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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들

(9화) 오후 네 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3. 3.

 

 

 

 

(9화) 오후 네 시

 

#아무짝에도쓸모없는그러나세상구경을하고싶은

 

지원은 단순명료한 이 교수의 화법이 마음에 들었다. 젊음이란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을 마음껏 살아야 한다는 그의 직설적인 말들은 지원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의 말은 마치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했고, 그런 그의 태도는 지원에게 일종의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밤, 축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난한 국립대 학생들에게 주어진 모처럼의 기회였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마시고 떠들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순간. 그러나 지원은 늘 그랬듯 억지로 따라야 하는 술잔을 조심스럽게 받아만 들었을 뿐 쉽게 입을 대지는 못했다. 일 학년이라는 조심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교수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해 걸어오는 선배들의 농담에도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그런 태도는 편집부의 일부에게는 눈에 거슬렸다.

그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지원도 알고 있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지원을 쉽게 얕보고 질투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척하면서도 철저하게 경계했다.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지원에게 학보사 활동은 필수가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했다. 졸업 후 순위 고사를 치르고, 경기도나 인천쯤에서 교사가 되는 것. 그게 그녀가 할머니와 약속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꿈도 품고 있었다.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 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고를 확장하고,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진실한 사람을 만나 오래도록 변치 않는 사랑을 하는 것. 그 사랑은 따뜻하고 단단한 것이어야 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누리지 못한 온기를 자신만큼은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오자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학과 공부만으로는 대학 생활의 반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지원은 망설였고, 그러다 이 교수가 학내 신문의 지도교수라는 소문을 듣고 학보사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간단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인턴 기자로 받아들여졌다. 마치 운명 같았다.

사실, 대학 입학 전부터 지원은 이 교수를 본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 교실, 그곳에서 이 교수는 가끔씩 강의를 하곤 했다. 공대 교수라는데 사진 교실에서 강의를 한다니,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의 사진 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첫 만남의 강렬했던 그의 인상이 늘 지원을 되씹게 만들었다. 그는 초록색 브릿지를 넣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대학교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유로웠다. 한겨울이었지만 그는 남청색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빨간 스웨터에 아쿠아 블루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모습이었다. 주변과 전혀 섞이지 않는, 그만의 세계를 지닌 사람.

그 순간 지원은 알았다. 그는 단순한 교수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눈빛, 몸짓, 말투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친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라이’ 기질이 있는 교수지만, 사진 분야에서 떠오르는 별이라고. 지원은 그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렇게 다시 그의 앞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길처럼, 그렇게 지원은 이 교수와 엮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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