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0화. 밈학과 탈(脫) 필터링: 크세노파네스 서버
강의실 불빛이 갑자기 네온빛으로 깜빡였다. 학생들이 놀라 고개를 드는 순간, 짜교수가 등장했다. 이번엔 호랑이 무늬 네온 코트를 걸치고, 검은 선글라스 위에는 분홍색 헤드폰이 번쩍였다. 손에는 메가폰이 들려 있었는데, 마치 시위 현장의 선동가처럼 교실을 울렸다.
“오늘 수업은 밈학과 ‘탈(脫) 필터링’ 편이다. 신을 인간의 보정 앱으로 보지 마라. 본질은 기본 카메라 너머에 있다.”
칠판에는 굵은 글씨로 적혔다.
팩트 체크 = 크세노파네스 서버
짜교수는 메가폰을 탁탁 치며 이어갔다.
“오늘은 고대 그리스 최초의 ‘팩트 체크 봇’, 크세노파네스 형님을 소환한다. 그는 신이 인간처럼 생겼다고 주장하는 걸 극혐했지. 왜냐고? 그건 projection(투사)의 오류거든. 네가 만든 신은 결국 너의 셀카 보정 버전이라는 거다.”
짜교수는 칠판에 빠르게 적었다.
에티오피아인의 신 = 검은 피부
트라키아인의 신 = 금발 머리
한국인의 신 = V라인 턱
소가 그린 신 = 뿔 달린 신
“보이냐? 인스타 필터가 100개면, 신도 100개 버전이 나온다. 이게 바로 크세노파네스가 폭로한 거다. 인간은 자기 이미지로 신을 코스프레시킨다. 신은 보정도, 필터도, 셀카 각도도 초월하는데 말이지.”
정국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럼, 제 인스타 셀카도 우주의 왜곡입니까?”
짜교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우주의 JPEG 압축 오류다. 화질 깨진 셀카로 진리를 주장하지 마라. 크세노파네스가 봤으면 넌 바로 언팔이다.”
정국이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 셀카는 보정 안 한 건데…”
슈가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즉사시켰다.
“보정 안 해도 왜곡은 이미 들어가 있어. 카메라 렌즈 자체가 왜곡이거든. 광각이면 코가 커지고, 망원이면 얼굴이 납작해지지. 크세노파네스 식으로 말하면, 렌즈가 곧 문화야. 네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신의 얼굴이 바뀌는 거지.”
짜교수가 메가폰을 내려놓고 슈가를 가리켰다.
“야. 너 지금 수업 뺏으려고?”
“사실만 말한 겁니다.”
“… 인정. A+.”
뷔가 태블릿에서 뭔가를 검색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신은 인간의 이미지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우리가 만든 AI도 결국 우리를 닮는다는 뜻인가요? ChatGPT한테 ‘신을 그려줘’ 하면 서양에서는 흰 수염 노인이 나오고, 한국에서는…”
지민이 끼어들었다.
“산신령?”
“아니, 아이돌.”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짜교수가 메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웃기지? 근데 그게 정확히 크세노파네스의 포인트다. AI한테 ‘신을 그려줘’ 하면 뭐가 나오냐? 학습 데이터에 들어간 인간의 이미지가 나오지. AI의 신도 결국 인간 데이터의 보정 버전이야. 투사의 투사. 2차 왜곡이다.”
RM이 태블릿에 정리하며 말했다.
“그러면 크세노파네스의 비판은 단순히 ‘신은 인간과 다르다’가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하는 행위 자체에 왜곡이 내장되어 있다는 경고네요. 탈필터링이 곧 철학이다.”
짜교수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RM을 봤다.
“거기까지 읽었으면 됐다. 근데 문제는 이거야.”
그는 칠판에 큼지막하게 적었다. 그래서 필터 없는 인식이 가능하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짜교수가 천천히 말했다.
“크세노파네스 형님도 이건 장담 못 했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진리를 본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설령 누군가 완벽한 진리를 말한다 해도, 그 자신은 그것을 모를 것이다.’ 왜? 인간의 눈 자체가 필터니까. 필터를 통해 필터 없는 세상을 보겠다? 그건 선글라스 끼고 색을 맞추겠다는 소리야.”
