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3화. 무한의 방패: 멜리소스가 확장한 존재의 경계
강의실 문이 열리자, 학생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칠판에는 거대한 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원의 테두리가 점선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점선 바깥으로 마치 원이 끝없이 확장되는 것처럼 화살표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짜교수는 이번엔 해군 장교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다. 흰색 제복에 금색 견장, 그리고 손에는 방패 모양의 판넬을 들고 있었다. 방패에는 ∞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교수님, 오늘 컨셉이 뭐예요? 해적?”
“해군이지, 해군. 근데 왜 방패?”
짜교수는 방패를 교탁 위에 세워두고 칠판을 가리켰다.
“오늘은 멜리소스 형님이다. 사모스 섬 출신 해군 제독이자 철학자. 역사상 유일하게 아테네 해군을 격파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형님의 진짜 전투는 바다가 아니라 철학에서 벌어졌다.”
칠판에는 이미 적혀 있었다.
Being = ∞ (무한, 경계 없음, 물체 아님)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다. 그런데 스승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스승의 논리를 더 밀어붙였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는 완벽한 구형이다, 유한하다’라고 했을 때, 멜리소스는 반박했다. ‘아니, 존재는 무한해야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스승과 정반대 결론에 도달하는 게?”
RM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게 가능합니까? 같은 전제에서 출발해서 정반대 결론?”
짜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아니, 필연이다.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더 철저하게 적용했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다. ‘비존재는 없다.’ 멜리소스가 물었다. ‘그렇다면 존재가 유한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유한하다는 건 경계가 있다는 뜻이다. 경계 너머에는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그럼 그게 비존재 아닌가? 그런데 비존재는 없다고 했잖아. 따라서 존재는 무한해야 한다.’ 이게 멜리소스의 첫 번째 칼이다.”
슈가가 노트북을 열며 말했다.
“교수님, 이거 논리 버그 아님? 파르메니데스는 ‘꽉 찬 구형’이라고 했는데, 멜리소스는 ‘경계 없는 무한’이라고 하면, 완전히 다른 그림 아닌가요?”
짜교수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맞다.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그런데 같은 논리에서 나온 거다. 이게 멜리소스의 천재성이다. 그는 스승의 논리를 방패로 삼아, 스승의 결론을 공격한 거다. 제논이 스승을 지키는 칼이었다면, 멜리소스는 스승을 확장하는 방패다.”
뷔가 거들었다.
“그럼, 파르메니데스는 뭐라고 했어요? ‘야 이 배신자야’ 이랬나요?”
짜교수가 웃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미 죽었다. 멜리소스는 세대가 다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스승을 뒤집는 건 배신이 아니라 경의다. 진리에 대한 충성이 스승에 대한 충성보다 우선한다.”
정국이 물었다.
“교수님, 근데 존재가 무한하면 뭐가 달라지는 건데요?”
짜교수는 칠판의 점선 원을 가리켰다.
“모든 게 달라진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완성된 공’이었다. 꽉 차 있고, 경계가 명확하고, 완벽하다. 그런데 멜리소스의 존재는 ‘끝없이 확장되는 장’이다. 경계가 없고, 중심도 없고, 방향도 없다. 이건 단순히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거다.”
지민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주가 무한하다는 건가요? 끝이 없다는?”
짜교수가 지민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바로 그거다. 멜리소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최초로 ‘무한 우주’를 주장한 사람이다. 파르메니데스 이전에는 우주가 유한한 공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멜리소스는 ‘아니, 끝이 없어야 논리적으로 맞다’라고 선언한 거다.”
RM이 태블릿에 정리하며 물었다.
“그럼 멜리소스의 논증을 정리하면 이렇습니까?
비존재는 없다 (파르메니데스의 전제)
존재가 유한하면 경계 너머에 비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존재는 없다
따라서 존재는 무한하다?”
짜교수는 손뼉을 쳤다.
“완벽하다! RM, 너 지금 2400년 된 논증을 4줄로 정리했다. 이게 멜리소스의 무한 논증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멜리소스는 두 번째 폭탄을 던진다.”
칠판에 두 번째 문장이 적혔다.
존재는 물체가 아니다. 두께도 없다.
학생들이 술렁였다.
“뭐? 존재가 물체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유령?”
짜교수는 방패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말했다.
“멜리소스의 두 번째 혁신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꽉 찬 구형’이라고 했다. 이건 물질적 이미지다.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고, 밀도가 있고, 무게가 있는. 그런데 멜리소스는 말했다. ‘아니, 존재가 만약 두께가 있다면, 그건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부분으로 나뉘면 그건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존재는 하나다. 따라서 존재는 두께가 없어야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는 거다.”
