 서버 감금 챌린지”라는 뷔의 표현은, 파르메니데스적 결정론에 대한 실존적 불안을 정확히 포착한 셈이다.

다음 화 예고: 제논의 역설

제논은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반격하기 위해 역설을 고안했다. “움직임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렇다면 이것을 설명해 보라”라고 던진 논리적 폭탄이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은, 무한 분할과 연속성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것이며, 이것이 2000년 뒤 미적분학의 탄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