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후속 작품은 '오후 네시'라는 장편소설로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는 '오후 네시'의 배경이 되어주지요. 계속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10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갸,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어찌 쬐메 서운타야. 지그 누나들이 갸를 서울에서 공부시키겠다고 데려간다고 하드만 진짜로 갔나벼. 갸네 엄마가 두부를 파는 것을 봉께."
엄마는 소녀를 흘끗거리며 말을 흘렸다. 소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후 소녀는 혼자서 누리는 도서관의 호사마저 시들해졌다. 개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소녀는 가기 싫은 도서관을 그날만큼은 왠지 꼭 가야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소녀는 도시락까지 싸 들고 도서관에 갔다.
“두우부, 두우부”
소녀는 고모에게서 배우기 시작한 판소리 버전을 흉내 내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어야, 참말로 판소리 가수가 되겄어.“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듯 헉헉거리며 소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어어. 오빠는 서울 갔다면서 다시 돌아왔나 벼."
소녀의 빨간 볼이 검센 여름 햇살처럼 붉었다.
"그랴야. 누님들이 서울에서 공부시킨다고 2학기부터는 서울로 전학을 가야씅게,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인사도 혀야 하겠고 혀서 잠시 내려왔지. 내일은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혀. 너를 꼭 봐야겄어서."
"아, 그럈어야. 오빠가 뭔 일로?"
소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긍게, 그게 말여. 여기"
소년은 쭈뼛거리며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소녀가 봉투 속의 물건을 꺼내들었다. "고거, 갈매기의 꿈이란 책인디 내가 읽어보고 재미도 있고 해서 너 줄려고 일부러 가져왔씅게 읽어 보드라고."
"갈매기의 꿈?"
"그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쓴 것이랴. 솔찮히 재미 있었는디. 내도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될 거고만.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디야.”
소녀의 눈망울이 호기심에 번득였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멀리 간디야? 그럼 나는 판소리 가수가 되야서 멀리 가볼팅게.”
소년은 웃을락 말락 미간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난 작가가 되겄고, 넌 판소리 가수가 되는 겨."
목소리에 힘을 준 소년의 눈망울이 총총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쓰것구먼. 어제 담임 선상님 인사도 끝났고."
"그럼, 이제부터 서울에서 공부하는구먼. 서울로 가는구먼."
자꾸만 소녀의 목소리가 잠겨왔다. 소녀는 필통을 뒤적였다. 딱 한 번 밖에 쓰지 않았던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요거 삼촌이 선물한 것인디, 오빠는 요걸로 유명한 작가가 되랑게."
볼펜을 건네는 소녀의 손이 떨렸다. 소녀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교실을 빠져나갔다. 봉투 위로 소녀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녀는 소매 끝으로 눈물로 얼룩진 봉투를 닦아내더니 봉투를 안고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소녀는 소년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막 교문을 빠져나가던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커튼 뒤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소년의 긴 그림자가 일렁이다 이내 사라졌다. 소녀는 연방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텅 빈 운동장과 교문 쪽을 응시하며 소녀는 하염없이 서 있었다. (끝)
#추억팔이 #원스어폰어타임 #한소년을추억하며 #두부파는소년 #모나미볼펜 #갈매기의꿈 #옛날옛적에 #에세이 #소년의꿈 #소녀의꿈 #국립군산대학교 #군산대철학과 #lettersfromatraveler
'나의 창작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0) | 2025.02.14 |
---|---|
(8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0) | 2025.02.13 |
(7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0) | 2025.02.12 |
(6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0) | 2025.02.11 |
(5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0) | 2025.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