슈가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잠깐만요. 존재가 물질이 아니면 뭡니까? 정신? 에너지? 코드?”
짜교수가 웃었다.
“멜리소스는 그걸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물체가 아니다’라고만 했다. 이게 얼마나 과격한 주장인지 알겠나? 그리스 철학자들 대부분은 존재를 물질로 생각했다. 물, 불, 공기, 원자. 전부 다 뭔가 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멜리소스는 ‘존재는 만질 수 없다’라고 선언한 거다.”
뷔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거의 매트릭스 아님?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게 사실은 진짜 존재가 아니고, 진짜 존재는 뒤에 숨어 있는 코드 같은 거?”
짜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비유다. 멜리소스의 존재는 물리적 세계 ‘뒤에’ 있는 뭔가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건 전부 현상이고, 진짜 존재는 감각으로 접근할 수 없다. 이 생각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이어진다. 플라톤도 ‘진짜 존재(이데아)는 감각 세계 너머에 있다’라고 했으니까.”
정국은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제 근육도 진짜 존재가 아니라는 거네요? 이건 좀 억울한데...”
학생들이 웃었다. 짜교수도 웃으며 말했다.
“정국아, 네 근육은 현상이다. 멜리소스 입장에서는. 진짜 존재는 그 뒤에 있는 뭔가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칠판의 점선 원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확장되는 경계 없는 존재. 두께도 없고, 물체도 아닌 존재.
짜교수는 칠판을 가리켰다.
존재의 세 가지 속성 (멜리소스 버전)
1. 무한하다 (경계 없음)
2. 하나다 (나눌 수 없음)
3. 물체가 아니다 (두께 없음)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의 구형을 해체했다. 구형은 유한하고, 경계가 있고, 물질적이다. 멜리소스의 존재는 무한하고, 경계가 없고, 비물질적이다. 이건 혁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슈가가 물었다.
“무슨 문제요?”
짜교수는 방패를 다시 들어 올렸다.
“멜리소스는 스승을 방어하려다가, 스승을 넘어섰다. 제논이 ‘운동은 불가능하다’라고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스승을 지켰다면, 멜리소스는 ‘존재는 무한하고 비물질적이다’라고 확장해서 스승을 초월했다. 이게 방패의 역설이다. 너무 강한 방패는 자기가 지키려던 것까지 바꿔버린다.”
RM이 정리했다.
“그러니까 제논은 파르메니데스를 지켰고,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를 업그레이드했다?”
짜교수가 웃었다.
“정확하다. 제논 = 방어, 멜리소스 = 확장. 둘 다 스승에게 충성했지만, 방식이 달랐다. 그리고 이 세 사람 — 파르메니데스, 제논, 멜리소스 — 이 엘레아학파를 완성했다.”
짜교수는 칠판에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오늘의 퀘스트
“너희 인생에서 ‘확장’의 경험을 하나 골라라. 처음에는 작고 유한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가 사라지고 무한해진 경험. 예를 들어, 처음 좋아했던 밴드가 점점 확장되어 이제는 음악 전체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또는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그 사랑이 확장되어 세상 전체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그걸 멜리소스의 무한 논증 구조로 설명해 봐라. ‘유한하면 경계 너머에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니까 무한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계를 설정하면 F 서버에 갇힌다. 피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민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예를 들면 이런 건가요? 처음엔 한 사람만 사랑했는데, 그 사람 너머에 ‘사랑하지 않는 영역’이 있으면 이상하니까,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거?”
짜교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지민, 방금 멜리소스를 완벽하게 번역했다. ‘사랑의 경계 너머에 사랑 아닌 것이 있으면, 그건 사랑이 유한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짜 사랑은 경계가 없어야 하니까, 무한해야 한다.’ 이게 멜리소스의 논리를 사랑에 적용한 거다.”
단톡방에는 [지민 = 무한 사랑의 철학자] 짤이 떠올랐다. 뷔가 거들었다.
“저는 사진이요. 처음엔 풍경만 찍었는데, 풍경 너머에 '안 찍는 영역'이 있으면 이상하니까, 결국 모든 걸 찍게 됐어요. 사람도 찍고, 그림자도 찍고, 빈 공간도 찍고. 이제는 카메라를 들면 세상 전체가 프레임이에요.”
짜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다. 확장의 논리는 이렇다. '만약 내가 A만 사랑한다면, A 너머에 사랑하지 않는 B가 있다. 그런데 B도 존재한다. 그럼 나는 왜 B를 사랑하지 않는가? 경계가 임의적이다. 따라서 사랑은 무한해야 한다.' 이게 멜리소스가 파르메니데스한테 한 질문이다.”
정국이 말했다.
