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과 문집에 실을 글을 좀 보내달라는 것이다. 휴학한 날 잊지 않고 연락해줘 고마웠다.
나이탓일게다. 나의 후배들에게 뭔가 재미있으면서도 공감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설프지만 웹소설 비슷한 B급 이야기 12화를 썼고....

철학과 폼 미쳤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1화: 새내기의 각성 - “성적 맞춰왔는데요?”
군산대학교 교정은 봄마다 벚꽃으로 ‘풀매수’ 상태가 된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이제 막 입학한 26학번 새내기들의 설렘을 감싸며, 에브리타임(에타)에서나 보던 낯선 얼굴들이 오프라인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순간을 ‘뽀샵’처럼 부드럽게 덮어준다. 하지만 인문학관 2층 2224호 강의실의 분위기는 벚꽃 같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야, 진짜 솔직하게 말해봐. 철학과 지원한 거 아니지?”
“인정. 나 수능 성적표 보고 3초 만에 결정함. 과 이름은 좀 간지 나잖아.”
“ㅇㅈ(인정). 근데 우리 과 취업률 보면 진심 멘붕옴.”
새내기 오픈채팅방은 입학 전부터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철학과 26학번 단톡방 공지사항은 “우리 과 졸업생 중 철학 관련 직종 취업률 3.7%”라는 충격적인 팩트로 시작한다. 댓글창은 난리다.
“이거 레전드 억까 아님?”
“선배님들 다 뭐하고 사세요 ㅠㅠ”
“공시 말고 답 있음?”
그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몇몇은 나름의 이유로 이곳에 앉아 있다.
재희는 카페 알바 중 진상 손님을 만날 때마다 “이것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아포리아(Aporia)인가”라고 자문하는 철학적 과몰입러다. 어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음 적게, 샷 추가, 연하게”를 주문한 손님에게 “그건 모순 아니냐”고 진지하게 반박했다가 컴플레인 받았다. 사장님한테 혼나면서도 “나는 논리적 오류를 지적했을 뿐”이라며 당당했다. 그의 책상 위엔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존재란 무엇인가”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왜 아아는 500원이 더 비싼가?”
옆자리 애들은 그를 보며 “쟤 진심 찐이네”라고 수군댄다.
민수는 23학번 복학생으로, 전공 서적 밑에 공무원 시험 요약집을 숨겨둔 현실주의자다. 군대에서 2년간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철학 학점 4.5 찍고 행시 준비하는 게 최고의 가성비라고 믿는다.
수진은 민수의 과 CC로, 릴스를 내리다 말고 한숨을 쉰다.
“철학과 나온 사람이 뭐 먹고 사냐?”
엄마의 카톡이 하루에 세 번씩 온다. 그녀의 인스타 스토리는 “#군산대 #철학과 #그래도행복 #진심아님”으로 도배되어 있다.
지훈이는 입결 상승의 희생양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안정이었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재수는 싫고, 그렇다고 다시 수능 볼 용기도 없어서 결국 “에잇, 철학이나 해보자”며 입학했다. 지금은 에타에 “철학과 편입 난이도” 검색 기록을 남기는 중이다.
서연이는 유일하게 자발적 지원자다. 고3 때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이게 바로 내 인생”이라며 감명받았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니 주변 애들이 다 “성적 맞춰왔다”고 하는 바람에 본인만 이상한 사람 된 기분이다.
첫 수업 시작 5분 전. 강의실은 좌석의 60%만 차 있다. 뒷자리 애들은 이미 이어폰 꽂고 유튜브 쇼츠에 빠져 있고, 앞자리는 공시생 스터디 그룹이 점령했다. 뒷자리엔 “오늘 출첵만 하고 튀면 되지?”라며 웃는 무리가 보인다.
“똑. 똑. 똑.”
강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교수님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내가 바로 짜라투스트라다!”
???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60대로 보이는 노인. 빈티지 구제 코트에 긴 백발, 그리고 눈빛만큼은 20대처럼 번뜩인다. 학생들은 순간 멈칫한다. 이게 뭐지? 행위예술? 유튜브 몰카?
“산에서 10년을 내려와 너희에게 ‘갓생’ 사는 법을 전하러 왔다. 그런데 보니 너희 모두 동굴 속에 갇혀 있구나!”
“ㅋㅋㅋㅋㅋ 이 양반 누구야?”
“교수님 아님? 근데 컨셉 뭐냐”
“에타에 올려야 되는데”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짜라투스트라가 릴스 보던 학생 앞으로 성큼 다가간다.
“자네! 지금 플라톤의 동굴 속에 갇혀 있다!”
“……네?”
“15초짜리 가짜 쾌락인 숏폼 그림자를 실체라고 착각하지 마라. 동굴 밖으로 나와 눈부신 현생의 햇살을 마주하라!”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 노인은 진심이다.
2화: 신은 죽었고, 학자금 대출은 살아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교탁에 올라간다. (학생들: “헐 위험한데”) 그리곤 천천히 강의실을 둘러본다.
“신은 죽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학생들은 시큰둥하다. 철학과 애들이면 다 아는 니체의 명언 아닌가.
“하지만!”
짜라투스트라가 목소리를 높인다.
“너희의 학자금 대출은 살아 있다. 너희의 취업 걱정은 살아 있다. 너희 부모님의 눈치는 살아 있다. 그리고 너희가 에타에 올린 ‘문송합니다’ 자학 밈도 살아 있다!”
“아 ㅅㅂ 이거 팩폭인데요?”
“진짜 찔리네…… ”
재희가 손을 든다.
“그럼 교수님, 우리 뭐 하러 철학과 온 건가요?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짜라투스트라가 빙그레 웃는다.
“좋은 질문이다. 너희 중 몇이나 철학이 좋아서 왔나?”
서연이만 손을 든다. 나머지는 다 고개를 숙인다.
“성적 맞춰왔다고 자책하지 마라. 인생 자체가 성적표에 맞춘 영원회귀 아니더냐?”
“영원회귀가 뭔데요?”
“같은 일이 영원히 반복되는 거다. 너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 보고, 중학교 때 시험 보고, 고등학교 때 시험 보고, 수능 보고, 대학 와서도 시험 본다. 졸업하면? 취업 시험, 승진 시험, 결혼 시험, 육아 시험……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답 노트’란 말이다!”
강의실이 술렁인다. 너무 리얼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그럼 우린 평생 이 굴레에서 못 벗어나요?”
짜라투스트라가 고개를 젓는다.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태도를 바꿀 순 있다. 이 무게를 ‘오히려 좋아’라며 긍정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초인의 길이다.”
“초인? 슈퍼맨 같은 거요?”
