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멜라 「이응 이응」 작품 분석 – 기술 시대의 인간성과 감정,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묻다
2025학년도 1학기 ‘현대 소설 강독’ 수업의 첫 번째 작품은 김멜라의 단편소설 「이응 이응」이다. 이 작품은 2023년 문장웹진에 처음 발표된 이후, 2024년 제15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응 이응」은 ‘이응’이라는 섹스토이를 중심으로 인간과 기술, 성과 사랑의 경계를 탐색하며, 감정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작품이다.
1. 기술과 인간성의 공존
작품 속 '이응'은 단순한 성욕 해소 기계가 아닌, 사용자의 감정과 생각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감응적 기계로 그려진다. 이 기계의 보급으로 매춘, 원치 않는 임신, 성범죄는 줄고 출생률은 오히려 증가하면서 사회는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어디까지나 ‘통제된 질서’에 불과하며, 인간 본연의 감정과 관계는 점점 무뎌진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동시에 인간다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현대 사회의 양면적 현실을 반영하며, 작품은 그 경계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 감정의 표현과 억제
주인공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슬픔을 오미자물을 마시는 것으로 억제한다. 성인이 된 후 ‘위옹’ 클럽에서는 스스로를 ‘오미자물’이라 부른다. 오미자물은 차갑고 새콤한 맛으로 감정을 대체하는 상징이며, 이 이름은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억제하며 살아온 삶의 방식이자, 감정의 외면과 단절을 나타낸다.
이러한 내면의 억제와 사회적 부적응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와도 맞닿아 있다. 뫼르소는 사회의 감정적 기대에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조차 울지 않는 인물이다. 「이응 이응」의 주인공 또한 기계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제하며, 사회와 거리감을 형성한다. 주인공은 『이방인』 속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을 ‘속옷을 입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한다. 여기서 ‘속옷을 입는 사람들’은 일상적 사회 규범을 따르며 적응하는 이들을 상징하고, 주인공은 그 틀에 들지 못한 ‘낯선 존재’로 스스로를 위치 짓는다. 이러한 대칭적 구도는 『이방인』과 「이응 이응」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소외와 자아 분리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3. 관계의 본질에 대한 탐구
‘위옹’ 클럽은 신체 접촉을 중심으로 관계를 구성하지만, 닉네임 사용, 로맨틱 감정 금지, 피부 경계 존중 등의 규칙이 이를 제약한다. 포옹이라는 물리적 행위조차 규범적으로 통제되는 이 공간은, 진정한 교감이 신체 접촉만으로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관계—SNS, 온라인 소통, 비대면 연결—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확장될 수 있으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위옹 회원 ‘레인코트’가 언급한 옥수수의 성장 곡선은 이러한 관계 형성의 불확실성과 느린 진행을 상징하며, 감정의 성장은 때로 외면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4. 개인의 성장과 자아 탐색
주인공은 ‘이응’과의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그 기계적 사랑의 한계를 자각하게 된다. 기계는 감정의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진정한 교류는 제공하지 못하며, 주인공은 이 한계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으려면 같은 방향으로 한 번 더 활을 쏴야 한다”는 문장은, 과거의 상실을 되찾기 위해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태도를 상징한다. 자아를 향한 탐색은 ‘이응’을 버리는 결단으로 이어지고, 이는 기술적 위안을 넘어선 인간적 교감을 향한 욕망으로 귀결된다.
5. 미래 사회에 대한 성찰
「이응 이응」은 단순한 SF 서사를 넘어서, 현재의 기술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인간 감정의 변화와 사회 구조의 재편을 사유하게 한다. AI, 감정 인식 기술, 가상현실 등의 발전은 인간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감정은 오히려 희미해질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미래 사회의 윤리적, 심리적 문제를 미리 조망하며, 기술이 인간의 결핍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을 경고한다.
6. 문학적 기법의 탁월성
김멜라 작가는 섬세한 문체와 다층적인 상징을 통해 복잡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응’, ‘오미자물’, ‘위옹’ 등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 감정의 억제, 관계의 불완전성, 자아 인식의 경계를 구체화하는 핵심 기호로 작용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 “나는 울고 있었지만, 비옷을 입고 빗속을 걷는 것처럼 두 뺨은 눈물 자국 없이 보송했다”는 표현은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외면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하며, 인간 감정의 깊이와 억압된 내면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이 역시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감정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고립과 단절을 보여준다.
결론
김멜라의 「이응 이응」은 현대 사회의 기술 발전과 인간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방인』과의 대조적 독법을 통해 볼 때, 이 작품은 소외된 개인이 사회적 기대와 기술적 환경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탐색해나가는지를 심도 깊게 보여준다. 감정 표현과 억제, 관계 형성과 단절, 인간다움과 기술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 작품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닌, 지금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문학적 거울로 기능한다. (끝)
참고문헌
1. 김멜라. 「이응 이응」. 문장웹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 5월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69871
2. 김멜라 외.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4.
3. 알베르 카뮈, 『이방인』, 김화영 옮김 (서울: 민음사, 2000).
4. 이선욱. 『알베르 카뮈, 타인의 시선』. 동녘, 2013.
5. 문학동네.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발표.” 문학동네 공식 홈페이지, 2024.
https://www.munhak.com/news/view.asp?newsid=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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