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8th Story" Once Upon a Time – Remembering a Boy
(8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이 학기가 끝나고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폭설이 내린 날 아침은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검둥이의 친구였던 동네 똥개들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그들의 첫 발자국을 내느라고 촐랑거렸다. 게으른 동생들마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집을 나섰다.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며 소녀는 두부 파는 소년을 기다렸다. 소년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아침저녁으로 ‘두우부 두우부’ 외치는 소리로만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겨울 놀이에 심드렁해진 소녀는 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소공녀’를 읽고 또 읽었다. 폭설 속을 뚫고나온 햇살이 은빛 물결로 일렁이던 날, 소녀는 지루한 나머지 동생들의 뒤를 밟아 언덕배기로 향했다.
“많이 춥제?”
두부 파는 소년이 소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녀는 걸어오는 소년을 진즉 알아보았지만 정작 소년이 앞에 섰을 때, 바지의 묻은 눈을 터는 척 허리를 굽혔다.
"언덕배기에 가냐? 너네 동생들이 거기 있고만. 동생들 찾으러 가나봄시?"
"네, 오빠"
소녀의 목소리가 빠르게 꼬리를 숨겼다. 소년이 히죽이 웃었다.
"너 혹시 두부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싶지 않냐? 나 지금 두부 만들다 오는 참 인디 너 관심 있으면 우리 집에 가보지 않을래?"
소녀의 작은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소녀는 오래전부터 두부 파는 소년의 집이 참으로 궁금했다. 어떻게 소년이 두부를 만드는지 엄마에게 물을까도 했지만 자신의 비밀을 눈치라도 채일까 봐, 소녀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 안 되는디. 엄마가 동생들을 붙잡아 오라고 혔어. 얼른 가서 동생들을 불러와야 쓰겄응게. 담에.”
소녀는 그 후 내내 그때의 일을 후회했다. 그 이후로 소년은 단 한 번도 두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기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루하던 겨울 방학에 봄 방학이 이어지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날이 되어서도 소녀는 소년을 볼 수 없었다.
"선상님요. 왜 용수 형이 안 보이는구먼요."
은근히 신이 난 벌렁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용수는 너네들하고 더 이상 공부할 수가 없구먼. 너네들하고 차원이 다릉께. 5학년이 아니고 6학년이 되었어야."
"월반을 했단 말씀이셔요잉?"
"그랴, 갸가 공부를 잘혔지 않냐? 혀서 교장선생님이 6학년에 보내라고 지시하셨구먼, 왜 서운하냐?"
아무도 담임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아침저녁으로 "두우부두우부" 라고 외치는 소년의 두껍고 둔탁한 목소리가 날개를 달고 밤하늘의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내리는 것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이들도 소년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 이전 교실 풍경이 재현되었다. 벌렁이와 깜돌이의 장난은 점점 심해졌고 여자아이들의 "꺅꺅" 소리만 커졌을 뿐 그들을 미워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벌렁이와 깜돌이는 더는 소녀에게 장난을 치지 않았다. 소녀는 허전하기도 했고 소외감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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