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화장」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철학적 탐구
김훈 작가의 「화장」은 2004년에 발표되어 제2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이다. 얼굴을 꾸미는 化粧 (화장)과 시체를 불살라 장사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火葬 (화장)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삶과 죽음, 욕망과 소멸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다.
약 20년 만에 김훈 작가의 「화장」을 다시 읽었다. 세월의 간격일까? 다차원적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50대 중년 남성이다. 화장품 회사의 홍보팀 상무이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5년간 간병하면서 동시에 젊은 여직원 추은주에 대한 욕망을 느끼는 인물이다. 소설은 아내의 죽음으로 시작되며,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삶과 죽음, 욕망의 문제를 섬세하게 펼친다. 김훈 특유의 단단하고 무거운 문체로 서사와 서정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욕망 앞에서 허둥대는 인간의 모습과 삶의 본질적인 측면을 탐구하며, 육체적 고통, 욕망, 죽음 등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젊은 시절 나의 감상법이었다.
다시 읽은 「화장」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바탕으로 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주인공들의 삶과 병치되었다.
두 작품은 삶과 죽음,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다룬 작품이다. 「화장」에서는 아내의 죽음과 화장(火葬)을 통해 삶의 무게를 탐구하는 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철학적으로 고찰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이 두 작품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영원회귀는 삶의 매 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를 부여하며, 적극적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훈의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라는 표현과 쿤데라의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는 표현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겠다.
「화장」은 '화장(火葬)'과 '화장(化粧)'의 이중적 의미를 통해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며, 쿤데라의 작품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 삶의 매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화장」이 질병을 통해 몸의 서사를 전개하는 반면, 쿤데라의 작품은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니체의 사상은 이 두 접근을 연결하는 철학적 가교 역할을 한다.
즉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문학적 접근을 가지지만, 둘 모두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복잡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사유하게 한다. 『화장』 속 주인공 오상무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토마시 및 여주인공인 테레사를 대조해 보면, 각 인물들은 삶과 죽음,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을 어떻게 체험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오상무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후 삶의 의미와 죽음의 무게를 깊이 탐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화장(火葬)을 통해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무게와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에 대해 성찰한다. 그에게 죽음은 무겁고, 이를 받아들이고 화장하는 과정은 하나의 의식적인 순례와 같은 성격을 띤다. 죽음의 무게가 그의 삶에 강하게 반영되며, 결국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반면, 토마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삶의 신념으로 삼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무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그의 관계와 선택은 늘 경박하고 순간적이다. 특히, 그의 성격은 인생을 가벼운 것, 덧없는 것으로 보고,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살려고 한다. 그는 삶을 반복되는 고통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가볍고 자유로운 존재로 여기며, 자신이 겪는 감정의 무게를 싫어한다. 따라서 오상무와 토마시는 죽음과 삶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오상무는 죽음을 통해 삶의 무게를 직면하며, 토마시(Tomáš)는 삶의 가벼움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 두 인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을 체험하며, 이는 그들의 행동과 감정의 깊이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반면 테레사는 토마시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무게를 자주 느끼는 인물이다. 그녀는 토마시의 가벼운 삶에 고통받으면서, 사랑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과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뇌한다. 테레사(Tereza)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토마시에게 의존하고, 그가 자신에게 주지 않는 사랑과 헌신에 대해 고통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테레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무게를 짊어지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오상무의 아내는 삶의 끝에서 오상무에게 남긴 메시지와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고백한다. 그녀는 오상무에게 죽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고, 그녀의 죽음은 오상무의 삶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오상무의 아내는 죽음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물음을 던진다. 따라서, 테레사와 오상무의 아내는 각각 사랑과 죽음을 통해 존재의 무게를 짊어지는 여성들로, 그들의 삶과 존재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요소를 통해 깊어지며, 이는 그들의 내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두 작품에서속에서의 니체의 영원회귀는 "모든 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개념으로, 이는 인물들에게 삶의 순간 하나하나를 무겁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오상무의 죽음에 대한 성찰과 테레사의 사랑의 고통은 각각 이 무한한 반복의 관점에서 더 의미를 갖는다. 만약 그들의 존재가 반복된다면, 그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토마시와 테레사의 이야기는 가벼운 존재를 추구하는 반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이러한 가벼움을 문제 삼는다. 만약 삶이 반복된다면, 그 모든 순간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토마시의 자유로운 삶은 영원회귀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무책임한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 토마시는 농장에서의 생활은 삶의 무거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도 생각되었다.
