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8] 4기 김은
<포스트휴먼 시대에 우리는 레비나스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 문장]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중 엠마뉘엘 레비나스, 향유에서 욕망으로(김상록 지음)
“레비나스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구토, 부끄러움, 게으름, 권태 등의 존재론적 현상들 모두가 위에서 살펴본 도피 욕구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가령 존재론적 현상으로 본 구토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구역질이고, 존재론적 권태란 무한정 반복되는 존재의 자기 동일성 운동에 대한 지겨움과 갑갑함으로 귀착됩니다. 이 모두 나를 숨막히게 옭죄는 존재에 감금되어 있다는 고통이 발현되는 현상들입니다.”
나의 문장)
레비나스의 철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통과 탈출 욕구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는 우리의 일상적 감정들 속에 숨겨진 존재론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일상성 속의 구토, 권태, 부끄러움, 게으름과 같은 감정들은 단순한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현상으로 보았고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가 자신의 존재에 갇혀 있다는 근본적인 고통을 표현한다고 인식했다.
특히 구토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감을 나타내며, 권태는 반복되는 존재의 단조로움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아픔을 보여준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감정들이 결국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표현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갇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하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어제도 언급한 것처럼 레비나스의 철학은 존재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에서 찾는다. 우리가 느끼는 무의미함과 권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타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책임과 사랑을 통해 열린다는 것이다.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타자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타자의 얼굴은 우리에게 윤리적 명령을 내리며, 우리를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깊이 응답하고 책임지는 행위이다. 환대와 대속의 개념은 이러한 탈출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타인을 내 삶으로 초대하고, 그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행위는 우리를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여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 순수한 윤리적 실천이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폐쇄적 존재에서 벗어나 타인을 향해 열린 존재가 될 때, 우리는 존재론적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방식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책임을 실천할 때 우리는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레비나스가 제시하는 해법은 사랑과 책임을 통한 초월이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더 넓은 윤리적 지평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존재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길이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심리학적 해석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시도로 레비나스는 이러한 감정들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이번 해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으며, 오늘 산책한 레비나스의 철학들과 연관해 다음과 같은 사유로 더 나아가 보았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종료 후 마련된 연회에서 AI 머신 러닝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프리 히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생길 수 있는 장기적인 실존적 위협이 있다"고 말하며 AI의 통제권 장악을 막기 위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도 AI로 인한 혼란을 경고했다. 그는 AI가 모든 곳에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AI의 발전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AI가 생물학 연구와 신약 개발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AI 석학 얀 르쿤 교수는 안전하게 통제 가능한 AI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AI에 대한 낙관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AI에 의해 빚어지는 비극성에 더 주목했다. 즉 포스트휴먼 시대에 AI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어떤 위험이 뒤따를까에 대한 생각이다. 가장 큰 위협은 히턴이 지적한 것처럼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면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고 이는 인류의 안전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을 먼저 말하고 싶고, 만약 이란과 하마스와 이슬라엘 사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같은 국지전에서 AI가 자율살상무기시스템(LAWS)에 적용되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는 등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현재도 위의 국지전에서 AI 사용이 되고 있다는 현실 앞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이미 권위주의 정부는 대규모 감시를 위해, 사이버 범죄자들은 피싱 공격을 위해 AI를 이용하고 있다"고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현실 속,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의 감정과 행동까지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AI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일자리 감소, 경제 구조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이 현실이 된다는 사실 앞에 하루빨리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와 규제 마련이 시급한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레비나스의 사상은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의 가장 큰 목소리는 아무래도 사이버휴먼 시대에 근본적인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겠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인간만을 윤리적 주체로 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 인공지능과 로봇 등 새로운 존재들과의 관계를 윤리적 차원에서 사유하게 만든다.
사이버휴먼 시대에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유일한 윤리적 주체로 볼 수 없으며, 인공지능과 로봇 역시 고유한 존재성을 지닌 '타자'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이기도 하다. 더불어 레비나스의 '근접성' 개념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근접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들의 존재에 대해 깊은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함인데 이는 기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고, 기술을 통해 확장되고 변형되는 인간의 신체와 정체성은 더 이상 고정된 것이 아니며,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특히 사이버휴먼 시대의 혼종적 정체성을 윤리적으로 수용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결국 레비나스의 철학은 사이버휴먼 시대에 우리에게 더 깊은 윤리적 상상력과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과 책임, 그리고 관계의 윤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레비나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윤리적 유산인 듯하다.
아직 초짜 철학도인 나의 목소리에 미흡한 부분이 많아, 달걀로 바위 치기에 불과할지라도 작아 초라한 촛불이라도 연대할 수 있다면 그 무한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며, 이만 총총(끝).
20241213
#나의백일프로젝트
#프로젝트
#책강대학
#인생성장학교
#문장공부
#백일백문장
#처음읽는프랑스현대철학
#동녁
#김상록
#엠마뉘엘레비나스
#마르틴하이데거
#존재와시간
#현존재
#타자에대한윤리적책임
#존재와존재자
#형이상학적욕망
#포스트휴먼시대
#ai시대
#윤리성
#국립군산대학교
#군산대철학과
#lettersfromatraveler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비나스와의 산책을 마치며 (0) | 2024.12.15 |
---|---|
내가 찾은 향유 (0) | 2024.12.14 |
형이상학적 욕망 (0) | 2024.12.12 |
존재라는 벽 (0) | 2024.12.11 |
사유의 시작 (0) | 2024.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