“아니다. 초인은 자기 인생의 무게를 사랑할 줄 아는 자다. 학자금 대출 천만 원? 좋아, 이것도 내 인생의 일부다. 취업 안 됨? 좋아, 그럼 다른 길을 찾아본다. 부모님 잔소리? 좋아, 사랑의 표현이라고 긍정한다. 이게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다!”
지훈이가 중얼거린다.
“그래도 취업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님?”
짜라투스트라가 그를 똑바로 쳐다본다.
“취업이 목표면 공대 갔어야지. 넌 이미 철학과에 왔다. 후회할 거면 지금 자퇴해라. 남을 거면 이 선택을 사랑해라. 그게 전부다.”
3화: 과 CC의 비극 - “우리 사귀는 게 맞아?”
민수와 수진을 보던 짜라투스트라가 빙긋 웃는다.
“저기 뒷자리에 앉은 커플. 너희, 사귄 지 얼마나 됐나?”
민수와 수진이 화들짝 놀란다. 어떻게 알았지?
“3개월이요…… ”
“고독을 피하려 서로를 도피처로 삼은 자들이여!”
“????”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외로움을 두려워할 뿐이다. 복학생 남자는 ‘나이 먹기 전에 연애라도’라는 초조함으로, 여자는 ‘혼자 밥 먹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만났다. 이게 사랑인가, 아니면 상호 의존인가?”
수진의 얼굴이 빨개진다.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 진짜 좋아해서…… ”
“그럼 물어본다. 상대방이 없어도 너희는 행복한가? 혼자 밥 먹어도, 혼자 영화 봐도, 혼자 주말을 보내도 괜찮은가?”
민수와 수진이 말을 못 한다.
“사랑은 두 개의 완전한 고독이 만나는 것이다. 니체가 아니라 릴케가 한 말이긴 하지만. 너희는 먼저 혼자 서는 법을 배워라. 그런 다음에 사랑해라. 지금 너희의 관계는…… 데이트 통장 잔고의 죽음을 애도해야 할 것이다.”
뒷자리에서 “오 이거 띵언(명언)인데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수진은 민수를 째려보고, 민수는 핸드폰만 본다. 공기가 차갑다.
수업이 끝나고 민수와 수진은 학교 뒤 카페로 갔다. 평소처럼 마주 앉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저거…… 진짜였어? 우리가 외로워서 만난 거?”
수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민수는 핸드폰만 본다.
“아니…… 뭐…… 그건 아니고…… ”
“너 지금 확신 없잖아.”
침묵. 아메리카노 빨대 빠는 소리만 들린다.
“일주일만 연락 안 하자. 교수님 말대로 혼자 좀 있어보자.”
“…… 그래.”
수진이 일어선다. 민수는 앉아있다.
“이거…… 헤어지는 거 아니지?”
민수가 물었지만, 수진은 이미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그날 저녁, 과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오늘 강의 레전드였음 ㅋㅋㅋㅋ”
“민수 수진 커플 저격당함 ㄹㅇ”
“교수님 누군데 저렇게 팩폭을 잘하심?”
“근데 짜라투스트라가 진짜 교수님 이름임? 예명?”
4화: AI 시대의 철학 - “가성비 없는 학문의 존엄”
한 학생이 용기 내서 질문한다.
“교수님, 솔직히 가성비가 너무 떨어집니다. ChatGPT가 1초 만에 정답 내놓는 시대에, 저희가 4년 동안 철학 공부해서 뭐 하나요? 생존 가능한가요?”
강의실이 조용해진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창밖을 가리킨다. 낡은 벤치에 학생 한 명이 라면을 먹고 있다.
“철학은 저 라면 속에 있다.”
“……네?”
“철학은 거창한 게 아니다. 너희의 다크서클 속에 있고, 샷 추가한 아아 속에 있고, 밤 12시에 편의점에서 사 먹는 삼각김밥 속에 있다. AI는 ‘라면은 밀가루와 물로 만든 면 요리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새벽 3시에 혼자 먹는 라면이 왜 이렇게 슬픈가’를 모른다.”
학생들이 집중하기 시작한다.
“AI는 정답을 복제한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왜?’라고 묻는 것은 인간뿐이다. 가성비 없는 인간의 고귀함을 증명하는 것, 그게 너희의 숙명이다.”
재희가 묻는다.
“럼 교수님, ChatGPT로 레포트 쓰는 건 안 되는 건가요?”
“쓰고 싶으면 써라. 하지만 그 레포트에는 너의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기계가 쓴 문장은 완벽하지만 영혼이 없다. 너의 문장은 투박해도 너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다. 넌 무엇을 선택할 건가?”
재희가 입술을 깨문다.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너희 중 대부분은 졸업 후 철학과 무관한 일을 할 것이다. 치킨집 할 수도, 공무원 될 수도, 유튜버 할 수도 있다. 그게 실패인가? 아니다. 철학은 직업이 아니라 태도다. 치킨을 튀기면서도 ‘왜 나는 치킨을 튀기는가’를 묻는 자, 그가 진짜 철학자다.”
“오 이거 ㄹㅇ”
“교수님 간지 무엇”
5화: 시시포스의 에타 - 레포트가 날아간 날
기말고사 기간이다. 강의실은 완전히 ‘시시포스의 에타(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 Everytime)’가 된다. 모두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듯 과제를 쓰고, 시험공부를 하고, 학점을 챙긴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면?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다음 학기가 시작된다.
민수는 새벽 4시까지 레포트를 썼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이 현대사회에 주는 함의”
거창한 제목으로 A4 12장을 채웠다. 그러나 저장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프로그램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민수의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아니…… 아니야…… 제발…… ”
마우스를 미친 듯이 클릭한다. 작업 관리자를 켠다. 강제 종료 버튼이 보인다. 누르면 끝이다. 안 누르면? 그냥 멈춰있을 뿐이다.
클릭.
워드가 꺼진다. 다시 켠다. “복구할 문서가 없습니다.”
12장.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쓴 12장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민수는 키보드에 이마를 박는다. 욕이 나오려다가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하…… ”
에타를 켠다. 익명 게시판에 이렇게 쓴다.
“철학과 탈출은 지능 순인 듯. 나 같은 병신은 평생 여기 갇혀 사는 거임?”
업로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다.”
민수가 뒤를 돌아본다. 짜라투스트라가 서 있다.
“교수님…… 어떻게 여기를……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너는 지금 좌절했지만, 이미 12장을 쓸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레포트가 날아간 건 불운이지만, 너의 사유는 날아가지 않았다. 다시 써라. 더 좋은 글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흑흑”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시시포스는 영원히 바위를 밀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왜? 그 바위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에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너만의 바위를 미는 숭고한 저항이다.”
민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빈 워드 창을 연다.
“ㅅㅂ…… 다시 쓴다…… ”
6화: 테세우스의 과잠 - “자소서 속의 나는 진짜 나인가?”