그는 바람둥이 생활을 포기하고 테레사와 함께 농장으로 떠나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데, 이는 그가 이전의 가벼운 삶에서 벗어나 책임과 헌신이라는 무거운 가치를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택은 토마시가 찾은 새로운 형태의 가벼움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임무라니, 테레사, 그건 다 헛소리야.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라고 깨닫게 되는데, 이는 완전한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오히려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즉 밀란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토마시의 선택은 겉으로는 무거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그가 찾은 내적 자유와 평화는 또 다른 형태의 가벼움일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은 지나친 확장일까?
토마시의 선택은 단순히 삶의 무거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움과 가벼움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이는 인생이 단순히 가볍거나 무거운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었다면, 내 삶의 연륜에서 얻은 시간의 무게일까?
또한 「화장」 속에서 오상무가 삶을 가볍게 보고자 하는 행동은 여러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는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그녀의 고통을 직면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거리를 두려 한다. 아내의 몸이 점점 말라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깊이 연루되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가볍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또한, 아내가 위중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화장(火葬)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죽음을 일종의 시스템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는 죽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내면적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아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젊은 여성과의 관계(물론 상상속이지만)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도 그의 특징적인 행동 중 하나이다. 아내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화장되는 순간, 그는 슬픔에 압도되기보다는 담담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며, 화장을 통해 죽음이 현실에서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라는 사실, 처음부터 죽음과 삶의 무게를 회피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아내의 죽음을 통해 그가 피하고자 했던 무게를 온전히 마주하지만, 그의 행동 속에는 여전히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깔려 있음을 작품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오상무는 회사 일을 핑계로 난잡한 술자리에 참석한다거나, ‘내면 여행’보다는 ‘가벼움’으로 광고 시안을 결정하고, 끓어오르는 욕망의 상대였던 추은주가 직장을 그만두고 워싱턴으로 가야한다는 사실 앞에 ‘사표 처리합시다’라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는 일, 전립선 비대증으로 오줌을 억지로 짜내야 하는 일은 어쩌면 오상무가 삶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가벼움을 선택했던 장면들이 아니었을까? 이는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가 보이는 태도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이처럼 두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각각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며,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은 철학적 개념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확립시킨다. 오상무는 죽음의 무게를, 토마시는 삶의 가벼움을 경험하며, 테레사는 사랑의 무게를, 오상무의 아내는 죽음의 무게를 남긴다. 이들의 이야기는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서로 대비시키면서, 존재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오상무의 삶이 죽음을 통해 무게를 더해가는 과정이라면, 토마시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로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선택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각성, 더불어 삶의 무게와 가벼움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오상무와 토마시가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둘 다 존재의 본질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생각했던 기회였다.
더불어 나는 특히 「화장」 속 오상무가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내면적 방어기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상무의 내면적 방어기제는 소설 「화장」에서 다양한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오상무는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 위안을 위해 사우나를 찾는데, 이는 현실도피와 퇴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전립선 문제로 오줌을 받아내고, 젊은 신입사원 추은주에게 욕망을 느끼며, 아내의 유품을 가볍게 정리하고, 물론 죽은 아내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기르던 개, 보리를 안락사시키는 장면 등은 오상무가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어기제로 보았다. 이는 오상무가 삶의 무게와 가벼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심리적 노력이겠구나, 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작가는 왜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름을 주지않고 사회적 직책인 오상무를 내세웠을까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주인공의 경험과 고민이 개인적인 것을 넘어 많은 중년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임을 암시하기 위한 의도 중 하나일까? '상무'라는 직책은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와 책임을 나타내며, 이는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구체적인 이름 대신 직책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자신을 더 쉽게 투영하려는 의도일까?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과 고민에 독자들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고 더 나아가 이름 대신 직책으로 불리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직업이나 사회적 역할에 의해 정의되는 현상을 반영하며, 이는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작가는 주인공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의 중년 남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고민과 갈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겠다.
20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은 「화장」은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와 함께, 인간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더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오상무의 방황하는 모습에서 느낀 애틋함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나의 내면 여행! 나의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무엇일까? 둘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끝)
#문학비교 #김훈 #화장 #밀란쿤데라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니체 #영원회귀 #삶과죽음 #존재론 #철학적성찰 #삶의무거움과가벼움 #초짜철학도 #국립군산대학교 #군산대철학과 #lettersfromatraveler
'戀書시리즈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스시의 마법사』와 내 그림자 릴로스에 대하여 (0) | 2025.03.24 |
---|---|
김멜라 「이응 이응」 작품 분석 – 기술 시대의 인간성과 감정,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묻다 (0) | 2025.03.24 |
조남주의 단편 '가출'에 대해 (0) | 2025.03.12 |
『채식주의자』, 아브젝트와 경계를 넘는 존재의 실험 (0) | 2025.02.03 |
독후감: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저) (0) | 202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