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언제부턴가 나는 작가 최진영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말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의 쓰기에 대한 절박함이 내 마음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2016년 7월경, 나는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을 읽고 새벽 내내 울었다. 저절로 좀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의 소설 속 몇 문장을 베껴 쓰는 일과 책 뒤편의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쓰는 일 외에 나의 독후감은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2015년 3월 최진영>
2021년 4월 즈음, 나는 또다시, 지우고 싶을 만큼 상처 깊은 한 여성이 유년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외면했던 과거와 마주 보고 나라는 존재, 나와 얽힌 관계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었다.
책을 읽은 후 7살, 20살, 40, 50, 60살, 나는 여전히 삶이 불안해 두렵고, 여하튼 허무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고 조금은 더 살아있을 것이고 쓰다 보면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하고 싶은 날이라는 언급을 했다.
이렇듯 나 또한 최진영의 소설을 볼 때마다 무엇인가 쓰고자 했던 내 마음을 다시 다짐하곤 했다.
요즈음, 나는 그의 신작 장편소설 『단 한 사람』이라는 소설을 더 읽었다.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크고 오래 사는 생물, 수천 년 무성한 나무의 생 가운데 이파리 한 장만큼을 빌려 죽을 위기에 처한 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는, 나무와 인간 사이 ‘수명 중개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열여섯 살 목화는 꿈을 빌려서 그러나 현실처럼 생생한 순간들을 목격한다. 투신과 살해, 사고사와 자연사 등 무작위한 죽음의 장면. 동시에 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구하면 살아. 나무의 알 수 없는 소환은 이어지고 일상은 흔들린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을 살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일은 대를 이어온 과업. 할머니인 임천자는 이를 기적이라 했고, 엄마인 장미수는 악마라고 했다. 이제 목화는 선택해야 했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신에게는 뜻이 있는가? 사람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신념과 사랑 없이 인간은 살 수 있을까?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묵직한 주제와 더불어 문명과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임은 물론, ‘수명 중개’라는 판타지적 요소까지 더해 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이제 그녀는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남긴다.
”10여 년간 붙들고 지낸 여러 질문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쓴 문장과 단어가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겨우 질문을 이해했을 뿐입니다. 내가 계속 묻던 것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이었어요. 모른 채 살고 싶은 것. 답을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풀지 못한 문제로 남겨두고 다른 질문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녀는 한 번뿐인 삶, 다시 없을 오늘을 위해 또 다른 질문을 하고 또 계속 쓰겠지요. 운명이라면 운명이겠고 자유의지라면 자유의지겠지만 다시 쓸, 다시 질문할 힘을 가진 것이 참으로 부럽기만 합니다.
최진영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가 찾은 키워드는 ‘인간’, 부스러지기 쉬워 ‘안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 온기를 발화하며 힘겹지만 또 발길을 멈출 수 없어 계속 걸어야만 인간의 모습이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이 내 마음에 온기로 스며드는 참 이상한 경험을 한다.
내년 1월에 있을 그와의 만남이 오래된 연인에 대한 그리움처럼 부풀어 오른다.
소설가 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상:
2006 〈실천문학〉 신인상
2010 제15회 한겨레문학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2014 제32회 신동엽문학상 <팽이>
2020 제13회 백신애문학상 <겨울방학>
2020 제35회 만해문학상 <이제야 언니에게>
주요작품: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팽이》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겨울방학》
《몬스터(한낮의 그림자)》
《내가 되는 꿈》
《일주일》
《단 한 사람》
《홈 스위트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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