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오후 네 시
지원은 택시를 타고 은파 호숫가의 스파케티 집에 도착했다. 늘 한번쯤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며 자랑을 할 때마다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꼭 다녀오겠다고,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여기던 곳이었으나, 만만치 않은 음식값 때문에 마음뿐이었던 곳, 오늘은 신아 엄마의 카드가 있어 든든했다.
“어? 우리 엄마랑 아빠 단골 가게네! 언니, 여기 맞아요. 스파게티랑 피자가 진짜 맛있어요.”
신아는 자신이 자주 오던 곳이라는 사실이 기쁜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새아는 지원의 손을 잡아끌며 신아를 따라갔다.
“어, 꼬마 공주님들 왔네? 오늘은 엄마랑 같이 안 왔니?”
지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니요, 오늘은 언니랑 왔어요.”
신아가 환하게 대답하자, 지배인은 지원을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했다.
“어쩌지? 미리 예약을 하지 그랬어.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한 삼십 분쯤 기다릴 수 있겠니?”
지배인은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아이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그 정도쯤은 참아줄게요. 대신 우리 아이스크림 줄 거죠?”
새아가 뾰족한 조건을 내걸자 지배인은 웃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할게.”
얼굴을 붉히던 새아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나도!”
신아도 질세라 지배인을 향해 손을 내밀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지원을 바라본 지배인은 양해를 구하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지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벌써 가게 앞 공원으로 뛰어나갔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신이 난 목소리로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었는지, 지금 엄마랑 왔던 스파게티집에 와 있다는 둥, 마치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전하고 싶다는 듯 수다를 떨었다. 엄마 쪽에서 지원에 대해 묻는 것도 같았다.
“응, 언니 맘에 들어. 근데 언니 낮잠 잤어.”
지원은 뻘쭘해져서 뒤로 물러났다. 눈치 빠른 신아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응, 도서관에서! 엄마는 즐거워?”
지원은 멀찍이서 아이들을 쳐다만 보았다.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불러본 적이 없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기억도 없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지원을 괴롭혔다. 엄마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현실에 그저 쓴웃음만 나왔다. 요즘 들어 부쩍 할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영상통화를 끝내자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이번엔 아빠와 통화하는 듯했다. 지원은 아이들이 부러웠다. 자신은 한 번도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본 적이 없었다. 서러움이 몰려왔다.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감정에 눈물이 맺히다니. 지원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참새 소리처럼 들려왔다.
생각보다 일찍 자리가 났는지, 지배인이 아이들을 불렀다. 나비가 꽃잎을 찾아 날아가듯, 아이들은 지배인이 부르는 방향으로 나풀거리며 뛰어갔다. 지원도 그 뒤를 따랐다. 음식은 기대했던 대로 맛있었다. 신아와 새아는 허겁지겁 폭풍 흡입을 했고, 지원은 번갈아 가며 아이들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주었다. 마치 자신이 엄마라도 된 듯한 낯설지만 싫지 않은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신아 엄마가 준 카드로 계산하려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한도 초과입니다.”
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어? 아이 엄마가 준 카드인데…”
지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눈치 빠른 지배인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 그러셨군요. 이 교수님은 저희 단골이세요. 아마 사모님께서 미처 신경을 못 쓰고 카드를 맡기신 것 같네요. 그냥 다음에 오셔서 말씀만 전해 주세요. 사모님께서 따로 계산하실 수 있도록 해둘게요.”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뿐이었지만, 선불로 받은 아르바이트비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직접 지불할까, 고민했지만 지배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식당을 나서며, 지원은 신아에게 물었다.
“아빠가 교수님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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