수진은 대기업 인턴 자소서를 쓰고 있다.
“저는 도전정신이 강하고, 팀워크를 중시하며,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인재입니다.”
거짓말이다. 수진은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팀플은 지옥이며, 문제가 생기면 일단 회피한다.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건 이런 인재상이니까, 자신을 깎아내고 다듬는다. 성격도, 경험도, 심지어 취미까지 모두 ‘채용 공고에 맞춰’ 변형시킨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 떠오른다. 배의 부품을 하나씩 전부 교체하면, 그건 여전히 같은 배인가? 수진은 자소서를 쓸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날 밤, 수진은 짜라투스트라를 찾아간다.
“교수님, 자소서 속의 제가 진짜 저인가요? 전공 학점만 남은 껍데기인가요?”
짜라투스트라가 수진의 과잠을 가리킨다. 3년 입은 과잠은 로고가 거의 지워졌고, 소매는 헤져 있다.
“이 과잠은 여전히 너의 과잠인가?”
“당연하죠.”
“왜?”
“제가 입었으니까요. 3년 동안 수업 듣고, 과 MT 가고, 시험공부하면서 입었으니까요.”
“맞다. 과잠의 로고가 지워지고 소매가 헤져도, 그 옷을 입고 밤새 고뇌했던 너의 기억이 배의 돛을 지탱한다. 너의 본질은 부품의 합이 아니라 너만의 서사 그 자체다.”
“그럼 자소서는…… ”
“자소서는 너의 일부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춘 너도 진짜 너고, 혼자 라면 먹으며 우는 너도 진짜 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원래 모순 덩어리다. 그 모순을 부정하지 말고 안아라.”
수진이 울먹인다.
“교수님, 저 진짜 취업 못 하면 어떡해요?”
“못 하면 어때.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중요한 건 ‘취업’이 아니라 ‘너답게 사는 것’이다. 물론 돈도 중요하지. 하지만 돈만 쫓다가 너를 잃어버리면, 그게 진짜 실패다.”
7화: 악마의 유혹 - “AI vs 인간의 피”
재희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카페 알바 후 새벽 2시. 과제 마감은 아침 9시. 도저히 쓸 기력이 없다. ChatGPT를 켠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을 3000자로 요약하고, 현대사회에 적용 가능한 사례 3가지를 제시해 줘.”
1초 만에 완벽한 답이 나온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라, 자기 극복과 창조적 긍정의 의지를 의미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
완벽하다. 문장도 매끄럽고, 논리도 탄탄하고, 레퍼런스도 정확하다. 재희가 3시간 고민해서 쓸 것보다 100배 낫다. 손가락이 Ctrl+C 위에 올라간다. 복사. 워드 창으로 이동. 붙여넣기 단축키 Ctrl+V 위에 손가락이 멈춘다.
창밖을 본다. 새벽 2시 30분. 편의점 불빛이 보인다. 저기서 아아 사 먹으며 밤새 레포트 쓰는 애들이 있을 거다. 투박하게, 느리게, 오타 내가며. 그 순간, 짜라투스트라가 환각처럼 나타난다.
“기계가 쓴 문장에는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교수님…… ”
“너의 문장은 투박하다. 오타도 있고, 논리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너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다. 너는 기계의 부속품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인간인가?”
재희는 한참을 고민한다. 결국 AI 창을 끈다.
“……아 진짜.”
비틀거리는 손가락으로 자기만의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말했다. 근데 나는 지금 커피에의 의지밖에 없다. 새벽 2시, 편의점 아아를 마시며 과제를 쓰는 이 순간도 어쩌면 힘에의 의지일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투박해도, 이건 내 거다.”
교수님은 B+를 줬다. 하지만 재희는 만족한다. 이건 진짜 자기 글이니까.
8화: 영원회귀의 밤 - “이 시험을 다시 봐도 웃을 수 있는가?”
여름. 도서관은 24시간 ‘풀가동’ 중이다. 재희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한숨을 쉰다.
“이 시험…… 영원회귀인가 봐…… ”
중간고사, 기말고사, 다시 중간고사, 다시 기말고사. 끝이 없다. 짜라투스트라가 속삭인다.
“영원회귀를 무지성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묻겠다. 만약 너의 인생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살 수 있겠는가?”
“…… 싫은데요?”
“그럼 바꿔라. 지금 이 순간을 나중에 다시 살아도 후회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라. 같은 시험지를 다시 받아도 웃을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초인의 폼이다. 폼생폼사, 철학도의 자세다.”
재희는 울면서도 아이패드를 켠다.
“ㅅㅂ…… 그럼 이번엔 제대로 해본다…… ”
그는 이미 초인의 트랙 위에 서 있다.
9화: 재희의 AI 전쟁 2라운드 - “프롬프트 장인의 탄생”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재희는 1학기 내내 AI를 거부하며 순수 인간의 힘으로 레포트를 썼다. 하지만 주변을 보니, 모두가 ChatGPT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교수들도 “AI 시대에 맞는 비판적 사고력”을 강조하며 “AI 활용은 OK, 단 출처만 밝혀라”는 공지를 내렸다.
“이게 뭐야? 내가 바보였나?”
재희는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만 피 말리며 글 쓰고 있을 때, 애들은 AI로 A+ 받고 있었던 거다.
“좋아, 나도 쓴다. 근데 제대로 쓴다.”
재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미친 듯이 파고든다. 유튜브에서 “프롬프트 잘 쓰는 법” 영상을 10개 넘게 본다. 레딧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첫 시도: “니체 사상 요약해 줘” → 결과: 교과서 수준. 2점
두 번째 시도: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대학 2학년이 이해할 수 있게 3000자로 설명하되, 현대 사례 3개를 포함해 줘” → 결과: 괜찮은데 뭔가 2% 부족. 5점
세 번째 시도: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니체 사상이 어떻게 오용되었는지, 당대 신문 사설의 논조를 분석하며 3000자로 서술해 줘. 단, 학술논문 톤으로, 각주 포함.” → 결과: 오…… 이거다. 8점
“오…… 이거 ㅆㅅㅌㅊ(씹상타치)인데?”
프롬프트가 길어질수록 결과물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A+ 받았다. 교수님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다.
재희는 자신이 쓴 AI 레포트와 손으로 쓴 레포트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AI 버전]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은 시간의 선형성을 거부하고 순환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진보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 비판으로 기능한다…… ”
[인간 버전]
“니체는 시간이 돌고 돈다고 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야근하고, 집 와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이게 영원회귀 아닌가?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
AI 버전은 완벽하다. 하지만 감정이 없다. 인간 버전은 투박하다. 하지만 살아있다. 짜라투스트라가 나타난다.
“AI는 너의 적이 아니다. 도구다.”
