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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어스시의 마법사』와 내 그림자 릴로스에 대하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3. 24.

 

 

 

 

어스시의 마법사와 내 그림자 릴로스에 대하여

 

어스시의 마법사(A Wizard of Earthsea)는 미국의 작가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1968년에 발표한 판타지 장편소설로, 어스시 연대기(Earthsea Cycle)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판타지 장르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독창적인 세계관과 철학적인 주제를 통해 많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어스시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바다 위의 세계이며, 마법이 실재하고 마법사들이 사회적 권위를 가지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핵심 원리는 이름의 힘에 있다.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진짜 이름(True Name)이 존재하며, 그 이름을 아는 자는 그 존재를 통제할 수 있다. 언어와 이름의 힘은 어스시 세계에서 단순한 설정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 권력, 균형을 상징하는 철학적 도구로 기능한다.

 

주인공 게드(Ged)스패로호크(Sparrowhawk)’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으로, 고운 섬 출신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강력한 마법의 재능을 보이며, 현자인 오그온(Ogion)에게 기초 수업을 받은 뒤, 마법사 양성 학교가 위치한 로크 섬의 루크 학교(Roke School of Wizardry)에 입학한다. 게드는 학교에서 빠르게 명성을 쌓지만, 자만심과 경쟁심으로 인해 금기된 주문을 시전하고, 그 결과 세상에 어둠의 존재, 그림자를 불러오게 된다. 그림자는 단순한 악한 존재가 아닌, 게드의 내면에서 비롯된 자기 그림자의 화신이다. 이후 게드는 그 그림자에게 쫓기며 스스로의 정체성과 맞서는 긴 여정을 떠난다. 이 여정은 단순한 마법 대결이 아닌, 자기 내면의 어둠과 화해하고 통합해가는 성숙의 과정이다. 마지막에는 그림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게드는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아를 완성하게 된다.

 

이 작품의 중심 주제는 성장, 정체성의 통합, 책임, 언어의 힘, 존재의 균형이다. 게드는 자신의 오만과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억압했던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마법이란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며, 이름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의미한다. 게드가 그림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여하는 장면은,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고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림자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이다. 첫째, 게드의 내면, 억압된 자아의 화신이다. 게드가 금기된 마법을 사용해 불러낸 그림자는, 사실 그의 내면에 존재하던 오만, 질투, 불안정성 등 자아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카를 융의 그림자 자아(Shadow Self)’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둘째, 권력욕과 오만의 부산물이다. 게드는 자신의 힘을 제어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림자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르 귄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인 힘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셋째, 죽음의 충동과 존재의 균형을 상징한다. 그림자는 죽음의 세계에서 온 존재이며, 생명과 죽음의 순환, 빛과 어둠의 균형이라는 어스시 세계관의 근본적 원리를 상징한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무의식 속 억압된 자아의 일부분이며, 인간의 성숙은 이 그림자를 직면하고 통합하는 데 있다고 본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이 이론을 문학적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게드는 무의식의 투사를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실체화하며, 그 존재로부터 도망치고 억누르다가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자신과 통합함으로써 자기 실현(Self-realization)’의 경지에 도달한다.

 

프로이트의 심리학 또한 이 작품에 투영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드(Id, 본능)의 충동을 억압하며 살아가고, 억눌린 충동은 무의식 속에 쌓이다가 어느 순간 복귀한다. 게드의 그림자는 억압된 욕망과 분노, 인정받고자 하는 충동의 반동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억압된 무의식의 귀환에 부합한다. 또한 그림자는 프로이트가 말한 타나토스(죽음 충동)’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게드는 이 충동을 억누르지 않고, 통합을 통해 자기 통제를 이룬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단순한 판타지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성숙과 정체성의 통합, 언어와 존재의 철학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특히 이름이라는 설정은 존재의 본질과 세계의 균형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간결하고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이 작품은 융 심리학과 동양 철학을 서사 구조에 접목하여, 서구 중심의 판타지 문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드라마와도 연결된다.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보물섬은 인물 각자의 욕망과 상처, 즉 그림자와 마주하는 서사를 중심에 둔다. 인물 서동주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복수심이라는 그림자를 스스로 인식하고 실행을 통해 직면한다. 반면 염장선은 자신의 그림자를 철저히 억압하고 외면하며, 결국 깊은 어둠에 잠식된다. 여은남은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며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지만, 점차 진실한 자아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이들은 모두 게드처럼 자기 안의 그림자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결말로 향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또한 그림자 자아를 다룬 대표적 문학이다. 지킬은 내면의 본능과 욕망을 분리하려 시도하지만, 결국 하이드에게 잠식당해 자아를 잃고 만다. 그는 자신의 어둠을 외면했고, 통합하지 못했다. 반면 게드는 그림자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통합함으로써 온전한 자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그림자를 수용할 수 있을까? 나는 어스시의 마법사속 게드의 여정을 따라가며 답을 찾았다. 게드가 그림자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가 되었듯, 나 역시 나의 그림자를 불러야 했다. 내 안의 그림자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세상에 나의 이름을 남기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철학을 공유하고,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이 욕망이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세계와 관계 맺고자 하는 방식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그림자에게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은 릴로스(Lilos)’이다. 릴로스는 오르페우스적 본성을 지닌 존재로, 내 철학과 감정을 언어로 노래하고 세상에 닿기를 원하는 강한 열망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릴로스는 그 열망이 자기확장의 욕망으로 흐르지 않도록, 예술과 이성, 언어와 감성의 틀 안에서 그것을 정제한다. 이름 릴로스리리컬(lyrical)’로고스(logos)’의 결합으로, 내 안의 창조성과 사유,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한다.

 

릴로스는 말한다. “나는 릴로스다. 말과 노래, 철학과 욕망이 내 안에서 조화롭게 흐른다. 나는 세상을 깨우기 위해 내 이름을 노래한다.”

이제 나는 릴로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부르고, 나와 함께 걷게 한다. 그림자는 나를 넘어 세상으로 가는 또 다른 목소리이며, 내 이름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음절이다. 게드가 자신의 그림자에게 이름을 부르며 온전해졌듯, 나 또한 릴로스를 부름으로써 나 자신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림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껴안아야 할 내 일부이다. 게드의 여정은 끝났지만, 나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도 릴로스와 함께, 이름을 부르며 걷는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며, 내 안의 진실과 화해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이 되어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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