짜교수는 자기 선글라스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서 탈필터링은 ‘필터를 벗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터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자각. 그게 크세노파네스가 남긴 서버의 핵심 코드야.”
슈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에 뭔가를 적었다. 뷔가 슬쩍 옆을 봤다.
“형, 뭐 적어?”
“가사.”
“… 지금?”
“이게 가사지 뭔데.”
짜교수가 메가폰을 높이 들었다.
“좋다. 이론은 여기까지. 이제 실전이다.”
그는 칠판을 지우고 새로 적었다.
[퀘스트: 투사 해부 실습]
“규칙은 간단하다. 너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또는 최애 아이돌의 사진을 하나 골라라. 그 사람이 ‘완벽’해 보이는 이유를, 네가 투사한 이상 3가지로 증명해라. 참고로 ‘원래 완벽함’이라고 쓰면 바로 F다. 3분 준다. 시작.”
강의실이 웅성거렸다.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정국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화면에는 근육질의 운동선수 사진이 떠 있었다.
“저는 이 사람이요. 완벽해 보이는 이유 세 가지. 첫째, 몸이 좋다. 둘째, 의지가 강해 보인다. 셋째, 성공했다.”
짜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투사 분석이 아니라 팬카페 소개글이야. 다시. ‘몸이 좋다’가 왜 너한테 완벽으로 보이는지를 파고들어.”
정국이 잠시 생각했다.
“… 제가 운동을 좋아하니까요.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라서?”
“거기다. 네가 그 사람한테서 보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네가 되고 싶은 너야. 크세노파네스가 말한 투사가 바로 이거다. 계속.”
정국이 눈을 껌뻑이며 다시 화면을 봤다.
“둘째, 의지가 강해 보인다… 이건 제가 의지가 약하다고 느끼니까 보이는 건가요?”
“오. 각성하는 거 봐. 투사는 항상 결핍에서 나온다. 네가 완벽하다고 느끼는 타인은, 네가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자신의 네거티브 필름이야.”
슈가가 끼어들었다.
“네거티브 필름이라… 원본을 반전시키면 내가 나오는 거네.”
짜교수가 손가락을 딱 쳤다.
“정확하다. 숭배의 구조를 뒤집으면, 네가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이 나온다.”
지민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의 화면에는 노을이 물든 바다 사진이 떠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저는… 사람 대신 이걸로 해도 되나요?”
짜교수가 눈썹을 올렸다.
“풍경 사진?”
“네. 이 사진이 완벽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첫째, 아무도 없어서요. 둘째, 시간이 멈춘 것 같아서요. 셋째, 보정 없이도 아름다워서요.”
강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짜교수가 메가폰을 내려놓았다.
“… 너 지금 투사 세 개를 완벽하게 말한 거 알아? ‘아무도 없다’는 건 네가 관계에서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거고, ‘시간이 멈췄다’는 건 네가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거고, ‘보정 없이 아름답다’는 건 네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다는 거야.”
지민이 멈칫했다. 단톡방에 올라온 짤은 이번엔 없었다. 대신 뷔가 지민의 어깨를 툭 쳤다.
“형, 괜찮아?”
“응. 그냥… 크세노파네스 형님 좀 무섭다.”
RM이 천천히 말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정확한 거지.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에 우리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거잖아. 풍경도, 음악도, 사람도.”
뷔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파이프 위에 ‘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적힌 이미지가 있었다.
“이것도 같은 맥락 아닌가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건 파이프의 이미지이지 파이프 자체가 아닌 것처럼, 우리가 숭배하는 건 신의 이미지이지 신 자체가 아니다?”
짜교수가 느릿느릿 박수를 쳤다.
“마그리트까지 끌고 왔네. 좋다. 근데 크세노파네스는 마그리트보다 2400년 먼저 그 말을 했어. 원조는 인정해 줘야지.”
슈가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러면 질문이 하나 남는데요.”
“뭐?”
“투사를 자각한다고 해서, 투사 없이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걸 안다고 해서 선글라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크세노파네스의 결론은 뭡니까? ‘어차피 필터 못 벗으니 포기해라’?”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짜교수도 잠시 메가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이다. 진짜로.”