“교수님, 근데 이 도구가 저보다 잘 쓰는데요?”
“망치가 너보다 못을 잘 박는다고 해서, 망치가 목수보다 위대한가?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AI는 실행하지만, 방향은 네가 정한다.”
“그럼 어떻게 써야 돼요?”
“AI에게 답을 구하지 말고, 질문의 재료를 구해라. AI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너만의 질문'을 만들어라. 그게 진짜 AI 시대의 철학자다.”
재희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AI에게 니체 사상의 팩트를 요청한다. AI에게 반박 논리도 요청한다. 그 둘을 종합해서 자신만의 질문을 만든다.
“만약 니체가 2026년 한국 청년이었다면, 영원회귀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AI가 줄 수 없다. 재희는 직접 쓴다.
“니체가 2006년에 태어났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희는 매일 아침 출근 지옥철을 타지만, 그 지옥을 사랑할 수 있는가? 똑같은 월요일이 영원히 반복된다 해도, 너는 웃을 수 있는가?’ 영원회귀는 공포가 아니라 시험이다.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살아도 후회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사는가?”
교수는 A+를 줬다. 그리고 코멘트를 남겼다.
“AI를 쓴 건 알지만, 네 목소리가 들린다. 잘했다.”
재희는 AI가 적도 신도 아닌 그저 도구이며, 중요한 건 그것으로 무엇을 만드느냐는 것임을 깨달았다.
10화: 지훈이의 편입 vs 철학 갈등 - “도망칠 곳은 없다”
지훈이는 1학기 내내 편입 준비를 했다. 에타 편입 게시판을 매일 들락날락하며 “경영학과 편입 후기”, “철학과 탈출 성공”, “문과 편입 현실” 같은 글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편입학원 상담도 다녀왔다.
“철학과요? 음…… 솔직히 말하면 경쟁력이 없어요. 차라리 경영, 경제 쪽으로 가세요.”
지훈이는 학원비 200만 원을 결제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서 전공책을 읽는다. 철학 수업은 최소 학점만 채우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편입 준비에 쏟는다.
“1년만 참자. 1년 뒤엔 경영학과 27학번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철학 수업이 재미있다. 특히 짜라투스트라의 강의는 중독성이 있었다. 지훈이는 “어차피 편입할 건데 뭐”라며 대충 들으려 했지만, 어느새 필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ㅅㅂ 집중하지 마…… 이거 내 전공 아니야…… ”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짜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말할 때, 지훈이는 “그럼 우리는 뭘 믿고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영원회귀”를 배울 때는 자신의 편입 준비가 떠올랐다. ‘만약 편입에 실패하면?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실패하면? 또 1년…… 이게 영원회귀 아닌가?’
어느 날, 편입학원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상위 60%다.
“망했다…… ”
이 성적으로는 경영학과는커녕 웬만한 과도 불가능하다. 지훈이는 절망한다. 철학과도 싫고, 편입도 안 되고.
“나 뭐 하는 거지?”
그날 밤, 술을 마시며 에타에 익명 글을 올린다.
“철학과 1년 다녔는데 편입 준비하다가 망함. 이도 저도 아닌 인생 어떻게 해야 됨?”
댓글이 달린다.
“편입 포기하고 복수전공 ㄱㄱ”
“ㅇㅈ 철학+경영 복전하면 차별화 됨”
“근데 솔직히 복전해도 취업 힘듦”
“그냥 공무원 ㄱ”
더 혼란스러워진다. 다음날, 짜라투스트라가 지훈이를 부른다.
“넌 지금 도망치려 하고 있다.”
“…… 무슨 말씀이세요?”
“철학과가 싫어서 편입하는 게 아니다. 네 선택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거다. 편입하면 뭐가 달라지나? 경영학과 가서 또 '회계학 너무 어려워, 차라리 경제학과 갈걸'이라고 후회할 거다.”
“하지만 철학은 취업이…… ”
“취업이 전부인가? 묻겠다. 넌 지금 진짜로 경영학이 하고 싶은가, 아니면 ‘취업 잘 되는 학과’가 하고 싶은가?”
지훈이는 대답을 못 한다.
“도망칠 곳은 없다. 어디를 가든 결국 너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중요한 건 ‘어느 과’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다.”
“그럼…… 저는?”
“네가 정해라. 하지만 정하고 나면 후회하지 마라. 편입을 선택하든, 철학과를 선택하든, 그 선택을 사랑해라. 그게 ‘아모르 파티’다.”
지훈이는 일주일 동안 고민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편입은 포기한다. 대신 철학+경영 복수전공 한다.”
완벽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지훈이만의 선택이다. 에타에 글을 올린다.
“편입 포기했음. 철학과 계속 다님. 후회 안 함. 아니 사실 좀 함 ㅋㅋ 근데 뭐 어쩌겠음.”
댓글이 달린다.
“ㅇㅈ 편입은 도피임”
“현타 올 때마다 이 글 보러 올게”
11화: 서연이의 “나만 찐이야?” 고독 - “고독한 자여, 환영한다”
서연이는 고3 때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이게 바로 내 인생”이라며 철학과에 왔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니 주변은 전부 “성적 맞춰왔다”는 애들뿐이었다.
OT 때 자기소개 시간이다.
“저는 사르트르를 좋아해서 철학과에 왔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오…… 대단하다…… ”
“찐이네 ㄹㅇ”
“우리 과에 이런 애도 있구나”
서연이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뭔가 미묘하게 ‘외계인’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과 단톡방에서도 서연이는 혼자다. 애들은 “오늘 출첵만 하고 튀자”, “과제 베끼기 ㄱ?”, “이번 학기 꿀강 추천” 같은 얘기만 한다. 서연이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읽음 15명]”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서연이는 점점 고독해진다. ‘나만 이상한 건가? 철학과 왔으면 다들 철학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는다. 과 애들은 다 같이 학식을 먹으러 가지만, 서연이만 빠진다. 왜냐하면 대화 주제가 안 맞으니까.
“야 어제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ㅆㅅㅌㅊ”
“ㄹㅇ 남주 개잘생김!”
“릴스 봤어? 요즘 ○○ 챌린지 핫하던데”
서연이는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다. ‘나는…… 어제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는데…… ’ 말할 수가 없다. 분위기 깨는 것 같아서.
어느 날, 과 CC인 민수와 수진이 서연이에게 다가온다.
“야 서연아, 너 왜 맨날 혼자 있어? 우리랑 놀자.”
“아…… 괜찮아요.”
“에이 왜~ 같은 과인데. 내일 과 MT 가는데 너도 가자.”
서연이는 고민한다. 가고 싶긴 한데…… 과 MT 가면 술 게임하고, 노래방 가고, 그런 거 하잖아. 철학 얘기는 안 하겠지. 결국 안 간다.
