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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들

(18화) 오후 네 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3. 12.

 

(18화) 오후 네 시

 

엄마가 그런 말엔 대답하지 말랬는데……

지원은 신아의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아 엄마가 괜히 캐묻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이제 뭐 할까?"

지원이 분위기를 바꾸려 하자, 새아가 신이 나서 말했다.

"언니, 우리 월명공원에 잉어 보러 가요!"

"월명공원에 잉어가 있어?"

지원은 산에 무슨 잉어가 있을까 싶어 의아해했다.

"언니, 월명공원 호수, 거기 나무다리가 있고, 나무랑 연꽃이 많아요. 빨간 잉어들도 살고 있어요. 아빠가 그곳이 잉어네 마을이래요. 잉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랑 대가족으로 산대요."

새아가 열심히 설명했다.

"에이, 바보. 아빠 말을 그대로 믿어? 잉어는 엄마 아빠랑만 살아. 그렇죠, 언니?"

신아가 확인하듯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지원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아니야, 아빠가 그랬단 말이야. 아기 잉어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랑 함께 산대."

새아는 언니의 주장에 울상이 되어 지원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럴 거야. 새아 말대로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을 거야. 신아야, 우리 가서 확인해볼까?"

신아는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 지원은 그제야 아이들이 말한 장소를 알아차렸다. 영화 '검은 집'을 촬영했다는 호수 수변로 주변인 것 같았다. 할머니가 아프기 전에 자주 산책하던 곳이었다.

일요일답게 월명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수변로를 따라 가족 단위 산책객들이 줄지어 걸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낙엽들이 가을 냄새를 풍겼다.

잉어가 산다는 곳에 도착하자 여름 내내 노란 꽃봉오리를 피웠을 어리연꽃들이 멀리 보였다. 연잎 사이로 잉어 한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지나갔다. 신아와 새아는 서로 먼저 잉어를 봤다며 떠들었다.

새아가 지원의 손을 잡아끌었다.

"언니, 나 졸려요."

"그래, 저쪽 편백나무 아래서 잠깐 쉬었다 갈까?"

편백나무 숲에 도착했지만 벤치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던 박스를 펴고 앉았다. 아이들은 금세 지원의 무릎에 기대어 잠들었다. 지원은 윗옷을 벗어 아이들을 덮어주었다. 쌔근거리며 자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보드라운 음악이었다. 지원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지원이 시집가서 딸 낳으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낳을 거야.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지원이 해복간도 해주고 아이도 돌봐줄 텐데."

할머니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루를 아이들과 보내고 약속 시간에 맞춰 신아 엄마를 만났다. 아이들은 정이 들었는지 차 안에서도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지원은 잠시나마 다른 세계와 만난 것 같아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생활은 바쁘게 흘러갔다. 어리둥절했던 1학기와는 달리, 지원은 점차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업과 학보사 활동,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하루 4시간 정도의 짧은 근무였다. 피곤함이 밀려오는 날도 많았지만 틈틈이 책을 읽을 수도 있었고, 그리 바쁘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지만, 청춘의 고단함은 곧 달콤한 미래를 향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2학기부터는 학보사에서 기사 작성도 맡게 되어 관련 공부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토요일, 지원은 다시 푸른솔 요양원을 찾았다. 신아 엄마가 넉넉히 챙겨준 아르바이트 비 덕분에 할머니가 좋아하던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었다. 일주일 사이, 마지막 가을 햇살을 머금은 들판은 한층 더 풍성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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