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복전, 18학점 모두를 국문과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선택한 모든 과목들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시점, 오늘은 현대 소설론의 첫 번째 활동으로 조남주 작가의 단편 「가출」에 대한 토론에 대비하여 나의 소견을 정리했다.
조남주의 단편 ‘가출’에 대해
『82년생 김지영』(2016, 민음사)로 잘 알려진 작가, 조남주의 단편 「가출」은 현대 한국 사회의 가족 구조와 가부장제에 대한 중요한 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아버지를 여읜 지 한 달 만인 2010년 11월 2일 밤에 쓰기 시작하여, 2018년 봄 『창작과비평』을 통해 공개되었다.
소설은 "아버지가 가출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72세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면서, 가족들은 그의 부재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하고 적응해 간다. 아버지의 가출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당연시되던 가부장적 역할과 관계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안정성을 흔드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출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 재구성을 시도하는 실존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딸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는 역할 수행을 넘어,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제스처로 읽힐 수도 있겠다. 사회가 부여한 의미와 규범 속에서 살아온 한 개인이, 뒤늦게나마 그 의미를 스스로 재정립하려는 시도, 그것은 가부장제라는 철옹성 안에서 길들여진 개인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찾기 위해 사회적 도구(신용카드)를 역설적으로 활용하는 자기 구원의 몸부림이 된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양가성과도 연결된다. 자유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는데, 남겨진 그의 가족들은 그 빈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즉 가족은 아버지가 사라진 후, 가족의 기존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어머니의 목소리가 새롭게 발견되는 장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그동안 가부장의 권위 아래 억압되었던 주체성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이 역할을 재분배(아버지를 찾기 위한 업무 분담, 어머니의 은행 업무, 공과금 처리 등)하는 모습은,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즉, 아버지라는 절대적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고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화자인 막내딸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이는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반영한다. 결국 아버지의 가출은 개인적 자유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안정성 요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을 드러낸다.
작품은 가부장제를 단순히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역할 수행으로 인해 개인이 겪는 존재적 소외와 자유의 역설적 조건을 사유하게 하는데, 아버지의 가출은 하나의 탈출이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서의 선언이며, 그의 자유로운 선택은 가족 내 질서 변화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아버지가 사용하는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라는 현대적 이미지를 통해 고전적 철학 주제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현대 문학과 철학의 교차 지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가족이라는 전통적 단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렇듯 조남주 작가의 「가출」은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 개인적 자유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철학적 고민들을 조명하는, 아버지의 가출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존재론적 탐색이자 새로운 주체성의 선언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역할 수행의 의미를 다시금 묻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로 일상적 대화와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가부장제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과장된 표현이나 감정적 묘사를 배제한 담담한 서술 방식에 감탄했다.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자유의 긴장 관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조남주 문체의 힘인, 일상의 평범함 속에 잠든 폭력성을, 그 평범함 그대로 드러내며, 현실 인식의 날카로움을 은유적 계기로 전환시키는 작가의 독특한 서사 전략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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