다음날, 과 단톡방은 MT 인증샷으로 난리다. 서연이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나…… 왜 이렇게 외로운 거지?’
짜라투스트라가 나타난다.
“독한 자여, 환영한다.”
“교수님…… ”
“넌 지금 니체가 말한 ‘고귀한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하지만 너무 외로워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상한 게 아니다. 남들과 다른 것뿐이다. 사자는 양 떼와 어울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자가 양이 되어야 하는가?”
“그럼 저는 평생 혼자인가요?”
“아니다. 언젠가 너와 같은 주파수를 가진 자를 만날 것이다. 그 전까지는 고독을 견뎌라. 고독은 너를 단련시킨다.”
“고독이…… 좋은 건가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필요한 거다. 진정한 사유는 군중 속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탄생한다. 너는 지금 철학자가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서연이는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는다. 옆 테이블에서는 재희가 AI와 씨름하고 있다. 서연이가 말을 건다.
“저기…… 혹시 니체 읽어봤어요?”
재희가 고개를 든다.
“어…… 조금?”
“저는 요즘 <선악의 저편> 읽고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요. 혹시 같이 스터디 할래요?”
재희의 눈이 반짝인다.
“오…… 좋아요! 저도 혼자 읽기 힘들었거든요.”
둘은 ‘철학 찐텐 스터디’를 만든다. 처음엔 둘뿐이었지만, 점점 사람이 모인다. 성적 맞춰 왔지만 막상 공부하니 재미있어진 애들, 편입 준비하다가 철학에 빠진 애들이다. 서연이는 깨닫는다.
‘나만 찐이 아니었구나.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찐이 되어가고 있었어.’
12화: 짜라투스트라의 정체 - “나는 너희의 거울이다”
학기말, 마지막 강의 날이다. 학생들은 궁금했다. 짜라투스트라는 대체 누구인가? 재희가 용기 내서 묻는다.
“교수님, 솔직히 궁금한 게 있어요. 교수님 본명이 뭐예요? 그리고 왜 짜라투스트라라고 하세요?”
짜라투스트라가 빙그레 웃는다.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에이~ 알려주세요.”
“좋다. 그럼 너희에게 진실을 말해주겠다.”
강의실이 조용해진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
“나는 너희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너희의 고민, 너희의 질문, 너희의 갈등이 나를 소환했다. 나는 너희의 거울이다.”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무슨 소리예요? 교수님 지금 여기 계시잖아요.”
짜라투스트라가 칠판에 쓴다.
“신은 죽었다. 하지만 너희는 여전히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촉매일 뿐이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미 너희 안에 있다.”
그는 강단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학생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춘다.
“내가 너희 앞에 서 있는 이유는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나는 단지 너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너희가 불안해하는 모습, 웃으며 버티는 모습,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투박한 몸짓들, 그것이 곧 철학이다.”
“그럼, 교수님은…… 진짜 철학과 교수님이 아니에요?”
“나는 군산대 철학과 시간강사 공철학이다. 62세. 20년간 이 자리에서 강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짜라투스트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너희가 나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서연이가 묻는다.
“그럼 처음에 ‘산에서 내려왔다’는 건?”
“비유다. 나는 20년 전 이 강단에 섰을 때, 너희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철학이 뭐 먹여 살리나? 이거 해서 뭐 하나?’ 하지만 20년을 버텼다. 그게 나만의 산에서 내려온 것이다.”
지훈이가 묻는다.
“교수님은 후회 안 하세요? 철학 하신 거?” 공철학(짜라투스트라)이 잠시 침묵한다.
“매일 후회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나’ 싶다. 월급은 적고, 사회적 인정도 없고, 제자들은 졸업하면 연락도 안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사랑한다. 왜? 이게 내 길이니까. 후회와 사랑은 공존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그는 칠판을 툭툭 치며 말을 잇는다.
“학자금 대출, 취업 걱정, 인간관계의 불안, AI 시대의 혼란…… 너희가 매일 겪는 고민은 결코 사소한 게 아니다. 그것은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무게이며,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의 불안이다. 철학은 먼 고전 속에만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재희가 묻는다.
“교수님, 그럼, 초인은 뭐예요? 교수님이 초인이에요?”
“초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려는 존재다. 나는 여전히 초인을 향해 가는 중이다. 62세 노인이지만, 아직도 매일 배운다. 그러니 너희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철학과 학생들의 고민은 곧 철학 그 자체다. 너희의 불안은 질문이 되고, 너희의 눈물은 사유가 되고, 너희의 웃음은 긍정이 된다. 철학은 책 속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철학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민수가 묻는다.
“교수님, 저희한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말씀 있으세요?”
짜라투스트라(공철학)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쓴다.
“되어라(Become). 초인이 되려 하지 마라. 그냥 ‘되어라’.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라. 어제의 너보다 나은 오늘의 너, 오늘의 너보다 나은 내일의 너. 그게 전부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서연이가 다가와 묻는다.
“교수님, 다음 학기에도 강의하세요?”
“아니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다. 나는 은퇴한다.”
“헐…… 진짜요?”
“20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너희 차례다.”
재희가 묻는다.
“은퇴하시면 뭐 하실 거예요?”
“산에 간다.”
“……설마 진짜로요?”
“응. 지리산 자락에 작은 집을 샀다. 거기서 책 읽고, 산책하고, 그렇게 살 거다. 고독하겠지만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책이 있고, 생각이 있고, 20년간 가르친 너희가 있다.”
에필로그: 1년 후
재희는 AI와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AI를 활용한 철학 교육 플랫폼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구독자가 5만 명을 넘었다. 여전히 카페 알바를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나의 힘에의 의지”라며 웃는다.
지훈이는 철학+경영 복수전공을 하며 나름의 길을 찾았다.
“철학으로 생각하고, 경영으로 실행한다”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스타트업 창업 동아리에서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팀원들을 당황시키지만, 덕분에 사업 방향성이 명확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서연이는 철학 찐텐 스터디를 학회로 발전시켰다.
‘군산대 니체 읽기 모임’은 이제 타과생들도 참여할 만큼 커졌다. 서연이는 여전히 고독하지만, 이제는 그 고독을 사랑한다. “고독은 나를 단련시킨다”는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되뇌며.
민수와 수진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 짜라투스트라의 “먼저 혼자 서는 법을 배워라”는 조언을 따라 3개월간 연락을 끊었다. 그 시간 동안 각자 자기 자신과 마주했고, 이제는 ‘의존’이 아닌 ‘사랑’으로 만난다. 여전히 티격태격하지만, 예전보다 건강한 관계다.
[1년 후, 지리산 자락]
공철학(前 짜라투스트라)는 작은 오두막에서 차를 마신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고요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학생들이 보낸 편지가 쌓여 있다.
