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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존재라는 벽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12. 11.

 

 

 

 

 

[100-66] 4기 김은 <존재라는 벽>

[원 문장]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중 엠마뉘엘 레비나스, 향유에서 욕망으로(김상록 지음)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는 모두 존재라는 벽에 갇혀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에서 비롯되는 존재의 고통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존재와의 이런 감응을 통해 제기되는 존재 물음을 철학의 원(原)사태로 본다는 점에서도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피상적 공통점 이면에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숨어 있어요. 하이데거는 존재가 내 자유를 제한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레비나스는 내 자유가 설령 무한정 증대된다 할지라도 결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지요.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문장)

하이데거(1889년~1976년)와 레비나스(1906년~1995년)의 존재론적 사유는 존재의 본질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존재에 대한 고통의 원인과 그로 인한 철학적 질문을 다루고 있다. 이 두 철학자는 존재라는 벽에 갇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고통의 원인과 의미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자유의 제한으로 인식하는데 그는 존재가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존재는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작용하며, 이는 그가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을 통해 탐구하는 주제가 된다. 그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한다. 즉, 하이데거는 존재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이러한 고통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반면, 레비나스는 내 자유가 무한히 증대되더라도 결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타자의 얼굴을 통해 윤리적 책임이 부여된다고 강조한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며, 이 관계가 없이는 인간 존재가 의미를 잃게 된다. 따라서 그는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고통스럽다고 본 것이다.

 

즉 인간 삶의 고통의 원인을 하이데거는 존재가 나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고, 레비나스는 나의 자유가 무한히 증대되더라도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통한 존재 이해하고자 했고, 하이데거는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렇듯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는 모두 존재라는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 접근 방식과 결과는 서로 다르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하이데거는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어떻게 사유했을까?

 

하이데거는 이 질문에 대해 현존재(Dasein) 개념을 통해 인간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이 항상 세계-내-존재라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며, 그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이데거는 또한 불안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불안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을 자각할 때 발생하며, 이는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들고 죽음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므로 이를 직시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하고 진정한 실존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하이데거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불안과 죽음을 통해 실존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다.

 

한편, 레비나스가 제기한 철학적 질문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레비나스의 사유를 살펴보면, 그는 타자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에 무한한 책임이 부여되고, 타자의 얼굴이 나를 불러 세우고, 그 얼굴이 드러내는 고통과 약함을 통해 나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윤리적 명령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대면은 나와 타자 간의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하며, 이는 주체가 타자에게 응답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를 발생시키고, 이 관계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제3자의 존재를 통해 모든 타자에 대한 보편적 책임으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한한 책임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겠다.

 

이렇듯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단순한 존재가 아닌,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는 존재로 이해했다. 이러한 이해는 내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레비나스의 사유는 이 질문에 윤리적 차원을 추가한다. 타자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나는 무한한 책임을 부여받고, 그 책임은 나를 타자에게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타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으며, 그 고통은 나의 존재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그 안에서의 윤리적 책임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나만의 사유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나는 그들의 사유를 바탕으로 나의 존재 방식을 재조명하고, 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윤리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유는 나에게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정은 내가 철학적 성찰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듯 나는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와의 '데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로 남고 싶다.

 

이른 아침 초짜 철학도의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사유를 산책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몇 겹의 짱이다. 모르기에 무식한 것이고 때론 무식한 것 때문에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더 쉽게 용해되는 듯도 하다. 나보다 더 지적인 그들과의 산책은 나에게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서 탈피해 그들의 사유를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의 요구, 가령 그들의 사유를 통해 나만의 사유에 진입하도록 이끄는 힘으로 느껴진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승의 소풍을 마감할 그날까지 나의 사유와 기대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그 끝 지점에서 나는 "나는 자유로운 아이러니스트이다." 라는 확신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끝)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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