“형들, 저는 운동이요. 처음엔 팔 운동만 했는데, 팔 너머에 ‘안 하는 근육’이 있으면 이상하니까, 결국 전신 운동하게 됐어요. 이제는 몸 전체가 프로젝트예요ㅋㅋ”
학생들이 웃었다. 슈가가 말했다.
“정국이 근육 = 무한 확장 서버ㅋㅋ”
강의실 불빛이 깜빡였다. 짜교수는 방패를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멈춰 서서, 학생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음 시간은 엘레아학파의 종착역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처음에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진리의 길 — 존재의 길. 다른 하나는 의견의 길 — 감각의 길.’”
칠판에 두 개의 화살표가 그려졌다.
Truth Server → Being (이성)
Opinion Server → Appearance (감각)
“우리는 지금까지 진리의 길을 걸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선언했고, 제논은 운동을 공격했으며, 멜리소스는 무한을 방패로 삼았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진리의 길만 옳다면, 의견의 길은 왜 존재하는가? 감각은 왜 우리를 속이는가? 우리는 왜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가?”
짜교수는 방패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두 길의 의미를 해체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대하여》에는 진리 편만 있는 게 아니다. 의견 편도 있다. 여신은 말했다. ‘의견도 배워야 한다. 다만 거기에는 참된 확신이 없다는 걸 알고서.’”
칠판에 마지막 문장이 적혔다.
우리는 왜 환영을 살아가는가?
“진리를 알면서도 왜 의견의 세계에 머무는가? 엘레아학파의 마지막 질문이다. 준비해라. 다음 시간엔 너희가 접속한 서버의 정체를 밝힌다. 피스!”
문이 닫혔다. 칠판의 점선 원은 여전히 사방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RM이 중얼거렸다.
“진리와 의견, 우리는 어느 쪽에 있는 거지?”
슈가가 답했다.
“아마 둘 다? 아니면 둘 다 아니거나.”
단톡방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음 회: 두 갈래 길의 서버 - 진리와 의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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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해설: 멜리소스의 무한 존재론
무한 논증의 구조
멜리소스의 핵심 논증은 놀랍도록 간결하다. “존재가 유한하다면, 그 경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만약 ‘없음(비존재)’이 있다면, 그것은 파르메니데스의 근본 전제(‘비존재는 없다’)와 모순된다. 따라서 존재는 무한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우주론적 주장이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더 철저하게 적용한 결과다.
구형에서 무한으로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사방으로 균등한 구형”이라고 묘사했다. 이것은 완전성과 자족성의 이미지다. 그런데 멜리소스는 이 이미지가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논리와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구형은 경계를 전제하고, 경계는 ‘안’과 ‘밖’을 구분하며, ‘밖’은 비존재를 의미한다. 그런데 비존재는 불가능하므로, 존재는 경계 없이 무한해야 한다.
비물질적 존재
멜리소스의 두 번째 혁신은 더욱 과격하다. “존재가 두께를 가진다면, 그것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부분으로 나뉘면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존재는 하나다(파르메니데스의 전제). 따라서 존재는 두께가 없어야 한다.” 이것은 존재론의 탈물질화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탈레스의 물,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이 모두 존재를 물질적인 것으로 상정했던 것과 달리, 멜리소스는 존재를 물질 ‘너머’로 밀어냈다.
플라톤으로 가는 길
멜리소스의 비물질적 무한 존재는, 한 세기 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다시 나타난다. 플라톤의 이데아 역시 감각으로 접근할 수 없고,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며, 이성으로만 파악된다. 차이가 있다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여럿’(각각의 형상들)이지만, 멜리소스의 존재는 여전히 ‘하나’라는 점이다. 그러나 “진짜 존재는 감각 세계 너머에 있다”는 통찰은 멜리소스에서 시작되어 플라톤을 거쳐 서양 형이상학의 골격이 되었다.
방패의 역설
본문에서 짜교수가 언급한 “방패의 역설”은 철학사의 중요한 패턴이다. 제논은 스승을 공격으로부터 방어했다(귀류법으로 반대자들을 논박). 멜리소스는 스승을 논리적 확장으로 방어했다(더 철저한 적용). 그런데 멜리소스의 방어는 결과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의 구형 이미지를 해체했다. 이것은 “충실한 계승이 창조적 배신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변증법적 발전을 보여준다.
다음 회 예고의 의미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대하여》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진리 편(Truth)과 의견 편(Opinion). 흥미로운 점은, 파르메니데스 자신이 의견 편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신은 “의견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왜? 이것이 14화의 핵심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진리를 알면서도 의견의 세계(감각, 변화, 운동)에서 살아가는가? 엘레아학파의 존재론이 실존의 문제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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