“교수님, 저 AI 스타트업 취업했어요. 교수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 재희”
“교수님, 편입 포기하고 복전 선택한 거 후회 안 해요. 제 길을 찾았습니다. - 지훈”
“교수님, 고독이 무섭지 않아졌어요. 이제는 오히려 좋아합니다. - 서연”
공철학이 빙그레 웃는다. 그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린다.
“신은 죽었지만, 너희는 살아있구나.”
그리고 다시 책을 편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년을 가르쳤지만, 아직도 매번 새롭다.
[2027년, 군산대학교 철학과]
새로운 교수가 부임했다. 젊은 여교수. 30대 초반이다. 첫 강의 날, 학생들이 수군댄다.
“작년 짜라투스트라 교수님 어디 갔대?”
“은퇴했대”
“헐, 대박…… 레전드였는데”
새 교수가 교단에 선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학기 담당 교수 박소피아입니다.”
학생들이 시큰둥하다. 짜라투스트라만큼 카리스마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박소피아가 말한다.
“저도 이 자리에 10년 전 학생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공철학 교수님 수업을 들었죠.”
학생들이 눈을 반짝인다.
“교수님께서 제게 물으셨어요. ‘넌 왜 철학을 하느냐?’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 돌아왔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칠판에 쓴다.
“너는 왜 여기 있는가?”
강의실이 조용해진다. 한 학생이 손을 든다.
“교수님, 저는 성적 맞춰서 왔는데요…… ”
박소피아가 웃는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 선택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봅시다.”
[The End…… or The Beginning?]
철학은 끝나지 않는다. 질문은 계속된다. 그리고 군산대학교 교정의 벚꽃은, 매년 봄마다 피어난다.
(에타 익명게시판 베스트 댓글 - 2027년 봄)
“26학번 선배들 레전드였다던데 진짜임? 짜라투스트라 교수 썰 풀어줘”
“ㅇㅇ 진짜임. 그때 강의 들은 사람들 인생관 다 바뀜.”
“새 교수님도 괜찮은데? 박소피아 교수님 강의 꿀잼”
“철학과 폼 미쳤다는 건 인정 ㅋㅋㅋ”
“우리 과, 여전히 살아있네.”
그리고 누군가, 참으로 적절한 한 마디를 붙였다.
“너희가 초인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너희답게 살아라. 그게 전부다.”
* 짜라투스트라가 남긴 질문들 - 12개 에피소드의 철학적 배경
이 글을 읽은 후배들에게.
여러분이 방금 읽은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그 속의 고민은 모두 진짜입니다. 재희의 불안, 지훈의 후회, 서연의 고독은 어쩌면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 속에 숨어있던 철학적 질문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딱딱한 해설이 아니라, 선배가 후배에게 “야, 그거 있잖아” 하며 건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세요.
철학과 어느 선배가
1화: 플라톤의 동굴과 숏폼 중독
본문 속 장면:
“15초짜리 가짜 쾌락인 숏폼 그림자를 실체라고 착각하지 마라. 동굴 밖으로 나와 눈부신 현생의 햇살을 마주하라!”
후배들아, 솔직히 말해볼게. 나도 릴스 보다가 정신 차리면 1시간 지나있을 때 많아. “아 ㅅㅂ 과제 해야 되는데”하면서도 손가락은 또 스와이프하고 있고.
플라톤은 2400년 전에 이미 이걸 알았어.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보면, 사람들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짜 현실이라고 믿으며 산다는 이야기가 나와. 그림자 외에는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전부인 줄 아는 거지.
지금 우리한테 숏폼이 딱 그래. 15초짜리 편집된 세상이 진짜 세상인 것처럼 느껴지잖아. 알고리즘이 우리 취향 분석해서 보여주는 그 좁은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근데 플라톤이 말하고 싶었던 건, “동굴 밖으로 나가봐. 눈이 부셔서 아프겠지만, 진짜 햇살을 마주해봐”였어.
문제는 동굴 밖이 불편하다는 거야. 현실은 15초로 요약 안 되고, 빠른 템포로 편집도 안 되고, BGM도 안 깔려 있거든. 그냥 투박하고 느리고 지루해. 근데 그게 진짜야.
질문을 던져볼게:
지금 여러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앱을 열어봐. 거기서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의 전부일까? 동굴 밖으로 나가려면 뭘 해야 할까?
2화: 신의 죽음과 가치의 재창조
본문 속 장면:
“신은 죽었다. 하지만 너희의 학자금 대출은 살아 있다. 너희의 취업 걱정은 살아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을 때, 무신론 선언한 게 아니야.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기존의 절대적 가치 체계가 무너졌다”는 거였어.
우리 부모님 세대는 명확했잖아. 좋은 대학 → 대기업 → 결혼 → 아파트. 이 공식만 따라가면 ‘성공한 인생’이었어. 근데 지금은? 그 공식이 작동 안 해. 좋은 대학 나와도 취업 안 되고, 대기업 들어가도 행복하지 않고, 결혼은 선택이고, 아파트는 로또야.
기존 가치관(신)이 죽었는데,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안 만들어진 상태. 이게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Nihilism)야.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는 그 감정.
근데 니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 “그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라고 했지. 그게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야. 학자금 대출 천만 원? 좋아, 이것도 내 인생이다. 철학과 와서 취업 걱정? 좋아, 그럼, 철학하면서 먹고사는 법을 찾아본다. 이렇게 자기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
나도 처음엔 이게 뭔 개소리야 싶었어. 현실 도피 아니냐고. 근데 살아보니까 알겠더라. 긍정한다는 게 체념이 아니라 능동성이더라. ‘어차피 이 상황인데, 그럼 내가 여기서 뭘 해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힘이 생겨.
질문을 던져볼게:
부모님/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기준’을 버리면, 여러분만의 성공은 뭐가 될까? 그걸 사랑할 수 있을까?
3화: 릴케의 고독과 의존의 사랑
본문 속 장면:
“사랑은 두 개의 완전한 고독이 만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혼자 서는 법을 배워라.”
이건 사실 니체보다 릴케 얘기야.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어:
“고독을 사랑하고, 그것이 주는 고통을 아름다운 음률의 노래로 받아들여라.”
대학 와서 CC 하나쯤은 해야 할 것 같고, 혼자 밥 먹으면 루저 같고, 주말에 약속 없으면 불안하고. 그래서 누군가와 사귀는데, 막상 만나보면 “이게 사랑인가, 아니면 외로움 회피인가”헷갈릴 때 있잖아.
릴케는 그럴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라고 해. 혼자 밥 먹어도 괜찮고, 혼자 영화 봐도 괜찮고, 혼자 주말 보내도 괜찮은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사랑할 수 있대.
