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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채식주의자』, 아브젝트와 경계를 넘는 존재의 실험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2. 3.

 

 

 

채식주의자, 아브젝트와 경계를 넘는 존재의 실험

 

불가리아 출생의 현대 철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아브젝트아브젝시옹개념을 공부하다, 불현듯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학교 독서모임인 필담에서 이 책으로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몇몇은 소설 속 인물들을 무척 낯설어했었다. 내 경우엔 이전 채식주의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주인공 영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다시 읽는 작품에 약간의 희열조차 일었던 경험이었고, 작가의 인간의 본성 속 깊이를 탐구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점에 압도되었던 소설이기도 했다.

 

오늘 크리스테바의 개념들을 살펴보다가, 왜 이 작품이 나를 압도시켰는지, 혹은 독자들을 당황시켰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바로 크리스테바가 정리한 아브젝트아브젝시옹을 실현한 작품이라는 사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아브젝시옹'은 우리가 너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왜 그런 것들이 우리를 끌어당기는지에 관한 개념이다. '아브젝트'는 우리가 보거나 생각하기 불편한 것들, 예를 들어 더러운 것, 부패한 것, 죽은 것들이고. 이런 것들은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주지만, 그 반대로 우리에게 강하게 매혹을 느끼게도 한다. '아브젝시옹'은 그런 것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하고 싫은 감정을 말하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가 자신과 세상의 경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브젝트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흥미를 동시에 주는 존재이다.

 

즉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와 아브젝시옹(Abjection) 개념을 통해 깊이 있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육체성과 폭력성, 욕망과 금기, 주체성과 타자성의 경계를 문제 삼으며, 주인공 영혜가 자신의 신체와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는 과정을 통해 아브젝트와의 조우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크리스테바에게 아브젝트란 주체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배제해야 하는 대상이며, 혐오와 매혹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한다. 육식 자체가 생명을 죽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육식의 잔혹함은 크리스테바가 언급한 부패한 사체나 피 같은 아브젝트와 맞닿아 있다. 영혜에게 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 즉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자 사회적 강요의 상징이다. 그녀가 점차 채식을 넘어 단식을 하며 육체 자체를 지워가려는 행위는 아브젝트로서의 육체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아브젝시옹(Abjection)은 단순히 아브젝트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것과의 충돌 속에서 주체가 불안정해지는 과정이다. 영혜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몸과 역할을 거부하며 점차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고, 급기야 인간 존재 자체를 포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신체는 점점 말라가고, 결국엔 나무가 되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 과정은 크리스테바가 말한 주체의 경계 해체와 관련된다. 영혜는 더 이상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의 가족과 사회는 이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가 겪는 아브젝시옹은 단순한 거식증이나 우울증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존재를 규정짓는 모든 질서(가족, 사회적 기대, 육체성)를 부정하는 극단적 과정인 것이다. 영혜의 남편과 가족, 사회는 그녀를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강제적으로 치료하려 하지만, 이는 결국 아브젝트를 억압하고 제거하려는 행위에 가깝다. 크리스테바가 설명했듯이, 사회는 아브젝트를 감당하지 못할 때 정화(정신병원 수용, 치료, 강제적 억압)라는 방식을 통해 이를 제거하려 한다. 영혜는 이 사회적 질서 속에서 괴물이 되어가며, 그녀의 변화는 주변 인물들에게 불안을 야기한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가 단순히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주체성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채식주의자의 마지막에서 영혜는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인간을 넘어 식물적인 존재로 변모하려 한다.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기존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성과 동물성, 생명성과 무생물성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크리스테바가 말한 주체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급진적인 시도, 혹은 사회적 규범을 뒤흔드는 전복적인 가능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채식주의자는 아브젝트와의 충돌을 통해 인간 존재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품이며, 영혜는 육체와 사회적 규범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 방식을 실험하는 주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실험이 해방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파멸로 귀결되는지는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안의 아브젝트를 직시하지 않고, 그것을 억압해 온 것이 결국 창조적 글쓰기를 방해했던 원인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크리스테바의 개념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창조적 글쓰기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었다. 아브젝트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거나 숨기고 싶은 부분일 수 있지만, 그와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진정한 창조적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브젝트를 탐구하는 일이 곧 새로운 영감과 자유를 찾는 길임을 알게 되었고, 그 탐구를 통해 글쓰기는 단순히 외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이를 파고드는 여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렇게 크리스테바를 통해 내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순간 한강의 작품을 다시 떠올리며 나 자신을 정립하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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