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군산시 동네문화카페란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한 편씩 총 10편의 영화를 본다.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탁월한 이가령 감독(강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예전에 보았던 영화들을 다시 보는 즐거움도 좋고 최근의 핫한 영화를 보는 재미 또한 큰 즐거움이다. 게다가 영화를 본 후 멤버들과 간단한 감상평과 평점을 주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이며 자주 김밥과 떡볶이 혹은 만두로 주린 배를 채우는 고마움도 따른다.
물론 지금까지 본 영화들 모두 감상평을 적고 싶지만 능력도 모자라고, 그러나 꼭 추천하고픈 영화가 있어 목요일의 한가로움을 틈타 나의 썰을 풀어 보겠다.
까마득한 예전에 그러니까 2006년, 칸영화제에서 감독 켄 로치에게 황금 종려상을 안겨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을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적이 있다. 나의 DVD 소장 목록 중 하나이므로 나의 애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하여 아일랜드의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였다는 2022년 마틴 맥도나 연출 및 각본의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의 예고편과 소개를 보며 설레기까지 했다.
영화는 영국이 물러난 직후 벌어진 아일랜드 내전 시절을 배경으로 내 애정하는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후반부와 시대적 배경을 같이 한다. 맥도나 본인이 과거에 집필한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공개 이후 엄청난 호평이 쏟아져 맥도나는 각본상을, 콜린 패럴은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 초청돼 국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또한 National Board of Review에서 선정한 2022년 상위 1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1923년 봄, 아일랜드 내전이 끝날 무렵 가상의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로 다정하고 돈독한 사이다. 그러나 어느 날, 돌연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콜름’, 절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파우릭’은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묻지만 돌아오는 건 변심한 친구의 차가운 한마디 -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는 대답뿐이다. 관계를 회복해 보려 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가기만 하고 평온했던 그들의 일상과 마을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일랜드의 정치 상황을 모를 땐, 파우릭과 콜롬의 동성애적 영화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남북 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은유를 떠올리자 파우릭과 콜롬의 관계의 상징이 집어져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론 잔인할 정도로 고집스런 콜름의 캐릭터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지적이면서도 예술가인 그가 어느 날 돌연 절교를 선언하고 관계를 되찾으려 진심으로 분투하는 파우릭을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내쳐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조용히 자신의 예술로 귀환하고자 했던 생각은 이해하나,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꼭 그래야만 했을까, 평범한 나로서는 화가 날 정도였다. 또한 자신을 거부하는데도 집요할 정도로 관계를 돌리기 위한 파우릭 또한 좀 섬뜩했다. 역사의 은유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두 번째로 아일랜드인들의 엄격함, 소시민들의 부조리, 자연은 그토록 고즈넉하고 아름다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어두운 측면들이 소름이 끼쳤다고 할까? 섬사람들 특유의 폐쇄성일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에 자주 반복되는 갈림길, 선택해야만 갈 수 있는 길들은 주인공들의 선택하는 삶에 대한 이미지로 환원되었고 개나 당나귀, 말 같은 동물들의 등장으로 주인공들의 상황과 심리를 연출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있었다. 특히 콜룸의 손가락을 당근인 줄 알고 먹은 당나귀의 죽음, 곧 파우릭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과정에 마음 또한 쓰라렸다.
연출가의 모든 의도를 다 알아차릴 수 없어 내가 이 영화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 처음에는 3.5라는 낮은 평점을 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자꾸 화면들이 떠오르고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평점을 4.6 정도로 바꿀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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