왜냐면 그때의 사랑은 “너 없으면 못 살아”가 아니라 “너 없어도 살 수 있는데, 그래도 너랑 함께하고 싶어”니까. 의존이 아니라 선택이 되는 거지.
나도 젊었을 때 과 CC 했었어. 근데 매일 싸웠어. 상대방한테 “왜 내 불안을 채워주지 않느냐”고 요구했던 거야. 헤어지고 나서 1년 혼자 있어봤어. 처음엔 지옥이었는데, 나중엔 괜찮아지더라. 그리고 그다음 사랑은 훨씬 건강했어.
질문을 던져볼게:
혼자 있을 때 불안한가요? 그 불안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를 찾고 있진 않나요?
4화: 하이데거와 AI 시대의 존재
본문 속 장면:
“AI는 정답을 복제한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왜?’라고 묻는 것은 인간뿐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Dasein), 즉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해.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말하면,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묻는 존재’라는 거야.
ChatGPT한테 “라면이 뭐야?”라고 물어봐. 완벽한 정의를 내려줄 거야.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반죽한 면을 건조시켜 만든 인스턴트 식품.” 100점짜리 답이지.
근데 ChatGPT는 모르거든. 새벽 3시에 편의점에서 혼자 먹는 라면이 왜 이렇게 슬픈지. 취업 떨어지고 먹는 라면과 합격하고 먹는 라면이 왜 다른 맛인지. 그건 ‘의미’의 문제니까.
AI는 가성비 최고야. 1초 만에 완벽한 레포트 써주고, 번역도 해주고, 코딩도 해줘. 근데 AI는 고통받지 않아. 밤새 고민하지 않아. 투박하게 실수하지 않아. 그래서 AI의 결과물에는 ‘피 와 땀 냄새’가 안 나.
후배들아, 나는 AI 쓰지 말라는 게 아니야. 나도 써. 근데 AI가 준 답을 그대로 제출하는 순간, 그건 내 사유가 아니야. AI를 도구로 쓰되, 질문은 내가 던지고, 의미는 내가 부여해야 해.
질문을 던져볼게:
마지막으로 밤새 고민해 본 질문이 뭐였나요? AI한테 답을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 했던 경험이 있나요?
5화: 카뮈의 부조리와 시시포스
본문 속 장면: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다.”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는 철학과 필독서잖아. 시시포스는 신들에게 벌을 받아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데, 꼭대기에 도착하면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져. 그걸 영원히 반복해야 해.
이게 우리 인생 아니야? 중간고사 보고, 기말고사 보고, 다시 중간고사 보고. 과제 제출하고, 또 과제 받고, 또 제출하고. 취업 준비하고, 면접 떨어지고, 다시 준비하고. 끝이 없어.
근데 카뮈는 말해.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처음엔 이게 뭔 개소리야 싶었어. 바위 밀다가 미치는 거 아냐?
근데 생각해 봐. 시시포스가 불행한 이유는 ‘바위가 굴러떨어져서’가 아니야. ‘이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야. 만약 시시포스가 “이 바위는 내 바위다. 이 산은 내 산이다. 이 반복은 내가 선택한 삶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부조리는 사라져. 아니, 부조리는 여전히 있지만, 그걸 긍정하는 순간 자유로워지는 거야.
나도 2학년 때 레포트 날아간 적 있어. 밤새 쓴 12장이 저장도 안 되고 날아갔어. 멘붕 왔지. 근데 다시 썼어. 그리고 두 번째 버전이 더 좋았어. 바위가 굴러떨어졌지만, 나는 더 강해졌어.
질문을 던져볼게:
지금 여러분이 밀고 있는 바위는 뭔가요? 그 바위를 내려놓을 건가요, 아니면 내 바위로 만들 건가요?
6화: 정체성의 역설과 테세우스의 배
본문 속 장면:
“과잠의 로고가 지워지고 소매가 헤져도, 그 옷을 입고 밤새 고뇌했던 너의 기억이 배의 돛을 지탱한다.”
테세우스의 배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명한 역설이야.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보존하는데, 낡은 부품을 하나씩 새 부품으로 교체해. 마침내 모든 부품이 교체되면, 그건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취업 준비하면서 자소서 쓸 때 이 생각 안 들어? (이건 나의 상상이야.)
“저는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입니다” → 거짓말. 나 겁 많음.
“저는 팀워크를 중시합니다” → 거짓말. 나 혼자 하는 게 편함.
근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서 나를 계속 수정해. 성격도 바꾸고, 경험도 포장하고, 취미까지 바꿔. 그럼 자소서 속의 나는 진짜 나일까?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답했어. “배의 본질은 부품이 아니라 항해의 기억에 있다.” 즉, 네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서사가 너를 규정한다는 거야.
자소서 속의 나도 진짜 나고, 침대에서 우는 나도 진짜 나야. 인간은 원래 모순 덩어리야. 그 모순을 인정하고 안는 게 성숙함이야.
질문을 던져볼게:
지금의 나와 5년 전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요? 뭐가 바뀌었고, 뭐가 그대로인가요?
7화: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자기 극복
본문 속 장면:
“기계가 쓴 문장에는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너의 문장은 투박하지만 너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는 자주 오해받는 개념이야. 권력욕이나 지배욕으로 해석되는데, 사실은 ‘자기 극복의 의지’에 가까워.
니체는 말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는 존재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나. 오늘의 나보다 나은 내일의 나. 이렇게 계속 자신을 극복하는 것, 그게 힘에의 의지야.
AI 시대에 이게 왜 중요하냐면, AI는 이미 완벽하거든. 문법 오류 제로, 논리 완벽, 문장 매끈함. 근데 AI는 ‘극복’을 안 해. 성장하지 않아. 에러 없이 태어났으니까.
반면 인간은 투박해. 오타 내고, 논리 헷갈리고, 문장 어색해. 근데 그 투박함 속에 ‘발버둥’이 있어. 새벽 3시에 커피 마시며 레포트 쓰는 그 순간, 그게 바로 힘에의 의지야.
나도 지 지난 학기 때 ChatGPT 유혹 엄청 받았어. 클릭 한 번이면 A+ 받을 수 있는데, 왜 밤새 고생해야 하나 싶었지. 근데 스스로 쓴 레포트에 학점이 B+ 받았을 때, 묘하게 뿌듯하더라. ‘이건 내 거다’라는 느낌.
질문을 던져볼게:
마지막으로 자기 한계를 넘어섰던 경험이 뭔가요? 그때의 성취감을 기억하나요?
8화: 영원회귀와 순간의 긍정
본문 속 장면:
“만약 너의 인생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살 수 있겠는가?”
