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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들

(7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2. 12.

 

 

 

 

 

(7) 원스 어폰 어 타임 한 소년을 추억하며

 

두부 파는 소년이 교실에 있게 된 뒤로 교실 분위기는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은 소년의 눈치를 보았다. 소녀는 차분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어 기뻣지만 기가 죽은 듯한 친구들의 표정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장에선 달랐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커지고 억셌다. 공을 차며 다투고, 고무줄놀이나 딱지놀이를 할 때는 욕설이 난무했다. 여전히 벌렁이와 깜돌이는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걷어 올리거나 고무줄을 끊거나 팔방놀이를 하는 선들을 사정없이 비벼댔다.

두부 파는 소년은 아이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서 책을 읽다가 학교가 파하자마자 쏜살같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누구보다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소녀는 슬며시 소년의 모습을 훔쳐보다가 혼자서 빙긋거렸다.

", 나 알지라. 너네 집에서 밥도 먹은 적 있었는데. 너네 엄마는 참 좋은 분 같여. 너네 동생들도 귀엽고."

소녀의 볼이 달아올랐다. 그럼, 나는? 소녀는 꿀꺽 생각을 삼켰다.

"근데 네 노트 좀 한 번 구경 해봐도 되여? 산수 문제를 푸는데 좀 막힌 데가 있어서야."

소녀는 잠깐 멈칫거리다 산수 노트를 소년에게 건넸다.

"오빠, 별것 없어야. 그냥 선생님이 필기 해주신 것 베낀 것 밖에는."

소녀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오빠?”

소년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소년과 소녀의 눈이 순간 부딪혔다. 소녀의 볼이 복숭아빛으로 물들었다. 소녀는 눈길을 잽싸게 돌렸다. 창문 밖으로 막 지기 시작한 벚나무 이파리 몇 개가 또르르 똬리를 틀며 떨어져 내렸다. 소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소녀의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고마워.”

둘만 남은 교실의 정적에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년은 소녀에게 노트를 건넸다.

"도움이 되얐디야?“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가 물었다.

, 쬐메. 이따 담임선생님께 가봐야 쓰것써야. 아직도 안 풀리는 것이 있어서."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소년은 언제나 학급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소년이 오기 전 일등은 언제나 소녀의 몫이었다. 소녀는 자기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하는 소년이 얄밉기도 하고 약도 올랐다. 묘한 경쟁심에 소녀 또한 소년을 따라잡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소년의 존재가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교실은 다시 장날처럼 시끌벅적 조용할 날이 없었다. 소년은 오로지 공부에 열중했고 교실에서조차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할 일만 찾아서 했다.

으매. 새악시네.”

장미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교실에 막 들어서던 소녀를 향해 벌렁이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소녀에게 쏟아졌고 순간 벌렁이의 손이 소녀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일제히 터진 웃음소리와 함성에 당황한 소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순간 헤벌쭉거리던 벌렁이가 소녀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야야, 넌 양심도 없냐? 너 속 것도 좀 보여 줘 바라잉?

소년은 넘어뜨린 벌렁이의 바지를 움켜주고 내리려 했다. 벌렁이는 죽기 살기로 자신의 바지를 움켜쥐며 발버둥 쳤다. 소년의 힘이 어찌나 셌던지 움켜쥔 바지가 내려가고 벌렁이의 시꺼먼 운동복 팬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재미있다는 듯 박수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벌렁이의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후로야, 여자애들 치마 걷는 것은 좀 삼가 혀야 안쓰것냐?“

소년은 반쯤 벗겨진 벌렁이의 바지에서 손을 뗐다. 벌렁이는 부끄러움과 분노로 씰룩거리다 쏜살같이 교실을 뛰쳐나갔다. 소년과 소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눈물로 얼룩진 소녀의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후로 벌렁이의 치마 걷기는 중단되었다. 두부 파는 소년은 이제 여자아이들의 구세주로 재탄생된 셈이었다. 이야기는 살이 덧붙여져 학교 전체에 퍼졌고 소년은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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