메가폰 없이 맨 목소리로 말하는 짜교수는 처음이었다.
“크세노파네스의 답은 이거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추측은 할 수 있다.’ 필터를 벗을 수는 없지만, 필터를 바꿀 수는 있어. 더 정밀한 렌즈, 더 넓은 화각, 더 적은 왜곡. 완벽한 무보정은 불가능하지만, 보정의 층위를 하나씩 자각하고 걷어내는 과정 자체가 철학이야.”
그는 칠판을 가리켰다.
진짜 신 ≠ 너의 이상형
진짜 진리 ≠ 너의 comfort zone
진짜 퓌시스 ≠ 너의 필터
“그리고 이 과정은 끝이 없어. 필터를 하나 벗으면 그 아래 또 필터가 있거든. 양파 같은 거야. 근데 양파를 까다 보면 눈물이 나잖아? 철학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투사를 직면하면 아파. 아까 지민이처럼.”
지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국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면 교수님은 양파를 다 까본 적 있어요?”
“나? 나는 아직 껍질째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상태야.”
강의실이 터졌다. 짜교수는 다시 메가폰을 집어 들며 코트를 휘날렸다.
“좋다! 이 각성의 모멘텀을 가지고, 다음은 밈학과 사상 최대 난제로 간다.”
칠판을 지우고 새로 적었다.
Being = Server of Eternity
(변화 없음, 수정 불가, 영구 저장)
“파르메니데스 서버에 접속한다. 이 사람은 크세노파네스보다 더 미친 사람이야. 크세노파네스가 ‘네 필터를 의심하라’고 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필터가 보여주는 세상 전체가 가짜다’라고 선언했거든.”
학생들이 술렁였다. 짜교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진짜 존재가 ‘변하지 않는’ 거라면, 너희가 지금 느끼는 이 순간, 이 감정, 이 댓글 알림은 뭐냐? 전부 fake data냐?”
학생들이 숨을 죽였다.
“파르메니데스는 단언한다. ‘무(無)는 없다. 존재만 있다.’ 변화? 그건 너희 눈의 착시다. 코인 차트도, 학점도, 연애 감정도 다 서버 렌더링 오류다.”
RM이 손을 들었다.
“잠깐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한 투사 분석도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투사를 자각하든 못하든, 감각 세계 자체가 가짜라면?”
짜교수가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웃었다.
“거봐. 벌써 모순이 느껴지지? 크세노파네스는 ‘필터를 자각하라’고 했는데, 파르메니데스는 ‘필터 너머에 볼 게 없다’고 하잖아. 이 충돌을 어떻게 풀 것이냐. 그게 다음 시간이다.”
짜교수는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문을 열었다.
“준비해라. 다음 시간엔 ‘왜 세상은 변하는데, 진리는 변하지 않는가?’ 이 모순을 정면돌파한다. 밈학과의 정적 모드, 파르메니데스 서버다. 피스!”
문이 닫혔다. 강의실은 고요했다. 정국이 아까의 운동선수 사진을 다시 열었다가, 천천히 화면을 껐다.
“… 나 이 사람 닮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 사람한테서 나를 보고 있었던 건가.”
슈가가 노트북을 덮으며 답했다.
“그게 바로 투사의 함정이지. 신도, 아이돌도, 진리도. 전부 거울이야. 근데 거울인 줄 모르고 창문인 줄 아는 게 문제고.”
RM이 중얼거렸다.
“거울과 창문… 그러면 철학은 거울을 거울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건가.”
지민이 아까의 바다 사진을 다시 열었다. 노을빛 바다. 아무도 없는 해변. 멈춘 시간. 그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이 사진은 예쁜데.”
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필터인 줄 알면서도 예쁜 거잖아. 그게 더 솔직한 거 아니야?”
단톡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지민 감성 = RAW 파일. 단, 본인은 JPEG인 줄 모름]
그 아래로, 슈가가 조용히 한 줄을 더 올렸다.
[근데 RAW 파일도 결국 센서를 통과한 데이터임. 진짜 원본은 빛 그 자체.]
