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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인류는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4. 4.

 
 
 
인류가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라를 ‘부국강병(富國强兵)’하는 것
약한 나라들은 연대하는 것(북대서양조약기구)
‘도덕성‘을 키우는 교육
‘올바른 수장’을 뽑는 것(선거)
 
또 무엇이 있을까?
 
두고두고 사유하고
논의하고 싶은 주제이다.
 
지난주
온라인 철학 공부 모임인
‘미래담론’의 주제는
미국의 정치 평론가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1935년)의
정의론이었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그의 관점이었다.
 
그는
1977년 『정의로운 전쟁』의 서문에서
자신의 전쟁론을 제시하며
베트남 전쟁의 발발 및
진행 과정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지만
 
2006년 『전쟁과 정의』에서는
분쟁 지역에
독립적인 민족국가가 설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 개입과
장기적인 군사 주둔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며
아프가니스탄과 르완다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옹호하기도 한다.
 
왈저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원칙을 내세우며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 말한다.
 
정의로운 전쟁이란
분명한 정의로운 명분이 있어야 하며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미리 선전 포고를 하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전쟁을 택하기 전
승전 가능성을 먼저 타진해라.
 
또한 정전 규칙으로
민간인의 학살과
구급차 공격과
인종청소를 금지하며
전쟁포로에게 우호적 대우를 하고
명백한 종전 선언을 해야 하며
전쟁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에 대한 그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왜 세계적인 정치 철학자가
전쟁의 이전의 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라는
명제에 대해
더 숙고하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여 나는
지난 학기에 배운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을 떠올렸다.
 
혼란의 시대에 대해,
유가는 천하의 도가 사라지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해
문제의 해결도 역시
‘도덕성의 회복’에서 찾았지만
그러나 묵자 (기원전 468~376)
다른 각도에서
사회 문제를 진단한다.
 
사회가 혼란해진 것은
함께 이익을 나누려 하지 않고
제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이라며
묵자는
타인에 대한 ‘차별 없는
보편적인 사랑인 ‘겸애(兼愛)’를 주장한다.
 
사회가 혼란해진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모든 사람이
‘차별 없는’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면
불필요한 전쟁이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인(仁)도
타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유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따져보면
공자의 사랑은
‘친 친(親親)’의 성격을 띠어서
자기 부모,
자기 형제에 대한 사랑이
출발점이 되지만
 
묵자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仁)의
자연스러운 감정에
기초하면서도
가족으로부터 점차 사회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즉 묵자의 겸애사상의 원칙은
차별 없이 널리 사랑하라, 인데
남의 나라를 내 나라와 같이 여기고
남의 집을 내 집과 같이 여기며
남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겨라.
그러므로 서로 아낀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묵자 식의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묵자는
혈연관계에 묶이지 않는
넓은 범위로
사회적 책임을 확대해야
사회적 혼란이 종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묵자는 침략 전쟁에 대해 강력히 반대(非攻)한다.
 
전쟁은
국가와 백성 어느 쪽에도
득이 될 수 없는 사회적 해악이라는 것
따라서 어떤 명분으로도
침략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며
국가 간의 상호 불가침은
겸애의 확장적 형태로
국가 간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비공(非攻)은
겸애의 가장 적극적인 사회적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묵자 또한
현실적으로
모든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보았는데
불의를 막고 백성들의 이로움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방어를 위한 전쟁 장비와 기술도
백성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더불어
군주가 힘써야 할 세 가지 의무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것,
백성들의 수를 늘리는 것,
올바른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한마디로 군주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국가의 부강을 얻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는 점까지
추정했을 것이다.
 
이렇듯 묵자는
“어떻게 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나와 남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적대적 대립'에서 찾았고
말로만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면
그것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며
전쟁을 일으키는 세력을 응징하는
국제연합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실제 전쟁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군사 집단이 되어
현실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
무기를 쓰는 용병,
군사 조직을 운용하는
지도자를 포함하는
‘자발적 결사체’를 구성했다는 설도 있으니
이상을 현실적으로 실천한
유례 드문 철학자인 묵자를 떠올리는 아침,
 
2년째 장기전이 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도
 
한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지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살벌한 발언 등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