영원회귀는 니체 철학의 백미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이렇게 묻거든. “만약 네 인생이 똑같이 무한 반복된다면, 그래도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게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야. 이건 ‘삶의 태도’를 묻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살아도 후회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도서관에서 밤새 시험공부할 때, “아 이거 내년에도 또 해야 되네” 생각하면 절망이야. 근데 “이 순간을 다시 살아도 나는 똑같이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그 무게가 달라져.
시험 기간마다 “영원회귀 아니냐”고 농담하잖아. 근데 진지하게 물어볼게. 지금 이 시험 기간을 영원히 반복한다면? 똑같이 벼락치기 하고, 똑같이 에너지 드링크 마시고, 똑같이 과제 날려 먹을 건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바꿔볼 건가?
질문을 던져볼게:
오늘 하루를 영원히 반복한다면, 여러분은 웃을 수 있나요? 만약 아니라면, 뭘 바꿔야 할까요?
9화: 도구적 이성과 질문의 힘
본문 속 장면:
“AI는 너의 적이 아니다. 도구다.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기술을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봤어. 망치는 그냥 망치가 아니라, ‘두드린다’는 세계-이해 방식을 보여주는 거지.
AI도 마찬가지야. AI는 도구인데, 문제는 우리가 도구에게 목적까지 맡긴다는 거야.
“AI야, 레포트 주제 정해줘. 내용도 써줘. 결론도 내려줘.”
이러면 우리는 도구의 부속품이 돼.
진짜 AI 시대의 철학자는 이렇게 써야 해:
1. AI에게 자료 정리를 시켜 (도구 활용)
2. 그 자료를 보고 내가 질문을 던져 (주체적 사유)
3. AI에게 반론을 요청해 (비판적 검토)
4. 최종 답은 내가 써 (고유한 목소리)
망치가 못을 잘 박는다고 목수가 필요 없는 게 아니듯, AI가 글을 잘 쓴다고 사유하는 인간이 필요 없는 건 아니야.
나도 지금 AI 열심히 써. 번역할 때도 쓰고,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할 때도 써. 근데 최종 판단은 항상 내가 해. 그게 인간의 존엄이야.
질문을 던져볼게:
AI를 쓸 때, 여러분은 주인인가요 아니면 손님인가요? 도구를 부리고 있나요, 아니면 도구에게 부림받고 있나요?
10화: 아모르 파티와 선택의 긍정
본문 속 장면:
“도망칠 곳은 없다. 어디를 가든 결국 너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편입 준비하는 친구들 많지? 나도 고민했어. 철학과 말고 다른 과 갈까. 역사, 국문, 경영, 경제, 심리…… 뭐든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았거든.
근데 깨달았어. 도망치는 거라는 걸. 내가 싫은 건 ‘철학과’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이었어. 편입해서 경영학과 가도, 거기서 또 “회계 너무 어려워, 차라리 경제학과 갈걸”할 게 뻔해.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는 체념이 아니야. 능동적 긍정이야.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인다” (체념) vs “이 상황을 내가 선택했고, 이것조차 사랑한다” (긍정).
차이가 뭐냐면, 전자는 피해자 모드고 후자는 주인공 모드야.
철학과 온 거 후회돼? 나도 가끔. 근데 동시에 사랑해. 이 모순을 견디는 게 성장이야. 후회하면서도 계속 가는 거. 그게 아모르 파티야.
질문을 던져볼게:
지금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 뭔가요? 그 선택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계속 도망칠 건가요?
11화: 니체의 고귀한 고독
본문 속 장면:
“독한 자여, 환영한다. 넌 지금 니체가 말한 ‘고귀한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말해.
“고독한 자여, 너는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대학 오면 친구 많이 사귀고, 동아리 들어가고, 과 행사 참여하고…… 이게 정상처럼 느껴지잖아. 근데 막상 그 속에서 외로운 사람들 많아. 100명과 함께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은 느낌.
반대로 정말 혼자 있는데 외롭지 않은 사람도 있어. 도서관에서 책 읽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생각하는데 충만한 사람.
차이가 뭘까? 전자는 ‘고독을 회피하려는 외로움’이고, 후자는 ‘고독을 받아들인 충만함’이야.
니체는 말해. 진정한 사유는 군중 속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탄생한다고. 사자는 양 떼와 어울리지 못해. 근데 그렇다고 사자가 양이 될 필요는 없어.
나도 1학년 때 “왜 나만 이런 생각하고 있지?” 물론 나이가 있어 애들과 섞이기가 쉽지 않은 걸 각오하고 온 것이지만 애들이 릴스 얘기할 때 나는 카뮈 생각하고 있고. 근데 2학년, 3학년이 되니까. 뭔가 연대 비슷한 느낌이 상황이 생기더라고. 비슷한 애들 만났어. 독서모임? 그때 깨달았어. 고독을 견딘 사람끼리만 진짜 연결된다는 걸.
질문을 던져볼게:
혼자 있을 때 불안한가요, 아니면 편안한가요? 고독을 피하고 있나요, 아니면 누리고 있나요?
12화: 철학은 태도다
본문 속 장면:
“나는 너희의 거울이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미 너희 안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어. 《변론》에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
이게 겸손의 표현이 아니야. 이건 철학적 태도야. 선생이 학생에게 답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답을 ‘발견’하게 돕는 것. 그게 산파술이야. 짜라투스트라가 “나는 너희의 거울”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야. 교수가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질문을 비춰주는 거지.
철학과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 철학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질문하기’라는 거. 취업이 답인가? 결혼이 답인가? 돈이 답인가? 행복이 답인가?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어. 하지만 질문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이야.
철학과 나와서 치킨집 해도 돼. 공무원 해도 돼. 유튜버 해도 돼. 중요한 건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를 묻는 태도야. 그게 철학자야.
질문을 던져볼게:
여러분에게 철학은 뭔가요? 전공? 학문? 아니면 살아가는 태도인가요?
에필로그: 질문은 계속된다
후배들아, 이 해설을 쓰면서 나도 많이 생각했어. 이 만큼 나이먹고 살만큼 살았는데, 아직도 답 모르겠어. 철학 공부한 게 잘한 건지, 다른 길을 걸었어야 하는 건지.
근데 확실한 건, 철학 덕분에 ‘왜?’라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는 거야. 그 습관이 나를 살려. 내 모든 일상뿐만 아니라, 특히 글을 쓸 때는 더더욱.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후회스러울 수 있어. 근데 그 모든 감정이 철학이야. 그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봐.
플라톤의 동굴, 니체의 영원회귀, 카뮈의 시시포스…… 이 모든 개념은 2000년 전 얘기지만, 지금 우리 얘기이기도 해. 숏폼 중독, 학자금 대출, AI 시대…… 시대는 바뀌어도 질문은 같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붙잡고 있는 한, 여러분은 이미 철학하고 있는 거야. 질문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게 아름다운 것이고, 그게 철학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 너희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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