읽씹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다음 회: 존재의 서버 —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것’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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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해설: 크세노파네스의 신인동형론 비판
크세노파네스(기원전 570~475년경)는 소아시아 콜로폰 출신의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고대 그리스 종교의 핵심 전제를 정면으로 공격한 최초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가 겨냥한 것은 단순한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의 구조적 오류였다.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 비판: “셀카 보정 버전의 신”
본문에서 짜교수가 칠판에 적는 도식이 크세노파네스 철학의 핵심을 정확하게 압축한다.
에티오피아인의 신 = 검은 피부 / 트라키아인의 신 = 금발 머리 / 소가 그린 신 = 뿔 달린 신
이것은 크세노파네스의 실제 단편(DK 21 B15~16)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의 원문은 이렇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기들의 신이 납작한 코에 검은 피부라 하고, 트라키아인들은 푸른 눈에 붉은 머리카락이라 한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구절: “만약 소와 말과 사자가 손을 가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소는 소 모양의, 말은 말 모양의 신을 그렸을 것이다.”
짜교수가 이것을 “인스타 필터”와 “셀카 보정”으로 번역한 것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크세노파네스가 지적한 것은 투사(projection)라는 인식론적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경험의 틀 안에서만 초월적 대상을 상상할 수 있고, 그 결과 신은 언제나 숭배자의 거울상이 된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네가 만든 신은 결국 너의 셀카 보정 버전”인 것이다.
투사의 함정: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이 비판이 단순한 종교 풍자를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뷔의 질문(“우리가 만든 AI도 결국 우리를 닮는다는 뜻인가요?”)과 RM의 정리(“우리가 믿는 진리도 보정된 이미지일 수 있다”)가 그 확장을 보여준다.
크세노파네스의 논증 구조는 이렇다:
전제 1. 각 민족은 자기 모습을 닮은 신을 만든다.
전제 2. 이것은 신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투사를 반영한다.
결론. 따라서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중 상당수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인식 장치의 산물일 수 있다.
이 논증이 강력한 이유는, 신학에서 출발하지만 도달하는 곳이 인식론적 회의주의이기 때문이다. 크세노파네스는 실제로 이렇게도 말했다: “확실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설령 누군가 완벽한 진리를 말한다 해도, 그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 위에는 ‘의견(dokos)’이 짜여 있기 때문이다.”(DK 21 B34)
본문에서 짜교수가 칠판에 쓰는 마지막 세 줄이 이 지점을 집약한다.
진짜 신 ≠ 너의 이상형 / 진짜 진리 ≠ 너의 comfort zone / 진짜 퓌시스 ≠ 너의 필터
여기서 퓌시스(physis, 자연의 본성)가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크세노파네스는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 전통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들이 “물” “공기” “아페이론” 같은 단일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원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원리를 파악하는 인간 인식의 한계 자체였다.
“탈필터링”의 철학적 의미
본문의 핵심 키워드인 “탈(脫) 필터링”은 크세노파네스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개념이다. 필터란 인간이 실재에 덧씌우는 인식의 프레임, 즉 문화적 편향, 자기중심적 투사, 익숙함에 대한 집착을 총칭한다. 탈필터링이란 그 프레임의 존재를 자각하는 행위다.
다만 크세노파네스는 필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낙관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은 “필터 없는 인식은 불가능하지만, 필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가능하다”에 가깝다. 이것이 그를 단순한 상대주의자가 아닌, 비판적 합리주의의 선구자로 만든다. 칼 포퍼가 크세노파네스를 서양 합리주의 전통의 출발점으로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로의 다리
10화 후반부에서 짜교수가 예고하는 파르메니데스는 크세노파네스의 제자(혹은 사상적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크세노파네스가 “인간의 인식에는 필터가 있다”고 경고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필터가 보여주는 변화의 세계 전체가 거짓이다”라고 선언한다.
본문의 예고가 정확하게 짚는 지점이 이것이다: “만약 진짜 존재가 ‘변하지 않는’거라면, 너희가 지금 느끼는 이 순간, 이 감정, 이 댓글 알림은 뭐냐?” 크세노파네스가 투사의 오류를 폭로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감각 경험 전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올려놓는다. 필터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필터 너머의 실재가 감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급진적 주장으로의 도약. 이것이 다음 화가 “존재의 서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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